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군 도주한 뒤 처음 전쟁 경험하는 쿠피얀스크 주민들

강영진 2022. 9. 26.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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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2월 러군 무혈입성 뒤 평온하던 곳 퇴각 러군이 집중 포격
남은 주민들 "양떼들은 러든 우크라든 상관없다…휴전해야"

[쿠피안스크=AP/뉴시스] 우크라이나가 최근 수복한 하르키우주 쿠피안스크 전선에서 22일(현지시간) 연기가 치솟고 있다. 2022.09.23.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우크라이나 동부 쿠피얀스크의 동쪽 외곽에 있는 곡물 창고는 우크라이나 하루키우 지역에서 러시아군이 주둔하던 곳으로 러시아 주력부대가 방어하도록 돼 있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국제군단이 지난 22일 이곳을 점령하려 도착했을 때 저항은 전혀 없었다. 미국 월스트리저널(WSJ)은 25일(현지시간) 퇴각한 러시아군의 포격을 당하는 쿠피얀스크 현장 소식을 전했다.

라트비아 출신 국제군단 소속 지휘관인 울비스(호출명)은 "모두 도망갔다. 자신들이 끝장 난 걸 알았다"고 했다.

쿠피얀스크는 최근 우크라이나군의 하르키우 탈환전 때 서쪽 절반 가량이 점령된 곳이다.

러시아군은 쿠피얀스크를 관통하는 오스킬강의 교량을 폭파하려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우크라이나군은 현재 오스킬강에 부교를 설치하고 동쪽으로 탱크와 장갑차를 투입하고 있다.

현지 군사행정책임자 안드리 카나셰비치는 "우리 군이 계속 진격하면서 러시아군을 격파하고 있다. 며칠만 더 있으면 쿠피얀스크 전체를 장악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군이 아직 남아 있는 쿠피얀스크 동쪽 지역을 장악하면 인근 루한스크 지역으로 진격할 수 있게 된다. 러시아군이 거의 대부분을 점령한 루한스크 지역은 지금 러시아와 합병 주민투표가 진행중이다. 우크라이나군이 이곳을 탈환하는 경우 러시아로서는 전략적 패배가 될 수 있다.

쿠피얀스크 곡물 창고 옆에는 숨진 러시아군 시신이 방치돼 있었다. 도로에는 불탄 보병차량이 널려 있었다. 주변 지역의 포격 소리가 격렬하게 들리지만 쿠피얀스크 시내에는 아무런 총성이 울리지 않고 있다.

국제군단의 한 부대를 지휘하는 우크라이나군 장교인 얀은 "우리 임무는 패잔병을 소탕하고 반격이 있을 경우 격퇴하면서 계속 진격하는 것"이라고 했다. 국제군단은 이 지역 우크라이나군 연대의 통제를 받고 있다.

인구 3만2000명이던 쿠피얀스크는 현재 주민수가 1만5000여명으로 줄어든 상태다. 러시아군은 이곳에 하르키우 지역 3분의 1에 달하는 점령지 행정청을 설치했었다. 러시아는 이곳에서도 합병 주민투표를 실시할 계획이었다.

쿠피얀스크는 지난 2월 러시아군이 무혈 점령했었다. 우크라이나군이 이미 철수한 상태에서 헨나디 마체고라 시장이 도시가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러시아군에게 넘겨주기로 동의했었다.

쿠피얀스크 동부에 사는 트럭 운전사 올레 코스텐코는 "우리는 완전히 방기됐었다. 쿠피얀스크는 러시아군에 동조한 적이 없지만 일반 주민들이 무슨 수로 싸우나?"고 반문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마체고라 시장을 반역혐의로 기소했다. 그는 지난 7월 러시아군에 억류됐고 지금은 소재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지난 2월 3주 동안 러시아군 탱크와 장갑차들이 쿠피얀스크를 통과하는 것을 본 주민들은 러시아군이 영원히 도시를 점령할 것으로 생각했다.

우크라이나 국경 수비대에서 근무했던 코스텐코의 이웃인 코스탼틴 즈로리코우는 "러시아군을 물리칠 수 없을 것 같았다. 우크라이나군이 다시 수복한 것이 믿기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군에 협력하고 굽실거렸다"고 했다.

주민 전체가 러시아군에 협력한 건 아니었다. 러시아군이 친우크라이나 시위대를 해산시키고 주도자를 감금한 뒤에도 지하 저항이 지속됐다.

"쿠피얀스크는 우크라이나 땅"이라는 한 건물의 낙서 위에 러시아 연방을 뜻하는 RF와 러시아군의 상징 Z자가 써 있었다. 러시아군이 미처 지우지 못한 "푸틀러를 암살하라"는 문구도 있었다.

쿠피얀스크 주광장의 시청 건물에는 "우리는 러시아와 하나다"라는 간판이 아직도 걸려 있다. 이곳의 러시아군 협력자가 급히 도망친 듯 건물 안에는 먹다가 남은 수박과 커피가 있었다. 그밖에도 러시아 커리큘럼에 따른 러시아어 교육이 시작됨을 알리는 포스터도 널려 있었다. 여러 크기의 러시아국가가 비닐 포장지에 담겨 있었고 일부는 풀밭에 널려 있었다. 푸틴의 초상화, 러시아 집권당이 보낸 편지, 러시아 동전 더미, 매달 1만루블(약 24만4400원)의 연금을 지급받은 사람들의 명단도 있었다.

2주전 러시아군이 퇴각할 때 협력자들도 대부분 함께 도망쳤다. 그러나 미처 도주하지 못한 러시아군도 여럿이었다. 국제 군단 지휘관 얀은 자기 부대가 쿠피얀스크에서 러시아군 병사 17명을 포로로 잡았다고 밝혔다.

민간복 차림의 부상한 러시아군을 우크라이나군 위생병 2명이 부축해 오스킬강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어디 출신이냐"고 묻자 "벨고로트"라고 답했다. 러시아군 200기동소총여단 소속이라고 했다. 러시아내 벨고로트 주민들은 이곳에서 가까운 대도시 하르키우에서 주말 쇼핑을 즐기곤 했었다.

우크라이나군이 "이웃이구만. 하르키우에 왔었나?"고 묻자 "물론"이라고 답했다. "하르키우에서 나치를 본 적 있나"라고 묻자 "없다"고 했다. "그런데 왜 여기 와서 전투를 벌였나?"라는 질문엔 답을 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군 순찰병이 나탈리아 소모바의 집에 와서 물을 달라고 할 때 러시아군 병사들이 집안에 숨어 있었다. 소모바는 "러시아군 짐승들이 숨어 있는 곳을 알려줬더니 40분 뒤 집이 폭격을 당했다고 했다. 그는 "사실 러시아군을 숨겨준 사람들도 있다. 이 곳 주민들중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러시아군이 돌아오길 기다린다"고 말했다.

러시아군은 지금 쿠피얀스크를 계속 폭격하고 있다. 2주 동안 폭격당한 끝에 전기,수도,가스,전화 모두 끊겼다.

자기 이름이 마리나라고 밝힌 쿠피얀스크 병원 간호사는 "러시아군이 있을 때가 좋았다. 평화와 안정이 있었고 미래를 기대할 수 있었다"고 했다.

전쟁 전 우크라이나 시절 때 받던 봉급이 200달러(약 28만4000원)이었던 것에 비해 러시아군 점령 동안에는 700달러(약 99만4000원)이었다고 했다.

쿠피얀스크 동쪽 주민인 알랴 콜로미체바(80)는 "평화롭게 살았었는데 지금은 매일 폭격을 당한다. 도무지 견딜 수가 없다"고 했다. 그는 러시아든 우크라이나든 누가 통치를 하는지 상관없다고 했다. "우리같은 사람을 위해 양측이 합의했으면 한다. 양이든 염소든 누가 권력을 잡든지 상관없다. 양떼들은 말없이 따를 것"이라고 했다.

군사행정 책임자 카나셰비치는 우크라이나가 치안이 확보되는 대로 인프라스트럭처를 복구할 것이라고 했다. "우선 해방부터 시키고 있다. 러시아군이 오기 전까지는 아무 문제 없었다"고 했다.

기반 시설이 파괴되면서 쿠피얀스크 고층 아파트 주민들이 마당에서 요리를 하고 있다. 그런데 마당에서 요리하는 건 러시아군의 폭격을 당할 위험을 키운다. 트럭 운전사 코스텐코는 지난 21일 오스킬강 부교 옆에서 폭격을 당해 아들 올레(24)를 잃었다.

국경경비대에서 근무했던 즈도리코우는 거리 한 구석에 나 있는 포탄 구덩이를 가리키며 러시아군이 지난 23일 아침 폭격한 곳이라고 했다. 그는 처음 러시아군이 왔을 때 주민들을 적대하지 않았지만 "지금 그들의 진면목이 드러나고 있다"고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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