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성격 모호한 코인, 판사들 선제적으로 '코인 판례집' 낸다

황국상 기자 2022. 9. 26.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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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내 '블록체인법학회' 안팎 법관들 주도로 민사·형사 판결 백선(百選)집 발간코인 법적성격 기본법 나오기 전 불확실성 해소 기대
임종철 디자이너 /사진=임종철 디자이너

코인·NFT(대체불가토큰) 등 가상자산의 법적 정의에 대해 명확한 공감대가 없는 상황에서 판사들이 선제적으로 판결집 발간에 나선다.

이석준 서울회생법원 판사(사법연수원 40기)는 최근 법무법인 태평양 주최로 서울 종로구 센트로폴리스에서 열린 '제3회 가상자산 블록체인 시리즈 세미나'에 토론자로 나와 가상자산과 관련한 국내외 판결 동향을 소개한 후 이같이 밝혔다.

판결집 발간은 법원 내 판사들의 연구모임인 '블록체인법학회'의 회장을 맡고 있는 서울회생법원의 이정엽 부장판사(31기)를 중심으로 이 판사 등 5명의 법관들이 주도해 진행된다.
민사 90건·형사 100건 수록... 불확실성 해소 기대감
'판례백선'(判例百選)이라는 제목으로 발간되는 가상자산 판결집은 당초 민사·형사 사건을 각각 100건씩 선정해 수록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다만 민사사건에 대한 판결이 아직 풍부하게 쌓여 있지 않은 점을 고려해 민사 판결집은 90개의 사건만 수록된다.

민사사건 판결집의 작성에는 현재 3명의 판사들이 관여하고 있고 10~11월중 발간될 전망이다. 형사사건 판결집의 작성에는 5명의 판사들이 참여하며 늦어도 내년 중반쯤에는 발간될 것으로 보인다. 민사·형사 판결집은 모두 대외에 출간될 예정이다. 각 판결별로 문제가 된 주요 쟁점을 정리하는 식으로 판결집이 정리될 전망이다.

이미 코인·NFT 등 가상자산이 주요 투자대상으로 자리잡은지 오래 됐고 기반이 되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IT서비스들도 점차 현실화돼 가고 있다. 그런 만큼 가상자산 관련 민사·형사분쟁도 잇따르고 있다.

그럼에도 특금법(특정금융거래 정보의 보고 및 이용에 관한 법률)과 같은 특수목적의 법을 제외하고 민법·형법 등 일반법 차원에서의 정의(定義, Definition)는 전무한 상황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법원 일각에서나마 법관 중심으로 그간의 판결집을 정리하는 것은 정의조항의 부재에 따른 민간의 혼란을 줄일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향후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과 관련 규정 정비로 모호함이 해소되기 전까지 현행 법규가 실제 분쟁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나마 불확실성을 해소할 수 있다는 평가다.

이날 발제자로 나온 태평양의 윤정노 변호사는 특금법에서 가상자산을 '경제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서 '전자적으로 거래·이전될 수 있는 전자적 증표'라고 정의하고 있지만 기존 법체계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특금법은 어디까지나 자금세탁을 방지하기 위한 특별법에 불과해 민법상 물권·채권의 대상이 될수 있는지, 형법상 보호할 만한 재산적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것을 규정하진 않고 있다.
지난 21일 법무법인 태평양이 주최한 가상자산 세미나에서 이석준 서울회생법원 판사(왼쪽)가 토론에 참여하고 있다. 가운데는 발제자로 나선 법무법인 태평양의 윤정노 변호사, 오른쪽은 토론자인 법무법인 태평양의 윤주호 변호사 / 사진제공=법무법인 태평양

코인 법적성격 여전히 모호... "계약·약관 주의해야"
민법상 인정되는 권리는 △채권, 즉 특정인에게 급부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와 △물권, 즉 소유나 점유 및 전세 등의 형태로 배타적으로 특정 물건을 지배하는 권리가 있다. 그런데 코인은 전 세계에 흩어진 불특정 다수의 노드(Node), 즉 네트워크 참여자들에 의해 블록(데이터 연결단위)이 연결돼 만들어진다. 이걸 채권, 물권 중 어느 권리의 대상인지 가늠하기란 현재로서는 어렵다.

특히 비트코인 등 각종 코인이 '증권'에 해당하는지 여부도 여전히 이견이 많다. '범죄와 형벌은 미리 법률로 정해져 있어야 한다'는 헌법상 죄형법정주의 원칙 때문에라도 현재 가상자산 법적지위의 모호함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됐지만 권 대표가 체포돼 향후 재판에 넘겨지게 되더라도 코인의 증권성 여부는 형사재판에서 주요 쟁점이 될 것이라는 게 윤 변호사의 평가다.

금융투자상품으로 볼 것인지 말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윤 변호사는 올 상반기 당국이 '조각투자 등 신종증권사업 관련 가이드라인'을 만들었지만 여전히 어떤 코인이 증권으로 인정받을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기에는 너무 포괄적이라고 봤다. 어떤 코인이 증권으로 인정된다면 코인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 과정에서 증권신고서를 발행해야 하고 발행자도 사업보고서를 정기적으로 공시해야 한다. 관련 불법행위가 있다면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이나 사기적 부정거래 혐의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코인의 증권성 여부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다.

윤 변호사는 "가상자산을 론칭하고 프로그래밍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용역계약들이 체결되고 SAFT(Simple Agreement for Future Tokens) 형태로 계약이 체결된다"며 "계약조항이 간단할수록 그 공백으로 인한 여러 문제제기가 가능하고 분쟁 소지가 있다"고 했다. 또 "특금법이 있지만 가상자산 거래를 다룰 법이 없기 때문에 민법이나 계별 계약과 관련한 내용으로 법률관계들이 규율될 것"이라며 "뭣보다 중요한 것은 계약의 내용과 약관의 내용을 잘 살펴보고 분쟁에 대응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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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국상 기자 gshwa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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