'유모로 생활비 벌던 정치인' 멜로니, 이탈리아 첫 여성 총리 '눈앞'

박용하 기자 2022. 9. 26.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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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살 때 첫 지방선거 승리하며 '입지'
이탈리아 역사상 '최연소 장관' 지내
선명한 극우..'여자 무솔리니' 꼬리표
비혼모로 한때 유모·바텐더 하며 생계
극우 정당 이탈리아형제들(Fdl)의 대표이자 차기 총리 후보인 조르자 멜로니가 26일(현지시간) 로마의 Fdl 본부에서 연설한 뒤 ‘고마워요. 이탈리아’(Grazie Italy)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 AFP연합뉴스

이탈리아의 25일(현지시간) 조기 총선에서 우파 연합이 승리하면서 극우 여성 정치인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형제들(Fdl) 대표(45)의 총리 등극이 유력시된다. 멜로니 대표가 총리에 오르면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 이후 집권한 첫 극우 성향 지도자이자, 이탈리아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될 전망이다.

1977년 노동자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는 로마 가르바텔라에서 태어난 멜로니 대표는 아버지가 가정을 버리면서 홀어머니 아래서 자라야 했다. 그는 15살 때 네오파시스트 성향의 정치단체 이탈리아사회운동(MSI)의 청년 조직에 가입하며 정치에 입문했다. 이탈리아사회운동은 1946년 무솔리니 지지자들이 창설한 단체다. 그는 19살 때 프랑스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무솔리니는 훌륭한 정치가”란 평가를 내놔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는 21살이 되던 1998년 첫 지방 선거에서 승리하며 자신의 입지를 다졌다. 29살에는 하원 의원이 됐으며, 2년 뒤인 2008년에는 당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내각의 청년부 장관으로 임명돼 이탈리아 역사상 최연소 장관이 됐다.

멜로니가 극우의 아이콘이 되기 시작한 것은 2012년 이탈리아사회운동의 가치를 이어받은 이탈리아형제들 창당을 주도하고 2014년 이 정당의 대표를 맡으면서부터다. 이탈리아사회운동은 1995년 해체됐으나 그 명맥을 되살린 것이다. 이때부터 그에겐 ‘여자 무솔리니’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반이민과 반유럽연합(EU), 강한 이탈리아 등 선명한 극우 색채를 바탕으로 지지세를 확장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이탈리아형제들은 2018년 총선에서 득표율 4%에 그쳤으나, 멜로니 대표는 그 뒤에도 개인적인 지지율을 높이며 세를 불렸다. 2019년 10월 그가 동성 육아에 반대하는 집회에서 벌인 연설을 리믹스한 영상이 유튜브에서 화제를 모은 것이 대표적이다. 당초 이 영상은 성 소수자에게 적대적인 멜로니를 조롱하기 위해 만든 것이었으나, 오히려 그의 인지도를 높여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해 2월 마리오 드라기 전 총리가 거국 내각을 구성할 당시 유일한 야당으로 남았던 멜로니의 선택도 오늘날의 그를 있게 한 결정적 요인이 됐다. 드라기 총리가 실각하고 조기 총선이 결정되면서 지난 정권에 불만인 유권자들은 멜로니를 마지막 남은 대안으로 인식하게 됐다.

향후 멜로니가 총리가 되면 이탈리아 최초의 여성 총리로도 기록될 전망이다. 비혼모인 그는 한때 정계 일을 하면서도 생활비 마련을 위해 유모와 웨이트리스, 나이트클럽 바텐더 등을 병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그가 여성 친화적 정책을 펼 것으로 예상하는 시각은 적다. 이탈리아형제들이란 이름에서 보이듯 그의 정당은 남성 중심적인 분위기가 강하며, 멜로니 자신도 여성 할당제 등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인 바 있기 때문이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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