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연속 빅스텝' 밟아놓고 70조 감세.. 英 트러스, 출발부터 삐거덕?

조양준 기자 2022. 9. 26.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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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지 콰텡 영국 재무부 장관이 23일(현지 시간) 영국 의회에서 450억파운드(약 70조원) 규모의 감세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리즈 트러스(앞 줄 왼쪽) 영국 총리가 좌석에 착석해 쿼텡 장관의 발표를 듣고 있다. AFP연합뉴스
[서울경제]

리즈 트러스 신임 총리가 이끄는 영국 정부는 23일(이하 현지 시간) 약 70조원 규모의 대대적인 ‘감세’ 방안을 발표했다. 1972년 이후 반 세기 만의 ‘역대급’ 감세다. 보수당 경선 과정에서 감세로 영국 경제 성장률을 끌어올리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던 만큼, 트러스 총리가 임기 초반부터 공약 이행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시장은 이에 대해 의아하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기 위해 2회 연속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하며 긴축 속도를 높인 지 불과 며칠 만에 정부는 막대한 ‘돈 풀기’ 효과가 나는 감세 방안을 내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파운드화가 1985년 이후 37년 만에 최저치로 급락하는 등 금융 시장은 큰 충격을 받았다.

감세안, ‘킹달러’에 추락하는 파운드 더 끌어내려

23일 외환시장에서 달러에 대한 파운드화 가치는 1985년 이후 최저치인 파운드당 1.0859달러까지 급락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들은 파운드화의 ‘추락’이 이날 쿼지 콰텡 영국 재무장관이 총 450억파운드(약 70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감세 방안을 발표한 데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파운드화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으로 인한 달러화 초강세로 이미 파운드화와 달러화의 가치가 동등해지는 ‘패리티’에 근접할 정도로 약세를 나타내고 있었는데, 영국 정부의 감세 방안이 파운드화 약세를 더욱 부추겼다는 것이다.

영국 정부는 내년 4월부터 소득세 기본세율을 20%에서 19%로 인하하고 소득이 15만 파운드인 고소득자에게 적용되는 최고세율도 45%에서 40%로 낮추기로 했다. 또 인지세 부과 대상이 되는 주택 가격 기준을 현 12만 5000파운드에서 25만 파운드로 2배로 올렸다. 아울러 기존 19%에서 25%로 올리려 했던 법인세 인상 계획은 폐지해 ‘없던 일’로 하기로 했다. 콰텡 장관은 대규모 감세가 영국의 경제성장을 촉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감세 효과가 나타나면 올해 2분기 현재 -0.1%로 부진에 빠진 영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5%대로 올라설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은 것이다.

영국 영란은행 전경. AFP연합뉴스
“감세 효과 보려면 금리 지금보다 2배 이상 높여야 할 것”

그러나 시장은 막대한 ‘세수 펑크’ 가능성에 주목했다. 감세 때문에 발생하는 세수 공백을 메우려면 영국 정부가 대규모 국채를 발행해야 하는데, 이 같은 부채 규모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증폭된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영국 정부는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에 치솟은 에너지 요금으로 가중되고 있는 서민 피해를 줄이기 위해 재정으로 600억파운드(약 92조원)를 지원한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이 재원도 결국은 국채 발행, 즉 ‘나라 빚’으로 충당할 가능성이 높다. 영국 싱크탱크인 재정연구소(IFS)의 폴 존슨 소장은 “국가 부채 관리가 불가능한 지경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외신들은 특히 영국의 재정과 통화 정책이 심각한 엇박자를 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영란은행은 22일 8월 연간 물가 상승률이 10%에 육박할 정도로 심각한 고물가를 진정시키고 미국과의 금리 격차를 줄이기 위해 지난 8월에 이어 2회 연속 빅스텝을 밟았다. 이로 인해 영국 기준금리는 금융위기 때인 2008년 12월보다도 높은 2.25%로 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돈 풀기’ 효과를 발휘하는 대규모 감세 방안을 발표한 것이다. FT는 이는 가뜩이나 심각한 고물가를 부추기고, 이를 완화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다시 금리를 올려야 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영국 국립경제사회연구소(NIESR)는 “영국 정부의 추가 부채 발행으로 영국의 경기 침체 시기는 짧아지고 침체 정도도 낮아질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감세 영향으로 심각해지는)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기 위해 2024년까지 금리를 5% 수준으로 유지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영국 정부 의도대로 감세로 인한 경제 성장 ‘촉진’ 효과를 보려면 금리를 현재(2.25%)보다 2배 이상 올려야 한다는 의미다. 로렌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영국은 신흥국이 스스로 침몰할 때처럼 행동하고 있다”며 “최악의 거시 정책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영국의 이번 감세안을 혹평했다.

조양준 기자 mryesandn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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