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물류센터·라이더 일 하며 유통 눈떠, 물류 연구자의 길 찾았어요

김현정 입력 2022. 9. 2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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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때 집안 사정이 힘들어져 마켓컬리 물류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힘들다는 생각밖에 없었죠. 그런데 일하다 보니 물류센터라는 곳의 흐름이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사람들이 어떻게 일을 하는지, 사물이 어디서부터 어디로 흐르는지 같은 것들이요. 저는 그 흐름 자체보다 흐름을 만드는 뒷단의 근로자들이 보이는 삶의 의지, 활력 같은 것에 매력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수원 광교 앨리웨이-아이파크 단지에서 음식배달을 수행 중인 자율주행 배달로봇.


작가에서 ‘프로세스사이언티스트’로 진로 전환

소설을 쓰는 것은 문학을 만드는 창조행위라고 생각했던 진우씨는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사람이 의지를 가지고 어떠한 흐름을 만드는 일 역시 창조행위로 여겼어요.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프로세스사이언티스트가 되기 위해 연구활동을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죠. 조직(기업 등)이 목적에 따라 활동(경영)을 하다 보면 그 활동에 따른 정보(데이터)가 쌓이게 됩니다. 그 데이터는 시간적 흐름에 따라 절차(프로세스)를 구성하게 되는데 이로부터 어떤 프로세스를 도출하거나 프로세스의 문제점을 발견하는 연구 기법을 ‘프로세스마이닝’, 연구하는 사람을 프로세스사이언티스트라고 해요. 데이터마이닝을 연구하는 데이터사이언티스트와 친척뻘인 셈이죠.

“데이터사이언티스트는 데이터로부터 의미 있는 정보를 추출하는 일(데이터마이닝)을 합니다. 여기서 데이터는 흔히 엑셀 문서 형태로 볼 수 있는 정형적 데이터는 물론 형식이 정해지지 않은 비정형 데이터를 포함하죠. 프로세스사이언티스트는 어떤 조직의 프로세스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데이터 특성도 프로세스와 관련이 있죠. 연구 대상은 기업뿐 아니라 병원‧관공서 등 여러 분야의 조직이 될 수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프로세스마이닝 기법으로 *라스트 마일(Last Mile)과 *풀필먼트(fulfilment) 분야를 연구해 제가 관심 있는 물류나 유통에 적용해보고 싶습니다.”

하진우씨의 돈벌이 수단이기도 한 오토바이는 학문적인 교류를 위해 타 대학에 방문할 때도 유용하다. 진우씨는 한 몸처럼 다룰 수 있게 된 오토바이에 애정을 느낀다고.

진우씨가 학부 시절 전공이나 꿈과는 거리가 먼 물류 분야 연구자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전적으로 마켓컬리·뉴빌리티라는 두 회사에서 일하며 물류의 흐름을 경험한 덕분이에요. 지금은 유니콘기업이 된 마켓컬리에서 진우씨는 대학생 시절 일용직 아르바이트에서 협력업체, 정식 입사시험을 거쳐 정규직 운영팀 출고관리자로 총 1년 3개월간 일했죠. 이후 짧은 기간이지만 자율주행 배달로봇을 만드는 뉴빌리티에서 전략기획자로 일했습니다. 그 와중에 물류전문매체 커넥터스의 제안을 받아 객원 에디터로 활동하며 물류 관련 현장친화적인 글을 주 1~2회 정도 쓰기도 했어요.

퇴사·방황 이어져 ‘나는 회사에 적합하지 않나’ 고민

그가 본 마켓컬리는 장기적으로 옳은 일을 하겠다는 좋은 철학을 가지고 있는 회사였기에 평생 일하겠다는 생각으로 입사했죠. 그러나 철학과 물류 현장의 현실은 달랐습니다. 많은 임직원이 장기적인 가치를 좇으며 일함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선 매 순간 선택의 문제가 생겨요. 물류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품질(고객에게 상품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오배송 등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을 챙길 것인가, 아니면 빠른 속도(타임라인)을 지킬 것인가 양자택일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하는 경우가 자주 생기는 거죠.

유통물류 전문 미디어 커넥터스 객원 에디터로 활동할 때 서울 노원구 당고개역 인근 집들을 찍은 사진. 진우씨는 배송이 어려운 현장을 취재하면서 자율주행 배달로봇이 극복해야 할 여러 요소들을 경험했다.


“사람이 바쁘게 움직이다 보면 실수가 발생합니다. 저는 그 실수의 통계를 내고 왜 이런 실수가 발생했는지 문제점을 발견해서 프로세스를 개선하는 업무를 맡았어요. 출고 단계에서 최종 포장 데스크에서 검증하는 ‘바코드 접점’ 작업이 있는데 이 바코드를 많이 찍을수록 상품의 실제 위치추적이 잘됩니다. 제 생각엔 바코드 접점이 부족하다 보고 최종 출고 전 포장 데스크에서 한 번 더 검증하고 내보내자는 의견을 냈고, 현장에선 한 단계가 더 늘면 출고시간이 늦어져 엄청난 차질을 빚는다는 이유로 반대했죠. 저의 제안이 현장관리자의 이해관계에 부합하지 못했던 거예요.”

마켓컬리에서 출고관리자로 일하면서 진우씨는 고객에게 상품을 잘 전달하는, 고객을 기만하지 않는 것을 최우선 가치관으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가치관이 옳다고 무조건 강요할 수는 없죠. 회사에서 어떤 제안을 할 때는 반드시 여러 단계의 이해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설득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부분을 존중은 했지만 실행에는 미숙했어요. 조직생활을 하면서 넘어야 할 현실의 벽을 감당할 수 있는 성격도 상황도 아니었죠. 어렵게 들어갔지만 자신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다는 판단에 결국 퇴사했죠. 이후 수입이 끊기는 어려움은 물론 정신적 방황의 시기를 겪었습니다. 그때까지 진우씨에게는 마켓컬리가 하나의 세계였는데 그 세계가 무너지는 상실감이 컸죠. ‘나는 회사생활에 적응 못 하는 사람인가. 회사형 인간이 아닌가’ 자책도 했어요.

진우씨는 대학원 연구실이 프로젝트를 수주해 인건비를 받는 것과, 음식배달로 배달 수수료를 받는 것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퇴사 이후 밥벌이를 위해 오토바이 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죠. 당시 페이스북에 배달 알바를 하면서 느낀 경험을 글로 써서 올렸더니 뉴빌리티에서 전략기획자로 일해보자는 제안이 왔어요. 뉴빌리티는 자율주행 배달로봇을 제작하는 회사죠. 진우씨는 2021년 4월 뉴빌리티에 합류해 자율주행 배달로봇의 인도 통행을 한시적으로 허용해주는 규제 샌드박스 실증특례를 받기 위한 기획서 작업을 맡았어요. 하지만 이곳에서도 그는 자신이 회사나 조직과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참 생각이 많았어요. 그래서 스타트업에는 맞지 않는 유형이었죠. 스타트업이라면 자기들이 해결하고 싶은 한 가지 문제에 집중해 빠르게 성장시켜야 하는데 저 같은 사람이 자꾸 이것저것 고민을 늘어놓으면 속도를 낼 수가 없는 거죠. 어떤 HR(인사)분야 유튜버가 ‘너무 많은 고민을 하는 사람부터 쳐내라’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스타트업에서 해고 1순위가 고민이 많은 사람이라는 뜻이죠. 그렇다고 많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진우씨는 스스로를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자’는 신중한 타입이라고 말합니다. 사업을 밀어붙였을 때 생길 수 있는 각종 변수‧리스크 등을 꼼꼼히 검증해야 다음에 대규모 투자를 받거나 소비자가 기대를 갖고 유입됐을 때 배신감이나 실망감을 주지 않는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졌어요. 충분히 과학적으로 생각하고 검증을 거쳤을 때 실행하는 타입이며 이는 기업가나 회사인이 아닌 ‘연구자’의 역할이라는 것을 알게 됐죠.

논문 케이스 스터디를 앞두면 진우씨는 미리 구글 스칼라(Google Scholar)로 관련 논문을 찾아 읽는다. 그는 “좋은 연구자가 되려면 좋은 논문을 많이 잘 찾아 읽는 능력도 중요하다”고 귀띔했다.

간접경험 기회 많으니 굳이 시행착오 겪지 말길

반복적인 퇴사로 좌절을 겪으며 ‘내 성격 자체에 문제가 있나’ 고민도 했어요. 단지 길이 달랐을 뿐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죠. 진우씨는 특히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성향을 몰라서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싶다고 강조했습니다.

“요즘은 개발 블로그나 유튜브 등에서도 각 분야의 숨은 고수들을 통해 간접경험의 기회가 많이 있어요. 저는 돌고 돌아 결국 연구자의 적성과 길을 찾았지만 여러분은 굳이 오래 시행착오를 겪을 필요 없어요. 그러기 위해선 자신의 성격이나 성향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많은 간접경험을 통해 시행착오를 줄이라는 조언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석사에 이어 박사 과정을 거쳐 궁극적으로는 교수가 되는 것이 진우씨의 목표예요. 한국방송통신대에서 통계 및 데이터과학 공부를 병행하며 빠른 시일 내에 관련 학위도 딸 계획이죠. 지금도 자율적인 대학원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배달의민족 오토바이 라이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밥벌이 수단이지만 배달 라이더는 매우 위험한 일이기에 항상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합법적으로 오토바이를 운전하죠. 인도주행을 하지 않고, 제한속도와 신호를 다 지키고 횡단보도 건널 때는 시동을 끄고 바이크를 끌고 가는 원칙을 고수하는 라이더 중 하나예요. 현직 플랫폼 노동자로서 배달 라이더 현장에서 얻은 통찰을 때때로 페이스북에 올리죠.

프로세스마이닝(Process Mining)의 창시자인 컴퓨터과학자 알스트 교수는 프로세스 마이닝이 프로세스사이언스와 데이터사이언스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한다고 본다. ⓒ독일 아헨대학교(RTWH Aachen University) 윌 반 데르 알스트 교수


“미래에는 많은 산업 영역이 플랫폼 노동화될 거예요. 플랫폼 노동에는 빛과 어둠이 있지만 거부감을 갖기보다 거기서 발생하는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긍정적인 방안을 고민해보면 좋겠어요. 저도 자신의 시간을 자율적으로 쓸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배달 플랫폼서 노동하지만 대신 자신에게 많은 책임이 부여됩니다. 목숨을 담보로 할 정도의 책임을 질 자신이 있으면 플랫폼 노동을 해도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는 정규직으로 일하는 게 낫죠. 또 저는 정규직이라는 명예가 없어도 학업을 이어가면서 명예를 가질 수 있으니까 플랫폼 노동을 병행하는데요. 각자 자신이 처한 환경이나 가치관 등을 잘 돌아보고 나서 플랫폼 노동을 할지 말지 생각해보길 바랍니다.”

이어서 그는 프로세스마이닝이 미래에 얼마나 유망한지에 대해서도 설명했어요.

“많은 사람이 이미 데이터사이언티스트라는 직업이 유망하다는 것을 압니다. 최근 기업이나 여러 기관에서 데이터사이언티스트 채용 수요도 많죠. 이에 비해 프로세스사이언티스트는 아직은 잘 알려지지 않아 희소성이 있어요. 특히 다루는 데이터 특성이 절차와 관련됐기 때문에 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향후 이 분야 연구를 하면 취업은 물론이고 연구자로서 많은 기회가 있을 것으로 기대되죠. 만약 내가 어떤 절차를 개선해서 효율(성과)을 만들어내는 일을 하고 싶다면 프로세스사이언티스트의 길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 *라스트 마일(Last Mile): 상품이 제조사(1차 생산)로부터 최종 소비자까지 도달하는 전 과정 중 사람과 상품의 이동을 필요로 하는 가장 마지막 구간을 의미한다. 고객 입장에서는 상품을 제공받는 첫 단계로 여겨져 유통 및 운송업계에서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며 라스트 마일 딜리버리(배달)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안전하고 빠른 배송, 고객 만족 감동 서비스 등이 이에 포함된다.

*풀필먼트(fulfilment): 세계적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이 최초로 도입한 서비스 개념이기도 한 풀필먼트는 유통과정에서 고객 주문에 맞춰 제품을 선택·포장해 배송하기까지 한 회사가 일괄 처리하는 방식이다. 특히 온라인 판매에 특화되어 '다품종 소량' 상품을 빠르게 배송하며, 교환·환불까지 소비자 주문처리의 모든 과정을 담당한다.

글=김은혜 객원기자 sojoong@joongang.co.kr, 사진=하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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