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라'만 먹어요"..녹아내리는 빙과 시장
배스킨라빈스·아이스아메리카노로 이동
'빅4' 재편되며 시장 흐름 바뀔지 주목
무더운 한반도의 여름을 책임졌던 빙과류 시장이 주저앉고 있다. 한 때 2조원을 넘겼던 빙과 시장 규모는 1조원 초반대로 뒷걸음질쳤다. 배스킨라빈스 등 아이스크림 프랜차이즈의 등장과 커피 전문점의 확대에 따른 수요 감소, 주 고객층인 어린이 인구 감소 등이 주 원인으로 지목된다.
메로나보단 '배라'
국내 빙과 시장은 2015년 2조184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뒤 매년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식품산업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빙과업계 매출(소매 기준)은 2017년 1조8407억원에서 2018년 1조6817억원으로 8.6% 줄었다. 2019년과 2020년에도 각각 6.1%, 2.3% 감소했다.
지난해엔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으며 매출이 12%나 감소했다. 지난해 빙과시장 매출 규모는 2015년 대비 7000억원 이상 감소한 1조3574억원에 불과했다. 불과 6년 새 시장 규모가 30% 넘게 쪼그라들었다.
빙과 시장의 침체를 불러온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글로벌 아이스크림 프랜차이즈 브랜드인 배스킨라빈스의 급성장이다. 2011년 2352억원이었던 배스킨라빈스의 매출은 지난해 5692억원으로 배 이상 뛰어올랐다. 800여 개였던 가맹점 수도 1600개 이상으로 불어났다.
배스킨라빈스는 매달 새로운 맛을 출시하는 등 새로운 것을 찾는 1020의 수요를 공략해 성공을 거뒀다. 이를 통해 기존 빙과류에 비해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아이스크림 시장 1인자로 뛰어오를 수 있었다.
아이스크림 수요가 줄어들자 아이스크림 케이크, 아이스모찌, 아이스샌드 등 다양한 카테고리로 브랜드를 확장했다. 최근 식품업계의 트렌드로 떠오른 '굿즈 마케팅' 역시 배스킨라빈스가 10여 년 전부터 진행해 오던 이벤트다. 수퍼마켓에서 '쭈쭈바'를 사 먹던 소비자들이 배스킨라빈스로 몰려간 이유다.
쭈쭈바 먹을 어린이 없나요
저출산 기조에 빙과 시장의 최대 소비층인 어린이가 감소하고 있는 것도 시장 부진의 큰 요인이다. 통계청 e-나라지표에 따르면 국내 총 인구 중 아동 인구는 2012년 969만1876명에서 지난해 748만3944명으로 22.8% 감소했다. 10년 새 220만명이 줄었다.
빙과류가 대체로 당분이 많이 들어있어 '건강하지 않다'는 인식도 어린이들의 빙과 소비 감소에 한 몫을 했다. 자녀 수가 줄면서 아이들이 먹는 것을 까다롭게 관리하기 시작한 부모들이 빙과류 구매를 줄였다는 설명이다. 그나마 남아 있는 어린이들은 배스킨라빈스로 달려갔다.
90년대 말 시작된 커피전문점의 범람도 빙과 시장에 타격을 줬다. 스타벅스를 중심으로 아메리카노 문화가 도입되면서 더운 여름을 나는 방식이 빙과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넘어갔다. 빙과류처럼 보관이 까다롭지도, 녹아 흐르지도 않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곧 여름을 대표하는 음료로 자리잡았다.
30년 묵은 냉동고…'루키'가 없다
'그 나물에 그 밥'인 냉동고 구성도 소비자들이 등을 돌린 이유다. 지난해 빙과 시장 매출 1위 브랜드는 1974년에 출시된 빙그레의 투게더(682억원)다. 2위인 붕어싸만코(665억원)는 1991년에 출시됐고 3위 월드콘(655억원)은 1986년생이다. 5위 메로나가 1992년생 만 30세로 '최연소'다.
아버지 세대가 어릴 때 먹던 빙과류를 아이들도 여전히 먹고 있는 셈이다. 장수 브랜드의 파워로 볼 수도 있지만 그만큼 빙과업체들이 새로운 제품 만들기에 소극적이었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업계 관계자는 "유독 빙과 시장이 신규 브랜드가 없는 편인 것은 맞다"며 "시장 규모도 줄고 있어 적극적인 R&D에 나서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빙과시장이 오랫동안 '빅 4' 체제로 운영됐던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국내 빙과시장은 빙그레와 롯데푸드를 합병한 롯데제과, 해태아이스크림 등 3사가 90% 가까운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빙과는 제조공장·냉동유통 등 설비 면에서의 어려움 때문에 신규 진입이 어려운 업종으로 꼽힌다.
다만 지난해 빙그레가 해태아이스크림을 인수하고 올 여름 롯데제과와 롯데푸드가 합병하면서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한 지붕 두 가족' 체제인 빙그레보다 합병을 통해 조직 일원화 등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통합 롯데제과의 움직임이 관심이다. 실제 롯데제과는 합병 직후 난립한 빙과 브랜드를 통합하고 인프라 통합 작업도 진행하는 등 빙과사업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업계 관계자는 "롯데제과가 롯데푸드를 합병하면서 아이스크림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부분을 유심히 살펴봐야한다"며 "이미 제품 경쟁력과 인프라, 유통망을 갖추고 있는 만큼 양사 합병의 시너지는 생각보다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아름 (armijjang@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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