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로서의 전승탈춤과 일상생활문화로서의 축전탈춤과 새로운 예술장르로서의 창작탈춤

2022. 9. 26.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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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춤과 나] 채희완의 탈춤 8

[채희완 서울대 민속가면극연구회 1기, 70학번]
이 글은 채희완 부산대학교 명예교수의 2021년 7월 1일자 '채희완의 탈춤1'으로 시작한 여덟번 째 글입니다.

정병훈 : 또 질문 있으시면 마지막으로 받겠습니다. 네, 강동옥 선생님.

강동옥 : 제가 드리는 질문은. 답이 있을지 없을지, 또 이 자리에서 간단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 탈춤을 하고 있는 당사자로서, 진주탈춤보존회의 선배로서, 이 행사를 또 주관하고 있는 당사자로서, 제가 질문을 드리면, 어제, 아니 어제는 아니죠. 그제 첫날, 둘째 날 이렇게 저희가 ‘봉산탈춤’과 ‘강령탈춤’을 초청해서 공연을 했습니다. 그것을 본 첫날 ‘봉산탈춤’은 물론 짧게 했는데 앞에 ‘팔목중춤’을 보고서 담배를 태우러 나와 버렸습니다. 왜냐하면 선생님 말씀처럼 형편이 없어서 차마 볼 수 없는 그런 수준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뒤에 그 공연을 계속 본 사람도 그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뒷날 ‘강령탈춤’은 짧게 했지만 다 지켜봤는데, 거의 뭐 박도 못 맞추는 이런 수준, 그리고 장단을 치는데 장단이 서툴러 초등학생들이 3시간 배운 수준에 장단을 치고, 악사가 추임새를 넣고 하는 것도 너무나 안 어울리는 그런 수준이었습니다. 명색이 국가지정 무형문화재의 수준이 이럴진대, 그나마 연행에서 볼거리가 많은 북쪽 지방 탈춤이 그럴진대, 우리의 탈춤의 미래는 과연 어떠할 것인가? 이것들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희 단체뿐만 아니라 모든 단체들이 안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겠지만, 탈춤을 하는 사람이 별로 없죠. 그럼 우리는 이제, 조만간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런 어떤 참담함과 뭐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선생님께서는 교주, 탈춤계의 교주로서,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미래를 어떻게 예측할 수 있는가? 그러면 지속가능할 것인가? 없어져도 뭐 그만, 이러다가 없어져도 그만 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그런,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보존회들이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저희 나름대로 뭐 아까 말씀드렸던 ‘백정’, 이런 창작탈춤이나 대중화 사업도 해보고, 여러 가지 춤 같은 것들을 독립시켜서 무대춤으로 만들어보고, 이런 현대화 작업, 대중화 작업, 이런 작업들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래는 어둡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넓은 영역의 질문인데 짧게 간단하게 한 번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문화재로서 탈춤, 살아있는 민속으로서 축전탈춤, 새로운 연행장르로서 창작탈춤

채희완 : 예. 저는 당시 초창기에 대학 탈춤이 하는 일은 ‘각 지역의 탈춤을 전수받고, 전승시키는 일이 아니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탈춤을 어떻게 대학문화화하고 축전화하고 오늘의 일상문화예술화 할 것인가가 중심과제라고 보았습니다. 말하자면 민속극부흥문화운동이지요. 전수나 전승에 관한 일을 해보고 싶은 사람들은 그 보존회 단체에 들어가서 철저히 ‘보존 전승’하여 더 이상의 훼손이나 소멸을 막아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무형문화재로 지정할 당시에도 논란이 많이 있었습니다마는, 일단 지정을 하여 ‘박물관에 소장되는 그런 정도의 박제화된 것이라도 좋다. 현재 생활과 다소 동떨어진 역사적 유물로서 존재해도 좋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만큼 보존은 시급하고 꼭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고, 그게 문화재로 지정한 의도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른바 ‘원형 보존’이지요. 그리고 또 한편, 그것이 ‘살아 있는 민속’으로서, 오늘 살아있는 생활의 축전으로서, 일상 예술로서 전환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사람도 일차적으로는 원형 살리기 자리에는 더불어있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두 가지 일은 전승 문화재로서건 일상생활축전으로서건, 특히 탈춤 경우에 사람이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모여서 해야 될 집단연희물임을 가장 핵심적인 과제로 봤습니다. 이를테면 집단공동체성인데, 그것은 전수를 받든, 공연을 하든 개별적인 성취보다 집단적인 성취를 이끌어내는 일이지요. 공연 기량이 말도 못하게 떨어져있다는 것은 그것은 바로 집단 공동체성의 확보에 지장이 많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개별적 창의력의 발휘가 한 과제인 최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개별 개인기 수련방식과 함께 그보다 면저 집단수련의 방식을 새롭게 기획해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또 더욱 중요한 일로는 그것을 수원지로 해서 새로운 관점으로 시야를 넓혀주는 계기물로 삼아 상상력과 신기에 의해 새로운 표현력을 확보하고 나아가 이를 오늘날 이 땅의 민족예술의 한 장르로 만들어 나가는 작업입니다. 곧 새로운 연행양식으로 창작탈춤, 마당굿, 마당극을 창출하는 작업입니다. 어쩌면 현재 ‘민족극운동협회’분들이나 또는 ‘민족극 협회’가 하는 일이 이런 일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강동옥의 양반춤 ⓒ채희완
▲김수업 지음 백석의 노래, 휴매니스트출판그룹, 2020
▲진주오광대 복원 1993 ⓒ채희완

일부 전승문화재의 참담한 전승실상과 새로운 창작 의욕

지금 우리 강동옥 선생이 현행 지정문화재의 참으로 비참한 실정을 가감없이 지적하셨는데, 저도 그걸 ‘진주탈춤한마당’에 나온, 전승탈춤의 보유, 전승을 담당하고 있는 분들의 공연물을 보고서 여러 가지로 실망한 적이 실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금방 말씀하셨지만, 강령탈춤은 이미 제가 5~6년 전에 그 팀이 와서 하는 걸 보고 정말이지 소스라치게 놀랬습니다. 오늘날 전승되고 있는 탈춤의 표현력을 지키고 그걸 담당하자고 그것을 제도화시킨 것 아니겠습니까? 제 얘기 중에 혹 박물관적으로 박제화된 그런 것이어도 하나의 소중한 문화자료로서 남겨야 될 그런 의무가 있다는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그 전승행위가 가지고 있는 그 문화사적 의미 산출과 지속성, 그리고 전승공동체의 내적 결속력의 확보가 아니겠어요? 또 실질적으로 얘기하면 정말 잘 춰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것이 확보되어 있지 않은 것임을 철저하게 목격하면서 ‘이건 도대체 누가 맡아야 되는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진주오광대’의 복원과정과 그 이후의 활동을 어느 정도 아는 편입니다만, 우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복원한 지 꽤 됩니다만은 이 시대 진정한 문화사적 의미의 역사성과 예술성을 드높이는, 그 표현의 내용과 양식으로 표상해내고 있는가? 뼈아프게 되묻게 되는 그런 것이죠.

정병훈 : 시간이 많이 갔는데요. 한 분만 더 받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채희완 : 아까 지금 질의에 조금더 보충해서 얘기한다면, 그 속에서라도 ‘진주오광대’와 함께 강동옥 선생이 주도하시는 그 ‘풍류춤회’, 아까 ‘백정’이란 춤극도 그렇습니다마는, 그런 새로운 창작의 어떤 열기가 모아져 있는 그런 작품을 계속 만들어가는 일도 진주오광대의 진정한 의미의 표현력의 확보와 확충을 위해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별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병훈 : 네. 이제 마칠 시간이 다 됐는데요 ‘진주탈춤한마당’에 오셨으니까 또 진주의 ‘탈춤한마당’을 최초로 창립하신 하신 분이 김수업 선생님이시거든요. 김수업 선생님에 대한 회고를 좀 잠깐 말씀해 주시고, 저한테는 하신 말씀이 있죠. 좀 말씀해 주시고 ‘진주탈춤한마당’에 대한 당부가 있으시면 끝으로 말씀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채희환 : 저는 김수업 선생님을 잘 몰랐습니다. ‘진주탈춤한마당’이 처음 생기고 나서 3회째에 인사를 드리고 알게 됐는데요. 지금도 놀랍게 생각을 합니다. 처음에는 이 분이 누구신지 알지 못해서 글도 그 분이 쓴 글을 읽은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진주오광대’를 복원하시면서, ‘진주오광대’ 복원을 위한 시민단체를 꾸리시면서 거기에 소식지 같은 것을 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을 추진하는 데 기반이 되고 있는 논거 창출과 대중공감권 확보라는, 그 창창하고도 점진적인, 학문대중 공유 방식으로 그렇게 추진하시는 그것을 보고 참 그래야지, 깨달은 바 많았습니다. 거기다가 그 진주오광대 복원을 위한 연습을 진행하는데, 어느 때인지 어느 성당에서 하게 되었는데, 한참 거기서, 그 성당에서 한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이지 않습니까. 그런데에 더하여 사모님이 그 연습시간 중간에 음식을 차려가지고 내어오셨는데, 그것도 간식이 아니라 정식으로까지 차려 오시는 것을 보고 정말 그 마음 깊이 감명하였습니다.

진주탈춤한마당을 일으키신 김수업 선생님

그리고 선생님이 경상대를 떠나서 카톨릭대학의 총장으로 가시면서도 ‘우리배달말학회’와 연관되어 가지고 전국 교사들을 상대로 해서 여러 교육프로그램을 개설하셨었는데, 거기에 한 과목으로 부르셔서 제가 강의를 대전에서 같이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거기 계신 분들은 이제 현역 고등학교 교사분들이었는데, 그 분들의 그 눈길에서 발림에서 무엇인가, 우리 말, 우리 몸짓, 그걸 그대로 느꼈습니다. 그래서 ‘배달말을 지키고 잘 쓰이게끔 학문적으로 실천적으로 하는 것과 우리 몸짓을 잘 지키고 실생활에 잘 쓰이도록 하는 것이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라는 생각을 그 자리에서 깊이 하게 됐습니다. 생각을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눈빛과 발림을 통한 감지(感知)이지요. 그건 어쩌면 선생님이 저에게 내주시는 과제이기도 하다고 느꼈습니다. 김수업 선생님의 어떤 생활단편적인 것하고도 연관되는데요. 이를테면, 식사하실 때 국물을 잘 안 드셔요. 건지만 주로 드시고, 그래서, 제가 듣기에 마른 밥을 드시면은 오래 산다고 그러던데요, 그 어른이 피식 웃으셨어요. 그런데 그 분이 얼마 안 되어서 가셔서 그렇습니다. 그때 내가 공연한 소리를 하여서 일찍 가셨구나, 맘에 없는 빈 소리가 역풍을 맞게 했다고 이제도 후회하고 있습니다.

배달말 쓰기와 우리 몸짓말 쓰기는 동행의 것임을 넌지시 일러주다

제가 우연히 부산의 동래역 근처 동네 책방에서 김수업선생의 제자분이 쓰신 ‘백석의 노래’라고 하는 책을 처음 접했습니다. 날쎄게 구입하여 몇 대목 읽기도 전에 아예 만사를 뿌리치고, 아침 일찌감치에 거기 실려져 있는 ‘백석의 시’ 세 편과 그 시들의 해설을 읽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 해설이란 김수업 선생님의 그 세 분의 제자들이 선생님의 분석과 해석을 용케 기록해놓은 내용이지요. 요새는 그 시집을 두 번째로 읽고 있습니다. 또 선생님이 배달말 학회지에 쓰신 처용무에 관한 논문도 감명 깊었습니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오방 처용무는 세종조 때 궁중이데올로기로 재편된 것이고 처용무의 본 자리는 병신춤의 한 가지인 쳐용희에 있음을 밝히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신나고 학문적 통쾌감마저 불러 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학술지에 실려 있는 논문인데 뭔 논문이 추리소설 읽는 듯해서 호기심과 추리력, 긴장감과 박진감을 선사해 줍니다.

정병훈 : ‘진주탈춤한마당’에 대해서도 한 번 말씀을

채희완 : 저는 뭐 죄송스러운 일입니다만, 3회째부터 예술감독이라는 이름으로 ‘진주탈춤한마당’에서 팜플렛에 격려사 쓰는 일이 맡아하는 주업무였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조차도 잘 못했습니다. 요즘은 어쩌면 그것밖에 못하는 일이 됐는데요. 요즘 저는 ‘진주탈춤한마당’이 현대 ‘진주고을굿’으로 됐으면 좋겠다. 현대 진주의 삶, 오늘 진주에 사시는 분들의 현대세시풍속처럼 ‘일년에 한 차례 벌이는 마을굿, 고을굿으로 됐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3년 전부터 유네스코가 지정한 ‘창의도시로서의 진주 축전’으로 진행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창의도시로서의 그것이 ‘진주고을굿’을 위한 협조적 관계 속에서 기획적으로 도입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열망하는 바가 있습니다. 두 가지입니다. 스러져 있는 대학 탈춤을 다시 일으키게 하는 계기를 ‘진주탈춤한마당’이 마련해준다면, 이 자리에서 적어도 하루라도, 모이게 하는 이런 자리를 만들어 주면 어떻겠는가?
▲창작탈춤 패 지기금지의 천지굿 2021 ⓒ채희완
▲칼춤 커튼콜 ⓒ채희완
▲풍류춤 연구회의 운수좋은 날 ⓒ채희완

창의도시 진주에서 판벌이는 ‘현대진주고을굿’으로, 창작탈춤의 본산으로

또 한 가지는 용어가 아직도 확실치는 않습니다만, 시대가 요구하는 창작탈춤을, 마당굿을 적극적으로 선보여주는 한 판 창작마당을 설정해 봄이 어떠하냐는 겁니다. 창작탈춤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민초들의 삶의 이야기를 탈과 춤과 불림으로 기록화한다는 것으로, 그것이 현대생활과 밀착돼 있는 내용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펼쳐지는 한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뜻으로서의 ‘현대진주 고을굿’입니다.

정병훈 : 지금까지 거의 2시간 반 동안 선생님 말씀을 들었는데, 코로나 시대를 접하면서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에 대한 여러 가지 반성을 하게 되고 뭔가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다시 탈춤에서 찾아보자고 하는 그런 논의들도 시작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계속해서 건강하셔서 채희완류의 봉산탈춤도 계속하시고, 창작탈춤패 <지기금지>를 중심으로 해서 새로운 창작 탈춤도 계속 만들어주시면서, 저희들을 이끌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다 같이 박수로 정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남성진 : 두 분 선생님 고맙습니다. 긴 시간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2년 학예굿 계획

2022년 학예굿에서는 두 판의 귀한 자리를 마련하였다. 첫째는 우리나라 탈춤 연구사에 커다란 획을 그은 정상박 선생님을 모신 대담 자리이다. 둘째는 70-80년대 대학가의 문화운동과 민주화운동에서 한 축이 되었던 대학 탈춤반 출신들의 이야기 판이다.

양하(梁河) 정상박 선생님은 60여 년 동안 경남 지역의 민속학 연구에 매진해 왔으며 지금도 여전히 학문의 길을 걷고 있는 민속학자이다. 정상박 선생님은 “바로 손이 닿은 곳을 대상으로 손에 잡힐 듯이 철저하게, 밑바닥의 사람이 낸 문화를 위층으로 끌어올린 연구를 하신 분”이다.(최래옥 교수) 경남 부산권에서 펼쳐지던 오광대탈놀음과 들놀음의 현장을 누비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골골샅샅 찾아다니며 수많은 사람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며 기록으로 남기면서 답사를 해 왔다. 이에 많은 저서와 논문, 보고서를 남기신 정상박 선생님의 학문적 업적을 기리며 진주탈춤한마당 제전위원회에서는 특별 대담을 준비하였다. 정상박 선생님이 걸어오신 60여 년 민속학자의 발자취와 탈춤 인생담을 선생님의 회고로 들어보는 자리이다.

7, 80년대 대학 탈꾼들은 우리나라 탈춤부흥운동을 불러일으키는데 커다란 역할을 해 왔고, 우리 전통의 현대적 계승에 앞장서 왔던 인물들이다. 첨예한 현실문제를 다루며 정치비판, 사회풍자를 공공연히 해 왔고, 마당극과 집체극 등을 만들며 현장성, 자발성, 집단놀이성을 발휘하였다. 우리나라 민주화과정에 이바지 한 70-80년대의 대학 탈꾼들이 탈춤반, 연극반, 문화패 활동을 하면서 치열하게 외쳤던 입장단과 불림, 세상을 향해 휘젓던 활갯짓에 담긴 ‘탈탈한’ (탈춤, 탈반, 한판) 경험담을 듣는 이야기 마당을 마련했다. 여기서 대학에서의 탈춤운동, 문화운동으로부터 익힌 지식을 자신의 뒷날 인생에서 어떻게 풀어내며 살고 있는지 ‘털털한’이야기도 함께 들어본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이 되어버린 이 시점에서 지난 시절 대학문화를 주도했던 탈춤반 출신 몇 몇 탈꾼들의 50년이 흘러버린 지난 역사를 복기해서 듣는 것은 우리나라 탈춤 문화의 새로운 부흥에 작은 기여를 하고자 함이다.

우리 삶의 현장에서 다시 마당예술이 탄탄히 뿌리 내리기를 기대하며 2022년 진주탈춤한마당의 학예굿에서 마련한 두 판의 흥행을 기대한다.

▣ 개요

* 일시: 2022년 10월 20일 (목요일) 하오 13:30 ~ 17:00

* 장소: 진주 전통예술회관

* 주최 : 탈춤한마당 제전위원회

주관 : 사) 진주문화연구소, 사) 민족미학연구소

* 후원: 경상남도, 진주시

▣ 주제 : “탈춤과 나” 이야기 마당

▣ 세부 내용

<앞마당>

* 탈춤 공연 : 진주 망경초등학교 학생들의 진주오광대 말뚝이 춤

<본마당>

▪ 1부

* 대담 : 민속학자 정상박 선생님께 듣는 ‘오광대탈놀이의 현장’ 이야기

▴ 사회 : 허용호 (동국대 교양교육원 겸임교수)

▪ 2부

* 재담 : 70-80년대 대학 탈꾼들이 들려주는 ‘탈탈한(탈반·탈판·한판) 활동’ 이야기

- 자유 발언 : 대학 탈꾼 출신들의 개별 회고담

▴ 출연자 : 정연도(서울대 민속가면극연구회, 75학번), 윤만식(전남대 민속문화연구회, 73학번), 김사열(경북대 탈춤반, 76학번), 김병립(부산대 전통문화연구회, 80학번), 정병훈(연세대, 탈춤연구회, 74학번), 홍경남(공주사대 연극반, 76학번)강동옥(경상대, 전통문화연구회, 81학번)

- 주제 발언 : 대학 탈꾼으로서 신념, 탈반 활동, 탈춤과 연관된 삶

▴ 진행 : 허용호 (동국대 교양교육원 겸임교수)

<뒷마당>

* 무계획의 향연

▣ 진행 (진주탈춤한마당TV 실황 중계)

13:00 인사말 : 진주탈춤한마당 제전위원장

13:10 공연 : 진주 망경초등학교 학생들

13:20 <1부> 대담

대담 : 정상박 선생님

14:50 질의 응답

15:10 <2부> 좌담

7, 80년대 대학 탈꾼들의 회고, 개별 자유 발언

16:10 공동 화제 이야기 돌림 마당

17:00 학예굿 마무리


▲2022 진주탈춤한마당 일정표
[탈춤과 나] 원고 청탁서

새로운 언론문화를 주도해가는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http://pressian.com)이 <사)민족미학연구소>와 <창작탈춤패 지기금지>와 함께 탈춤에 관한 “이야기마당”(칼럼 연재)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탈춤이 좋아서, 쏟은 열정이 오롯이 담긴 회고담이거나 증언, 활동일지여도 좋고 아니면 현금 문화현상에 대한 어기찬 비판과 제언 형식의 글이어도 좋습니다.

과거 탈춤반 출신의 세대에게는 아련한 추억을, 신세대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전통문화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글 내용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한 때나마 문화패로서 탈꾼으로서 개성넘치는 숨결을 담아내면 참 좋겠지요.

글 말미에는 대학탈춤패 출신임을 밝혀주십시오(대학, 학번, 탈춤반 이름 및 현직)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사진(1-5매)이나 시청각 자료도 곁들여 캡션을 달아 보내주시면, 지난 기억이 되살아나 더욱 생생한 느낌을 전달해줄 것입니다.

알뜰살뜰한 글과 사진제공에 대한 원고사례비는 제공되지 않고, 다만 원고가 묶여져 책으로 발간될 때 책 두 권 발송으로 사례를 대신합니다.

제 목 : [탈춤과 나] (부제로 각자 글 나름의 자의적인 제목을 달아도 좋음)

원고 매수 : 200자 원고지 15-30매(A4 3-5장)

(사진 등 시청각 관련 자료 캡션 달아 첨부하면 더욱 좋음)

보낼 곳 : (사) 민족미학연구소 (namihak@hanmail.net) 채 희 완 (bullim2040@hanmail.net)

[채희완 서울대 민속가면극연구회 1기, 70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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