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핵-북핵 맞선 한반도 '공포의 균형'.. 미소 냉전 때보다 불안정
2019년 '하노이 노딜' 등 겪으며
북, 대화와 협상 접고 핵무장 집중
핵정책 법제화.. 선제공격도 명시
대북 위협 수위 높이는 한미
고위급 확정억제전략회의서 경고
"북, 압도적, 결정적 대응 직면할 것"
핵항모, 전략폭격기 전개 잦아져
핵전쟁 방지에 취약한 여건
인접한 대치, 북의 낮은 정보능력
소통채널 부재 맞물려 오판 위험
남북, 919 합의 준수 의지 다져야
한반도식 ‘공포의 균형 ’은 가능할까 ? 불가역적인 핵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한반도를 보면서 던져본 질문이다 . 미-소 냉전 시대에 유행했던 공포의 균형이라는 표현은 미국과 소련이 너 죽고 나 죽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인간의 자기보호 본능과 이성에 대한 최저치의 호소였다 . 결과적으로 이건 아슬아슬하게 작동했다 . 혹자들이 냉전을 ‘긴 평화 ’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 그럼 미국 핵과 북핵이 날카롭게 대립하는 한반도는 어떨까 ? 이에 대한 답을 찾기에 앞서 한반도가 불가역적인 핵 시대로 들어섰다고 보는 이유부터 짚어보자 .
한국전쟁 때부터 “지속적이고 계획적이며 반복적으로 ” 있어왔던 미국의 대북 핵위협은 ‘상수 ’에 속한다 . ‘변수 ’는 북한의 핵무장 여부였다 . 그런데 길게는 30년 동안 , 짧게는 2018∼2019년의 협상을 거치면서 북한이 내린 결론은 대화와 협상은 ‘부질없다 ’는 것이다 . 이와 관련해 북한이 2019년 여름을 거치면서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 그 이전 30년 가까이 북한의 핵심적인 목표는 북-미 관계 정상화에 있었다 . 하지만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 ’을 거쳐 6월 30일 판문점 남·북·미 정상 회동이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으면서 북한의 전략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 북-미 관계 정상화의 뜻을 ‘거의 ’ 접고 , 안보는 핵으로 , 경제는 자력갱생으로 , 외교는 중국과 러시아 중심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해오고 있다 .
상당한 성과도 거두고 있다 . 북핵의 고도화는 모두가 인정하는 바이다 . 경제 역시 외부의 평가와는 달리 꾸준히 좋아지고 있을 공산이 크다 . 과거에는 북핵이 북-중 ·북-러 관계의 걸림돌이었던 반면에 , 최근 북한의 핵 질주에도 불구하고 북-중 ·북-러 관계는 1990년 이래 가장 좋아지고 있다 . 그 중심에는 북한이 “국체 ”로 부르는 핵무력이 있다 . 김정은 정권은 핵이 안보뿐만 아니라 재래식 군비 절감 및 군수 -민수 전환을 촉진해 경제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 적대국인 한·미·일을 상대로는 ‘억제력 ’이 되고 우방국인 중·러를 상대로는 ‘자주의 무기 ’가 될 수 있다며 , 핵무장을 통해 “전략 국가 ”가 되고 있다고 자신한다 .
북한이 9월 8일 최고인민회의 법령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정책에 대하여 ’를 채택한 것은 그 결정판에 해당된다 . 이 자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핵 정책을 법제화함으로써 “핵보유국으로서의 우리 국가의 지위가 불가역적인 것이 되었다 ”고 천명했다 . 북한의 핵무장도 사실상 ‘상수 ’가 된 것이다 .
북한이 이 법령을 통해 밝힌 ‘핵무기 사용 조건 ’도 매우 공세적이다 . 우선 핵 사용 권한이 김 위원장의 독점적인 권한이라고 명시하면서도 그 조건으로 “국가지도부와 국가핵무력지휘기구에 대한 적대세력의 핵 및 비핵 공격이 감행되었거나 임박하였다고 판단되는 경우 ”를 명시했다 . 특히 핵 사용 명령권자인 김 위원장의 유고 시에 대비해 “사전에 결정된 작전방안에 따라 도발원점과 지휘부를 비롯한 적대세력을 괴멸시키기 위한 핵타격이 자동적으로 즉시에 단행된다 ”고 강조했다 . 이는 “북한의 핵 사용 징후 시 승인권자를 제거해 핵 공격을 막겠다 ”는 한-미 동맹의 참수작전에 대한 맞대응의 성격이 짙다 .
또 북한은 △핵 또는 대량살상무기 공격이 감행되었거나 임박했다고 판단한 경우 △국가의 중요 전략적 대상들에 대한 치명적인 군사적 공격이 감행되었거나 임박했다고 판단한 경우 △유사시 전쟁의 확대와 장기화를 막고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작전상 필요가 불가피하게 제기되는 경우 △국가의 존립과 인민의 생명안전에 파국적인 위기를 초래하는 사태가 발생하여 핵무기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 조성되는 경우도 핵무기 사용 조건들로 명시했다 . 핵무력의 임무를 억제에만 두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중대한 공격이 임박했다고 판단되면 선제공격도 가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시한 것이다 . 다만 이러한 교리는 핵 선제 불사용을 천명해온 중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핵보유국들과 유사하다 .
주목할 점은 또 있다 . 북한은 가장 폐쇄적인 국가로 간주되어왔다 . 그런데 적어도 핵 정책을 보면 가장 구체적이고 투명한 입장을 밝혔다 . 이는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와 비교해도 명확해진다 . 바이든 행정부는 2022년 3월 핵태세검토 (NPR) 보고서 작성을 완료했음에도 1쪽짜리 요약문만 공개했을 뿐 ,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까지도 함구하고 있다 . 이에 반해 북한은 핵무력의 임무와 사용 조건을 세세하게 열거하면서 이를 공개했다 . 왜 그랬을까 ? 그건 군사적 능력의 부족을 핵 사용 의지의 과시로 만회해 전쟁 억제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
이에 대응해 한·미도 대북 위협의 수준을 높이고 있다 . 9월 16일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 (EDSCG) 회의에선 “북한의 새로운 핵 정책 법령 채택을 포함하여 북한이 핵 사용과 관련하여 긴장을 고조시키고 안정을 저해하는 메시지를 발신하는 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 ”하면서 “북한의 어떠한 핵 공격도 압도적이며 결정적인 대응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 이를 위해 “미국은 핵 , 재래식 , 미사일 방어 (MD) 및 진전된 비핵능력 등 모든 범주의 군사적 능력을 활용 ”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 이를 과시하듯 핵추진 항공모함과 전략폭격기를 비롯한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도 잦아지고 있다 .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 한반도에서 공포의 균형을 통한 전쟁 억제론은 믿을 만할까 ? 결론부터 말하면 미-소 냉전 시대보다 더 불안할 공산이 크다 . ‘대륙간탄도미사일 ’이라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국과 소련은 5500㎞를 사이에 두고 대치한 반면에 , 한-미 동맹과 북한은 휴전선을 맞대고 있다 . 냉전 시대에는 사실상 엠디를 금지해 “국제 평화와 전략적 안정 ”에 기여한 탄도미사일방어 (ABM) 조약이 있었지만 , 한반도 안팎에선 한·미·일의 엠디가 갈수록 강력해지고 있다 . 한-미 동맹은 ‘고성능 망원경 ’으로 북한을 감시하고 있는 반면에 , 북한의 감시정찰 능력은 ‘안대 ’를 낀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첨단 정보자산을 갖추어도 인간의 오판과 오인 , 그리고 기계의 오작동으로 핵전쟁의 위험이 있었다는 것이 냉전 시대의 교훈이다 . 그런데 정보능력이 크게 떨어지는 북한이 어떻게 외부의 중대 공격이 “임박하였다고 판단 ”할 수 있을까 ?
미-소 냉전과 한반도의 상황을 비교할 때 , 또 하나의 중요한 차이가 있다 . 미-소는 1933년에 관계를 정상화했고 , 냉전 시기와 러시아가 소련을 승계한 이후에도 대사급 외교관계는 유지되어왔다 . 또 핫라인도 있어왔다 . 이러한 소통 구조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를 비롯한 여러 위기들이 핵전쟁으로 비화되는 것을 막는 데 큰 기여를 했다 . 이에 반해 한-미 동맹과 북한 사이에는 이렇다 할 소통 구조가 없다 . 북-미 관계는 북한 정권 수립 이후 74년 동안 한번도 정상화된 적이 없고 , 남북관계도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 유사시 확전을 막을 수 있는 마땅한 대화 채널은 부족한 반면에 여차하면 상대방의 지도부를 제거하겠다는 신호는 넘쳐나고 있는 것이 한반도의 현실인 것이다 .
이러한 점들을 종합해 볼 때 , 한반도식 공포의 균형은 매우 불안정하다 . 대책은 이러한 불안을 직시하는 것에서 마련될 수 있다 . 우선 큰 전쟁을 초래할 수 있는 작은 충돌을 방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졌다 . 윤석열 정부가 정파적 시각을 거둬내고 9·19 군사합의의 준수 ·발전 의지를 밝히고 북한도 이에 호응하는 것이 중요한 까닭이다 . 또 한반도식 핵전쟁 방지 협정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 이는 북한을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불편함 ’이 있지만 , 핵전쟁을 예방하는 데 기여한다는 절박한 ‘실용성 ’도 있다 .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wooksi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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