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인의 직격 야구] 도루왕 김일권, 홈런왕 김봉연이 '레전드'가 아니라고?
지난 19일 프로야구 출범 40주년을 기념해 KBO(한국야구위원회)가 선정한 '레전드 40인'이 모두 공개됐다. 그런데 최종 명단을 보고 내 눈을 의심했다. 그들이 없는 것이다.
명단을 두 번, 세 번 눈을 씻어보며 훑어봐도 어디에도 없었다. 그들은 누구? 바로 1980년대의 도루왕 김일권(66)과 홈런왕 김봉연(70)이다.
김일권은 초대 도루왕에 1984년까지 3년 연속 도루 1위의 위업을 쌓았다. 1989~1990년에도 연속 도루왕을 차지해 40년 역사상 최다 도루 타이틀 홀더(5차례)다. 최초 300도루 달성, 단독 홈스틸 최다(2회)에다 1988년에는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중 한시즌 역대 최소 삼진(8개)을 기록했다. 올드팬들은 '괴도(怪盜) 루팡'하면 바로 김일권을 떠올린다.
초대 홈런왕 김봉연은 해태 타이거즈 부동의 4번타자였다. 1983년 6월 28일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얼굴에 박힌 유리조각을 제거하기 위해 5시간 동안 300여 바늘을 꿰매 그의 선수생활은 끝난 듯이 보였다. 하지만 그는 담당의사의 눈을 피해가며 병상에서도 방망이를 어루만지는 투혼을 발휘, 입원 3주만에 퇴원하는 초인적인 의지를 보였다.
퇴원 20일만에 그라운드에 복귀했고, 10월 15일부터 MBC와 벌인 한국시리즈에서는 19타수 9안타(0.474, 홈런 1개)에 8타점을 올려 '해태 왕조'의 초석을 올리는 우승의 1등공신이 됐다. 교통사고 후유증인 상처를 감추기 위해 콧수염을 길러 MVP 부상인 자동차위에서 미소를 짓던 그의 늠름한 모습은 팬들의 뇌리에 깊게 각인돼 있다. 1986년에도 홈런왕을 차지했다.
김일권과 김봉연은 레전드 40인뿐 아니라 41~50인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참으로 이해가 안되지만 선정을 주관한 KBO와 한국야구기자회의 엄청난 미스임에는 틀림없다. 레전드 선정은 선정위원회가 추천한 후보 177명 가운데 전문가 투표(80%)와 팬 투표(20%) 결과를 합산해 가렸다.
전문가는 야구기자회 소속사 기자, 간부가 대다수이며 일구회, 은퇴선수협의회, 심판위원, 감독, 단장, 현역선수 일부가 참여했다. KBO와 야구기자회가 명단을 밝히지 않아 선정위원들의 정확한 연령은 알 수 없으나 40~50대가 주류를 이룬 것으로 짐작된다.
40세라면 그가 태어날 때 프로야구가 출범했고, 55세라 하더라도 중학생 시절이었으니 초창기 프로야구 스타를 제대로 기억할 리가 없다. 30대라면 출생하기 전이다.
그러므로 선정위원 선정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60~70대인 프로야구 초창기 기자와 해설위원, 기록위원, 심판, 원로감독이 선정위원으로 참여해야 이같은 엄청난 선정 오류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선정위원들이 출범 초창기 스타 선수들의 활약상과 기록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것은 말도 안되는 '직무유기'다. 일부 선수들은 사실상 인기투표가 돼 버렸는데, 만약 선정위원 명단 공개 원칙이 있었다면 함부로 투표를 했을까. 비공개이니 위원 개인이 좋아하는 후보에게 아무 생각없이 투표했을 가능성이 많다.
김일권, 김봉연 외 빠진 선수가 또 있다. 바로 '비운의 투수' 장명부(1950~2005)다. 장명부는 1983년 삼미에 입단, 그해 무려 30승을 거뒀다(16패 6세이브, 36완투, 자책점 2.34). 지난 22일 KIA 투수 양현종이 170이닝을 돌파했다고 각 언론은 대서특필했지만 장명부는 그 두배가 훨씬 넘는 무려 427과 1/3이닝을 1983년 한해에 던졌다. 그야말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다.
장명부의 시즌 30승은 백인천의 타율 4할1푼2리(1982년), 이승엽의 시즌 54홈런(1999년), 최동원의 한국시리즈 단독 4승(1984년), 선동열의 평균자책점 0.78(1993년)과 함께 KBO리그 불멸의 금자탑이다. 재일동포였기 때문에, 또 말년에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다고 제외했다면 너무나 옹졸한 사유다.
김일권, 김봉연, 장명부가 어이없이 레전드에서 제외됐다면 임창용(46)은 어처구니없이 선정된 케이스다. 임창용이 선수로서 이뤄낸 성과는 분명 '전설급'이다. 그는 통산 760경기에 등판해 130승(86패), 258세이브, 19홀드, 평균 자책점 3.45의 성적으로 해태와 삼성, KIA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하지만 팬들의 싸늘한 반응을 받고 있는 것은 그가 두번의 도박으로 실형까지 받았기 때문이다. 2016년 해외 원정도박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은데 이어 지난해 3월 고액 도박을 한 혐의로 지난 7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과 벌금 300만원, 사회봉사 40시간을 선고받았다. 음주운전이나 단 한차례의 '학폭'에도 사회의 지탄을 받는 마당에 실형을 받고도 레전드로 뽑은 것은 선정위원들의 양식이 의심스러울 정도다.
임창용의 시상도 문제가 되고 있다. 그가 소속됐던 팀들이 모두 꺼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40인중 유일하게 비대면으로 상을 받고 인터뷰를 한다면 부끄러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피트 로즈(81)는 메이저리그(MLB)에서 통산 최다인 4,256개의 안타를 날린 전설적인 선수다(월드시리즈 우승 3회에 세차례 타격왕, 17회 올스타 출전 등). 하지만 1989년 신시네티 레즈 감독으로 재임시 스포츠 도박에 연류돼 MLB에서 영구추방됐으며 33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징계가 풀리지 않고 있다. '일벌백계'를 하지 않으면 범죄가 뿌리뽑히지 않기 때문이다. 선정위원들이 임창용을 레전드로 뽑으면서 왜 면죄부를 줬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또 레전드는 그야말로 전설급 선수를 일컬으므로 55세 이상은 돼야 그 명예스러운 호칭을 얻을 자격이 있다. 40세가 레전드로 뽑힌 것은 레전드의 권위와 영예를 송두리째 격하시킨 것이다. 10년후 '50주년 레전드'에 선정해도 결코 늦지 않다. 역대 최다 100완투의 윤학길 등 초창기 스타들이 더 많이 뽑혔어야 했다.
이런 어이없는 시행착오와 오류를 주요 언론은 물론 인터넷 매체 어디에서도 지적하지 않은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이미 지난 일이지만 KBO나 야구기자회측에서 '유감 표명'을 검토해볼만하다. 본지 객원기자
스포츠한국 권정식 jskwon@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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