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최초 40대 여성 총리 리즈 트러스 "폭풍우 이겨내 경제 재건"
'리틀 대처' 꿈꾸는 영국 세 번째 女 총리 탄생
‘제2 철의 여인’ ‘대처리즘 수호자’
보리스 존슨 전 총리를 이어 9월 6일(이하 현지시각) 공식 취임한 메리 엘리자베스(리즈) 트러스(47) 신임 영국 총리의 수식어다.
9월 5일 영국 집권 보수당은 당원 약 16만 명 대상의 당 대표 투표에서 트러스 총리가 57.4%(8만1326표)의 지지율을 얻었다고 밝혔다. 이로써 그는 마거릿 대처(1979~90), 테리사 메이(2016~2019)에 이어 영국 역사상 세 번째 여성 총리가 됐다. 40대 여성으로서는 영국 최초다.
트러스 총리는 원조 ‘철의 여인’으로 불리는 대처 전 총리를 잇는 강경 보수파로 통한다. 그는 당 대표 경선 과정에서 감세·규제 완화 등을 강조하고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관련해 러시아에 대한 강경 대처 입장을 내세웠다. 이뿐만 아니라 패션이나 말투, 몸짓까지 대처 전 총리를 따라 해 ‘대처리즘의 수호자’라는 평가도 나왔다.
그러나 과거 트러스 총리는 반(反)대처 성향이었다. 그는 1975년 영국 옥스퍼드에서 태어났다. 수학 교수였던 아버지와 간호사 어머니는 강경 좌파 성향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특히 트러스 총리 어머니는 영국 버크셔 공군 기지에 미국이 핵무기를 배치하기로 한 대처 정부의 결정에 반대하는 시위에 딸과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트러스 총리도 어린 시절 학교 모의 총선에서 대처 전 총리 역할을 맡았을 때 자신에게 투표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 옥스퍼드대 재학 중에는 중도 좌파인 자유민주당에서 활동했으며, 군주제 폐지를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대학 졸업 전 보수당으로 전향하고, 1996년 보수당에 입당했다. 트러스 총리는 옥스퍼드대 머튼칼리지에서 철학·정치·경제(PPE)를 전공하고 국제 석유 기업 셸 등에서 일했다. 트러스 총리는 2001년, 총선에서 2005년 서요크셔의 칼더밸리에서 보수당 후보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세 번째 출마한 2006년 런던 그리니치 지역 구의원에 당선됐고, 4년 후에는 노퍽을 지역구로 공천됐다. 당시 트러스 총리는 2006년 마크 필드 전 보수당 의원과 18개월간 불륜 관계였던 것이 드러나 위기를 맞았지만 결혼 생활을 유지했고, 결국 하원에 입성했다. 이를 두고 영국 더타임스는 트러스 총리를 “자신의 평판에 묻은 어떤 얼룩도 지워내는 능숙한 정치인”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2012년 교육 장관으로 내각에 발을 내디뎠다. 이후 2014년 환경 장관을 거쳐 20 16년 법무 장관, 2017년 재무 장관을 거쳤다. 2019년에는 국제통상 장관, 2021년엔 외무장관 등 내각 주요직을 고루 경험했다.
트러스 총리는 치솟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에너지 가격 급등 등 경제 현안을 떠안고 있다. 7월 기준 영국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10.1%로 두 자릿수를 넘었고 내년엔 22%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또 러시아 가스 공급 중단으로 10월부터 에너지 요금이 80%가량 급등할 수 있다. 영국 중앙은행 영란은행은 “올해 4분기부터 내년 말까지 긴 경기 침체를 겪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트러스 총리는 ‘감세를 통한 경기 부양’으로 대표되는 ‘트러소노믹스(Trussonomics)’를 내세우고 있다. △법인세율 인상 철회 △환경부담금 면제 등이 골자로, 전체 감세 규모는 300억파운드(약 49조원)에 달한다. 일각에서는 이런 정책이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고 국가 재정과 공공·필수 부문 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취임 후 첫 연설에서 그는 “폭풍우를 이겨내고 영국 경제를 재건하겠다”고 말했다.
연결 포인트 1
백인 남성 없는 ‘빅 4′ 내각 꾸린 트러스 파격 행보
트러스 총리는 9월 6일 최측근으로 구성된 내각을 발표했다. 영국 사상 최초로 부총리, 재무, 외무, 내무 장관 등 이른바 ‘빅 4′ 장관에 백인 남성이 없는 내각을 꾸려 주목받았다.
트러스 내각 첫 재무 장관은 존슨 총리 내각의 산업 장관이었던 쿼지 콰텡이 맡는다. 그는 명문 사립인 이튼과 케임브리지대를 거친 금융인 출신으로, 영국 첫 흑인 재무 장관이 됐다. 부총리 겸 보건복지 장관에는 최측근인 테리즈 코피 전 노동·연금 장관이 임명됐다. 이로써 여성 총리·부총리 체제가 구축됐다. 그는 2010년 트러스 총리와 함께 하원에 입성한 인물로 이번 당수 선거에서 트러스 총리 선거 캠페인을 이끌었으며, 존슨 전 총리 시절 노동연금 장관을 지냈다.
외무 장관은 보수당 의장과 교육 장관을 지냈던 제임스 클레버리를 발탁했다. 그 역시 영국 첫 흑인 외무 장관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다. 내무 장관에는 당수 선거 맞수였던 수엘라 브레이버먼 전 법무 장관을 임명했다. 케냐와 모리셔스 이민자 부모를 둔 인도계 여성인 그는 선거 초반 탈락 후 트러스 총리 지지를 선언했다.
영국에서는 이번 내각 인선을 두고 다양성에 방점을 찍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국 역사상 처음으로 내각 4대 요직으로 꼽히는 부총리와 재무·외무·내무 장관에서 백인 남성이 제외됐기 때문이다.
반면, 일각에서는 트러스 총리가 측근과 자신의 지지자들로 내각을 채웠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가디언은 “정치권에선 트러스에게 충성도에 따라 내각을 임명한 존슨 전 총리의 실수를 피하라고 경고했지만, 트러스는 그들에게 직책으로 보상했다. 이는 결정적인 순간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연결 포인트 2
외교 ‘매파’…러·중 강경 노선 전망
트러스 총리는 ‘철의 여인’ 대처 전 총리 후계를 자처하는 만큼 외교 정책에서 강경 노선이 뚜렷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외교 장관 시절부터 외교·군사 분야 ‘매파’ 기조를 이어 왔다. 특히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강경 대응 입장을 공언했다. 그는 당 대표 후보 시절 “중국 신장에서의 인권 유린과 홍콩에서 폭력,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지원하는 것을 볼 때 중국에 대해 더 강경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중국의 위협에 맞서 대만을 지원하고, 중국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아울러 대(對)중 의존도 축소나 틱톡 같은 중국 소유 정보기술(IT) 기업 단속도 주장했다.
러시아에 대해서도 강경 기조를 견지할 전망이다. 영국은 이미 우크라이나에 대전차 약 7000대와 미사일 및 장갑차를 보내는 등 후원국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트러스 총리 역시 외교 장관 시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 “러시아를 반드시 패배시켜야 한다”며 강력한 대처를 주장했다. 그는 9월
6일 총리 취임 후 첫 외국 정상과 통화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했다. 통화에서 트러스 총리는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영국의 확고한 지지를 재차 강조했으며, 젤렌스키 대통령의 키이우 방문 초대를 수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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