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대폭발 예고한 '활화산 김주형', 프레지던츠컵의 히어로로 부상
[골프한국] 전문가의 눈은 역시 달랐다. PGA투어 수석 저널리스트인 벤저민 에버릴은 프레지던츠컵 대회를 앞두고 'Meet Tom Kim, the Internationals' Chief Energy Officer'란 독특한 칼럼을 PGA투어 홈페이지에 올렸다.
톰 킴은 김주형의 영어 이름이다. 에버릴은 김주형을 만나 인터뷰한 뒤 그가 이제 겨우 20살이지만 CEO가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김주형이 실리콘 밸리의 스타트업처럼 브이넥과 스키니 진을 입고 코딩을 하진 않지만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의 퀘일 할로우 클럽에서 열리는 프레지던츠컵 대회에서 인터내셔널팀의 최고 에너지 책임자(CEO)가 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확신했다.
에버릴은 인터뷰 후 그의 거침없는 에너지에 전염된 듯 불꽃 같은 김주형의 PGA 등단 과정을 상세히 소개했다. 김주형은 제네시스 스코티시 오픈 3위에 오른 뒤 세계 골프 팬들의 레이다에 처음 포착되었고 로켓 모기지 클래식에서 톱10에 오르고 윈덤 챔피언십에서 쿼드러플 보기로 대회를 시작해 마지막 라운드에서 5점 차로 승리, 2차 세계대전 이후 PGA투어에서 조단 스피스에 이어 두 번째로 어린 우승자가 되었다며 세계랭킹도 연초 131위에서 현재 22위로 치솟았다고 덧붙였다.
인터내셔널팀의 단장 트레버 이멜만(43·남아공)도 김주형에게 마음을 빼앗긴 건 마찬가지다. 브룩스 켑카를 지도하고 있는 유명한 코치이자 자신의 친구이기도 한 클로드 하몬 3세의 강력한 추천으로 김주형을 인터내셔널팀 멤버로 뽑은 그는 연습 라운드에서 우연히 김주형을 만난 뒤 아예 골수팬이 되어버렸다.
이멜만은 "그는 겨우 스무 살이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성숙하고 다재다능하다. 그는 진짜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분명히 그런 열정을 가지고 있다. 보면 볼수록 신뢰가 가고 좋아하게 된다"고 극찬했다. 에버릴이나 이멜만은 매 순간 최선을 다한다는 그의 열정이 최고의 무기라는데 동감을 표시했다.
프레지던츠컵 사흘째 경기에서 김주형이 오전 포섬경기(두 명이 볼 하나로 번갈아 치는 방식)와 오후 포볼경기(두 명이 각각의 볼로 플레이한 뒤 가장 좋은 스코어로 승패를 가르는 방식)에서 각각 이경훈과 김시우와 짝을 이뤄 승리를 쟁취하자 벤자민 에버릴은 'Kim, ignites the international team hopes(김, 인터내셔널팀의 희망에 불을 붙이다)'라는 긴급 칼럼을 올렸다.
김주형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는 에버릴이나 이멜만은 물론 미국팀을 응원하는 골프팬들도 김주형의 활화산 같은 플레이에 넋을 잃었다.
김주형은 이날 오전 벌어진 포섬경기에서 이경훈과 한 조를 이뤄 미국의 막강한 스코티 셰플러-샘 번스 조에게 승리를 거뒀다. 이 경기에서도 김주형은 11번 홀에서 이글이 승리의 기폭제가 되었다.
김주형은 포볼경기에서 김시우와 팀을 이뤄 미국이 자신있게 내놓은 잰더 쇼플리-패트릭 켄틀리 조와 숨 막히는 경쟁을 벌여 마지막 홀에서 환호성을 터뜨렸다. 파4인 11번 홀에서 1온 후 18m 내리막 이글 퍼트를 잡는 장면이나 마지막 홀 버디 장면은 하이라이트 중 하이라이트였다.
특히 마지막 홀에서 약 3m 내리막 퍼트를 성공시킨 뒤 김주형이 보여준 폭발적인 세리머니는 타이거 우즈를 방불케 했다. 도화선 심지에 불이 붙어 타들어가는 다이너마이트를 보는 듯했다. 뜨거운 열기와 긴 여운은 오히려 우즈의 세리머니를 능가했다. 모자를 집어 던지고 세 차례나 펀치를 날렸다. 인터내셔널팀 선수들이 몰려와 환호를 울리면서 화산이 폭발하는 듯한 열기를 내뿜었다.
임성재는 오후 포볼 경기에서 세바스찬 무뇨스와 함께 토니 피나우, 케빈 키스너를 눌렀다.
인터내셔널팀은 이날 열린 포섬과 포볼경기에서 각각 2승2패, 3승1패를 기록, 첫날과 둘째 날 경기에서 2-8로 밀렸던 점수차가 7-11, 4점차로 좁혀졌다.
역대 전적 1승1무11패에 최근 8연패를 당한 인터내셔널 팀이 마지막 날 싱글 매치플레이에서 수모의 사슬을 끊을 수 있을지가 화제였다. 객관적으로 인터내셔널팀의 전력은 미국팀에 뒤진다.
더구나 대회를 앞두고 세계 랭킹 2위 캐머런 스미스와 호아킨 니만이 LIV로 옮겨 자원이 부족했다. 미국의 프레지던츠컵 팀의 평균 세계랭킹은 11.8위, 세계랭킹 16위 이내 선수가 9명인데 반해 인터내셔널팀은 세계랭킹이 가장 높은 선수가 마쓰야마 히데키(16위)다. 그러나 리더 격인 마쓰야마와 아담 스콧이 부진했다.
마지막 날인 26일(한국시간) 열린 싱글 매치플레이에서 인터내셔널팀은 미국팀의 벽을 넘는 데 실패했지만 한국 선수들은 대단한 승전보를 올렸다.
첫조로 나선 김시우는 미국의 최강자 저스틴 토마스를 만나 팽팽한 접전 끝에 18번 홀(파4)에서의 버디로 승점을 챙겼다. 임성재(24)는 캐머런 영과 대결에서 18번 홀까지 접전 끝에 1홀 차로 승리했다. 빌리 호셜과 대결을 펼친 이경훈도 라운드 내내 호셜을 압도하며 1개 홀을 남기고 3홀 차로 승리를 챙겼다.
기대를 모았던 김주형은 맥스 호마를 만나 3홀 차로 앞서나가다 후반 들어 퍼팅이 빗나가면서 아쉽게 역전패했다.
이날 싱글 매치 12경기에서 인터내셔널팀은 5승 1무 6패를 기록, 최종 성적은 12.5대 17.5로 미국이 올해 우승컵을 차지했다.
인터내셔널 팀이 비록 역전에는 실패했지만 PGA투어 '벼락데뷔'로 처음 프레지던츠컵에 참가한 김주형에겐 스타 탄생을 예고한 무대였다. 그가 어릴 때 즐겼던 영국의 애니메이션 '꼬마 기관차 토마스 이야기(Thomas the tank Engine & friend)'에 등장하는 질주하는 기관차의 이미지에 주변에 에너지를 전파하는 '에너자이저(Energizer)' 이미지까지 더해 PGA투어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을 CEO(Chief Energy Officer)로 거듭나는 모습이 기대된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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