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미래에 베팅한 두 천재… 18년 전 식사 후 앙숙이 됐다 [박건형의 홀리테크]

박건형 기자 2022. 9. 26.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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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크와 베이조스, 그리고 우주대항해 시대를 노리는 잠룡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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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27일. 멕시코 제 2의 도시인 과달라하라에서 열린 국제우주대회(IAC) 무대 개막식 무대에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가 섰습니다. 3000여명의 관객 앞에서 머스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래 인류는 자원이 고갈된 지구에서 멸종하는 길, 화성(火星) 등 다른 행성에서 새 문명을 만들어내는 다행성 종족(多行星種·Multiplanetary Species)이 되는 길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2016년 9월 멕시코의 과달라하라에서 열린 제67회 국제우주대회(IAC)에서 일론 머스크 CEO가 연설하고 있다

현장의 과학자와 우주탐사업체 관계자들은 일제히 환호했습니다. 가히 ‘인류 역사상 최고의 비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말이죠. 하지만 머스크의 과대망상병이 도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당시 머스크의 주력 사업인 테슬라는 전기차 예약만 잔뜩 받아놓고, 생산조차 제대로 못해내고 있을 때였으니까요. 실제로 당시 현장에 있던 저도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다행성 종족’이니 ‘화성 이주’처럼 공상과학(SF) 영화 같은 얘기를 과연 기사로 써야 하나 싶었을 정도입니다. 머스크조차도 “당신은 언제 화성에 가겠느냐”라는 질문에 “위험한 일”, “처음에는 희생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답했습니다. 그 후로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수백만년 전 지구에 먼 조상이 탄생한 이후, 인류는 줄곧 지구에서만 살았습니다. 지구 이외의 땅을 밟아본 사람은 아폴로 우주인들을 제외하면 없었죠. 하지만 이제 “100년 내에 100만명을 화성에 보내겠다”는 머스크의 호언장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현실화될 수 있는 구상’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주 전문가들은 우주를 무대로 한 대항해시대가 임박했다는 장밋빛 전망까지 내놓고 있습니다. 수백년전 유럽 각국이 신대륙 탐사에 국력을 쏟아 부었던 것처럼 우주 탐사에 전세계 각국과 기업들이 뛰어드는 시대가 열린다는 것이죠. 불과 6년만에 어떻게 이런 극적인 변화가 가능했을까요.

◇18년 전의 저녁 자리

물론 이런 발전이 하루 아침에 벌어진 일은 아닙니다. 월스트리트에서 일했던 머스크는 결제 회사 페이팔 매각으로 번 돈으로 2002년 ‘Space Exploration Technologies’, 오늘날 스페이스X로 불리는 회사를 세웠습니다. 여기에 또 한 명의 천재 사업가가 있습니다. 바로 미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입니다. 베이조스가 스페이스X의 경쟁사인 ‘블루 오리진’을 세운 것은 2004년이었습니다. 우리는 지난 수년간 이뤄진 우주개발 경쟁에 놀라고 있지만, 이들의 경쟁은 20년 가까이 됐다는 것이죠. 구글 공동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같은 사례도 있습니다만, 비슷한 야망과 비전을 가진 천재들끼리 친하게 지내기란 쉬운 일이 아닌가 봅니다. 베이조스가 블루 오리진을 창업한 2004년 베이조스와 머스크 두 사람은 저녁을 함께 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로켓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고 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앙숙이 됐습니다. 크리스천 대번포트의 책 ‘스페이스 배런스’에 따르면 머스크는 이날 식사 뒤 베이조스에 대해 “난 최선을 다해 좋은 조언을 했지만 베이조스는 대부분 무시했다”고 했습니다.

2004년 일론 머스크와 제프 베이조스의 저녁 식사 자리. 이날 이후 두 사람은 앙숙이 됐다.

이날의 대화 주제는 바로 ‘재활용 로켓’. 두 사람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부분이자, 우주 대항해 시대로 가는 초석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 기술입니다. 1926년 로버트 고다드가 세계 최초로 액체 연료를 사용하는 로켓을 쏘아올린 뒤 과학자들은 한 가지에 집중했습니다. 바로 ‘어떻게 하면 더 무거운 물건을 지구에서 더 멀리 보낼 수 있을 것인가’였죠. 물론 생각처럼 되진 않았습니다.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미국의 자존심을 되찾겠다’면서 추진했던 아폴로 프로젝트는 성공을 거뒀지만 어마어마한 예산을 감당하지 못하고 후속 프로젝트가 전면 중단됐습니다. 당시 미국이 아폴로 프로젝트에 쏟아부은 돈은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230조원에 이릅니다. 우리나라 1년 예산의 절반 정도에 이르는 막대한 금액입니다. 이후 과학자들은 우주 왕복선을 구상했습니다. 비행기처럼 계속 사용할 수 있는 우주선을 만들면 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우주로 다녀온 우주왕복선은 사실상 새로 만드는 수준의 정비가 필요했고, 미항공우주국(NASA) 과학자들이 이를 미리 알면서도 모른척 했다는 의혹도 쏟아졌습니다. 아시다시피 우주왕복선 역시 이제 과학관에 가야 볼 수 있습니다.

로켓이 날아 오르는 장면이 아니다. 위성 발사에 활용된 1단 로켓이 스페이스X의 해상 바지선에 착륙하고 있는 모습이다. 일론 머스크는 ‘1단 로켓을 재활용하면 어떨까’라는 질문으로 지금의 스페이스X를 일궈냈다. 이정동 교수는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이 바로 그런 ‘최초의 질문’이라고 했다. /스페이스X

머스크와 베이조스는 기존 과학자들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습니다. ‘어떻게 위로 올라갈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내려올 것인가’를 연구했고 로켓을 회수하는 기술 개발에 매달렸습니다. 연료통과 로켓 엔진 부분은 우주 발사체에서 가장 큰 비용을 차지합니다. 바로 이 부분을 손상 없이 회수해 다시 쓰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발사 비용을 기존의 10분의 1로 줄일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스페이스X와 블루 오리진 모두 여러 차례 실패를 거듭한 끝에 2015년 비슷한 시기에 이 기술을 개발해냅니다. 현재 스페이스X의 경우 1단 로켓을 10회 가까이 재활용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미국 플로리다 케이프 커내버럴 공군기지에서 발사된 한국 최초의 달탐사선 ‘다누리’ 역시 스페이스X의 재활용 로켓에 실려 달로 떠났습니다.

국내 최초 달 탐사선 '다누리' 발사장면 (출처:SpaceX) 2022.08.05 /뉴스1

◇미래를 건 두 천재의 경쟁

민간 우주 시대를 이끄는 두 사람의 경쟁은 아직 머스크가 앞서가는 구도입니다. 머스크의 스페이스X는 나사 우주인들을 국제우주정거장(ISS)까지 실어 나르고 있고, 달 관광 계획도 구체화시키고 있습니다. 미국 텍사스의 해안 마을 보카치카에는 초대형 우주 발사대인 ‘캐치 타워’를 짓고 있는데 영화 고질라의 이름을 따 ‘메카질라(mechazilla)’로 불리는 이 건물의 높이는 145m에 이릅니다. 머스크는 이 메카질라에 로봇팔을 달아 초대형 로켓인 스타십을 발사하고 착륙시킬 계획입니다. 지구로 귀환하는 스타십을 잡아 다시 로켓과 조립한 뒤 그대로 쏘아올리는 방식입니다. 미국 기술 매체 기즈모도는 “메카질라와 ‘젓가락’으로 불리는 로봇팔은 비용을 아끼면서 신속하게 우주선을 발사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머스크는 메카질라가 완성되면 현재 한달 이상이 걸리는 로켓 정비와 재활용을 한 시간 이내로 줄이고, 스타십 발사도 하루 최대 3회까지 가능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진짜 우주 공항 시대가 열리는 겁니다.

머스크가 설립한 민간 우주기업 스페이스X가 텍사스주 보카치카에 건설 중인 우주 발사장에 설치되고 있는 초대형 발사대의 모습을 담고 있다. 높이 140m에 이르는 이 발사대는 영화 속 괴물 고질라에서 이름을 따 ‘메카질라’로 불린다. /유튜브

물론 베이조스도 만만치 않습니다. 베이조스는 지난해 7월 블루 오리진의 로켓 ‘뉴 셰퍼드’를 타고 직접 우주에 다녀왔습니다. 생중계를 통해 ‘머스크와 달리 난 우주에 직접 다녀왔다’는 것을 전세계에 과시한 것이죠. 블루 오리진은 이후 TV시리즈 ‘스타트랙’의 선장 윌리엄 섀트너를 우주 관광에 동원하는 등 끊임없는 화제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블루 오리진은 NASA와 함께 차세대 우주정거장 건설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NASA는 현재의 ISS를 2030년까지만 운영한 뒤 민간 주도의 우주정거장으로 대체할 계획입니다. 블루 오리진 뿐만 아니라 방산업체 록히드 마틴과 노스럽 그러먼 등도 뛰어들었고 숙박 시설 설계는 글로벌 호텔 체인 힐튼이 맡을 계획입니다. 이른바 ‘우주 호텔업’이라는 신사업 영역이 개척되고 있는 것이죠.

제프 베이조스가 지난 12일(현지 시각)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 '오늘 아침 트레이닝 센터에서 행복한 직원들' 이라는 설명을 달았다./인스타그램 캡처

다만 블루 오리진은 기술적으로는 아직까지 스페이스X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블루 오리진의 뉴 셰퍼드 로켓은 스페이스X의 팰컨과 달리 아직 완전한 우주가 아니라 지구와 우주의 경계인 ‘준궤도’를 타깃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지난 12일 텍사스에서 발사된 뉴 셰퍼드는 이륙 1분 뒤에 8km 상공에서 불을 내뿜으며 발사에 실패했습니다. 발사에 실패한 것이죠. 신뢰성이 핵심인 우주로켓에서 발사 실패는 치명적인 문제가 됩니다. 긍정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뉴 셰퍼드는 로켓 역사상 최초로 ‘비상 탈출 시스템’을 도입했는데, 이번 발사에서도 무인 캡슐이 로켓에서 분리돼 지상에 무사히 착륙했습니다.

<YONHAP PHOTO-1410> 엔진 이상으로 로켓 발사 첫 실패한 '베이조스' 블루오리진 (우주공간 AFP=연합뉴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이끄는 미국 우주 탐사기업 블루오리진이 12일(현지시간) 텍사스주에서 준궤도 로켓인 뉴 셰퍼드를 발사한 직후 무인 캡슐이 비상 엔진을 작동해 부스터에서 분리되고 있다. 이날 오전 텍사스에서 발사된 뉴 셰퍼드 로켓은 1분 뒤 약 8㎞ 상공에서 부스터 엔진이 갑자기 불꽃을 내뿜는 모습이 보였고 이에 따라 자동으로 로켓에서 분리된 캡슐은 낙하산을 펼치고 지상에 착륙했다. [블루 오리진 제공 동영상 캡처] 2022.09.13 jsmoon@yna.co.kr/2022-09-13 09:56:52/<저작권자 ⓒ 1980-202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블루 오리진은 록히트 마틴과 함께 2014년부터 ‘BE-4′라는 엔진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 엔진의 목적은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로켓 의존을 끝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당초 2017년 개발 완료가 목표였던 BE-4 엔진은 올해 12월에나 시험 발사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럼에도 우주 시장 관계자들은 블루 오리진이 스페이스X의 유일한 대항마라는 것에 이의가 없습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베이조스의 막대한 자산이 블루 오리진의 가장 큰 경쟁력”이라며 “블루 오리진의 우주 관광은 더 큰 우주 시장 개척을 위한 연습에 불과하다”고 평가했습니다.

◇또다른 경쟁자들

머스크와 베이조스의 경쟁에 가려 있지만, 우주 대항해 시대의 잠룡으로 꼽히는 기업과 국가는 또 있습니다. 비즈니스 정보 플랫폼 Qichacha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매년 1만개 이상의 우주 관련 기업이 등록됐습니다. 그만큼 이 시장을 새로운 기회로 보는 곳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 중 가장 앞서 있는 것은 리처드 브랜슨 영국 버진그룹 회장입니다. 브랜슨은 민간 우주 회사 ‘버진 갤럭틱’을 세워 민간 우주관광 시장을 선점하려 하고 있습니다. 수백장의 티켓을 이미 팔았는데, 가격이 1인당 45만달러 정도 됩니다. 중국의 잠재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지난 18일 중국 CAS스페이스 설립자 양이칭은 관영 매체 글로벌타임스 인터뷰에서 “중국 민간 우주 분야가 시장을 검토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중국의 민간 우주시장 규모가 2015~2020년 사이 연평균 22.09% 성장했다면서 10년 안에 미국을 따라잡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실제로 중국 국가우주국(CNSA)은 2025년 7명의 민간 관광객을 지상 100km의 우주로 보내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자체 발사체를 갖고 있는 인도는 지난 6월 인도우주연구기구(ISRO) 내에 ‘인 스페이스’라는 민간 우주 진흥 부서를 만들었습니다. 이날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21세기 현대 인도의 발전 여정에 새로운 장이 추가됐다”면서 “민간은 과거 우주 산업의 공급 업체로 간주됐지만, 이제 새로운 승리자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인도 역시 테스트를 거쳐 2024년 이후에 인도 최초의 유인우주선인 ‘가가니얀’을 발사할 예정입니다.

인공위성을 탑재한 인도 자체 제작 로켓 추진체(오른쪽)와 조립 시설. 추진체 조립이 끝나면 조립 시설 건물은 레일 위에 실려 뒤로 물러난다.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리즈를 집필한 SF작가 아서 C 클라크는 1962년 저서 ‘미래의 프로필 : 가능성의 한계에 대한 조사’에 이렇게 썼습니다.

“충분히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Any sufficiently advanced technology is indistinguishable from magic)”

과학과 기술로 인류의 미래를 개척하는 천재들의 경쟁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 마법을 보여줄지, 그것이 과연 언제가 될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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