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물 차고 불 꺼진 주차장.. "엄마 사랑해" 아들 목소리도 잠겼다
차량 한대 주차장 진입하며 뒤엉켜 혼란
수영 못해 배영자세로 누워있다가 구조돼
주차장 뒤편 철문 6명이 밀었지만 안 열려
"아들 죽음 헛되지 않으려면 참사 원인 밝혀야"
“아들을 꼭 한 번만 안아봤으면 좋겠어요.”
경북 포항시 남구 인덕동 W아파트 1단지 주민 김모(52)씨는 매일 아들 김주영(15)군의 방에서 영정 사진을 앞에 두고 울면서 기도하다가 잠이 든다. 김씨는 태풍 힌남노가 닥친 지난 6일 새벽 주영군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차를 빼러 갔다가 침수된 주차장에 갇힌 뒤 16시간 만에 구조된 생존자이면서 동시에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유가족이다.
그는 사고 당시 ‘살려달라’고 너무 많이 소리를 질러 성대결절 진단을 받았고, 집안 문을 다 열고 지낼 정도로 극심한 공황장애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참사가 되풀이돼선 안 된다는 생각에 힘을 냈다”며 한국일보 인터뷰에 응했다.
김씨는 “지하주차장 통로가 여러 곳인데 왜 한 곳에서만 구조를 시도했는지 모르겠다”며 “’차를 빼라’고 방송한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밖으로 나와 안내했더라면, 그날 그렇게 차량이 엉켜 많은 사람들이 갇히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차 빼라'는 방송만 있고, 안내는 없었다”
김씨가 “차를 빼라”는 관리사무소 안내방송을 듣고 아들 및 남편과 함께 현관문을 나선 시간은 오전 6시쯤이다. 기독교 신자인 김씨는 매일 교회 새벽기도를 가느라 오전 4시 30분이면 일어났다. 당일 태풍으로 새벽기도는 취소됐지만, 평소와 다름없이 눈을 떴다.
김씨는 “오전 5시 전에 ‘놀이터 주변 차를 옮기라’는 방송이 있었고, 5시 50분쯤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빼라’는 방송이 나왔다”며 “차를 빼도 옮길 데가 없을 것 같아 걱정하면서 나갔다”고 말했다.
방에서 곤히 자던 주영군도 엄마를 따라 나섰다. 김씨는 “태풍으로 휴교라서 더 자도 되는데 ‘엄마 아빠만 가면 안 된다’며 쫓아 나왔다”며 “내가 나가자마자 빗물에 미끄러져 넘어지니까, 아들이 ‘내가 이래서 엄마를 안 챙길 수 없다’고 부축해줬다”고 말했다.
김씨의 걱정대로 지상엔 차를 끌고 나와도 댈 만한 곳이 없었다. 남편은 그래도 비를 맞으며 지상에서 주차할 곳을 찾기로 했고, 김씨와 주영군은 지하주차장으로 갔다. 당시 바닥엔 물이 없었다. 김씨가 차를 통로 입구까지 몰고 나올 때도 순조로웠다. 하지만 차량 한 대가 지하로 들어오면서 꼬이기 시작했다.
김씨는 “평소 차선 하나는 진입용으로, 하나는 출구로 이용됐지만, 그날은 차를 빼라는 방송으로 2개 차선 모두에 밖으로 나가는 차량이 줄지어 있었다”며 “그런데 차 한 대가 갑자기 들어오면서 뒤엉켰고, 그때부터 물이 급속도로 차올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밖에서 지하로 차량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통제했다면 모든 차량이 차례로 나왔을 것”이라며 “지하주차장이 한 곳인데 관리사무소는 왜 방송만 하고 아무도 나와 있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에어포켓이라 부를 공간 사실상 없어”
물이 순식간에 차오르자, 김씨는 차를 포기하기로 했다. 키가 180㎝까지 커버린 아들을 위해 1년 전 큰 마음 먹고 장만한 차였지만, 주영군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차 문이 열리지 않았다. 한참 만에 주영군이 조수석 문을 열었고, 끝내 운전석 문을 열지 못한 김씨는 조수석으로 자리를 옮겨 빠져 나왔다.
겨우 밖으로 나온 김씨 모자는 차량 통로를 걸어 올라가려고 했지만, 거센 물살에 붙잡을 만한 게 없었다. 근처에 있던 해병대 출신 20대 청년과 노부부, 50대 남성 1명도 마찬가지였다. 김씨 모자와 이들은 지하주차장을 벗어나기 위해 가까운 계단 통로로 이동했지만, 문이 말썽이었다. 강한 물살에 이미 뒤틀려버린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남은 탈출구는 ‘ㄷ’자 형태로 돼 있는 지하주차장 뒤쪽 계단 통로였다.
물살을 헤치고 사력을 다해 도착했지만 이곳 문도 열리지 않았다. 김씨는 “어렵게 철문까지 갔는데 6명이 아무리 힘을 합쳐 밀어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며 “다들 ‘살려달라’ 목이 터져라 소리쳤는데 밖에선 아무 답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대로 죽을 순 없었다. 다시 주차장 입구 차량 통로로 몸을 틀었다. 그러나 깜빡이던 지하주차장 전등이 모두 꺼졌다. 이내 암흑의 공포가 덮쳤다. 김씨 모자는 천장에 있던 전선을 붙잡고 앞으로 가려고 했지만 사방이 깜깜해지고 물이 머리 위까지 차오르면서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김씨는 “다섯 번 정도 물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해 앞으로 나갔지만, 어깨 수술을 예약했을 정도로 오른팔을 거의 못 쓰는 상태라 더는 움직일 수 없었다”며 “아들에게 ‘엄마는 이제 안 될 것 같다’고 했고, 누구보다 엄마 몸 상태를 잘 아는 아들은 눈물을 머금고 억지로 끌고 가려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그동안 잘못 알려진 것을 바로잡기도 했다. 그는 “내가 천장에 에어포켓이 생겨 배관을 끌어안고 엎드려 버틴 것으로 알려졌던데, 수영을 못하는데도 신기하게 떠올라 배영자세로 누워 있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천장까지 물이 차서 에어포켓이라 할 만한 공간은 사실상 없었다”며 “귀와 눈까지 물에 잠겼고 코와 입만 겨우 물 밖에 내놓고 있었다”고 절망적인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온통 깜깜하고 무언가 딛고 올라갈 물건도 없어서 숨쉴 공간조차 찾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뒤쪽 통로에는 구하러 오지 않았다”
주영군을 비롯해 앞쪽 통로로 향하던 5명도 어느 순간 방향을 잃고 사경을 헤맸다. 어둠 속에서 다들 물을 삼키며 바둥거렸고, 주변에서 “살려달라”는 소리가 잇따라 들렸다.
김씨는 “60대 노부부 중 할머니는 계속 우셨고, 할아버지는 ‘괜찮다'고 말씀하셨다”며 “다들 앞쪽 통로로 가보려고 했지만, 물이 천장까지 들어차고 주차장 불이 꺼졌을 때 죽을 거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간간이 들리던 사람들 목소리는 점차 희미해졌다. 김씨 모자는 기도하며 서로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김씨는 “내가 ‘엄마가 못해줘서, 많이 못해줘서 미안하다”고 했고, 아이는 ‘엄마 미안해, 사랑해’라는 말을 반복했다”며 “계속 ‘사랑해’라고 외치던 아들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는….”이라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김씨는 “’하나님, 왜 우리 주영이를 데려가신 거예요. 저를 데려가셔야죠’라고 원망하다가 ‘저도 빨리 데려가세요’라고 기도했다”며 “뒤쪽으로 빨리 구조가 이뤄졌다면 다들 살 수 있었을 텐데....”라며 진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실제로 김씨와 함께 움직이다가 숨진 4명은 모두 뒤쪽 통로 근처에서 발견됐다.
김씨는 “구조 후 남편한테 ‘왜 뒤쪽 통로에는 와보지 않았냐’고 따졌는데, 가족들과 아들 친구들 말이 ‘당시 위험하다고 통제해 갈 수 없었다’고 하더라”며 “철문 바로 옆에 창문도 있었는데 그걸 깨뜨리고 스티로폼이라도 던져줬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진 않았을 것”이라고 한탄했다.
코로 들어오는 물을 내뱉으며 고통 속에 기도만 하던 김씨는 어느 순간 수위가 내려가는 걸 느꼈다. 김씨는 “처음에 눈이 떠지고 다음에는 귀 아래, 그다음에는 웅크릴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며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전선에 다리를 감아 잔뜩 웅크린 채 작은 등을 붙잡고 버티는데 어디선가 불빛을 비춰 특수구조대원이란 걸 알았다”고 말했다.
김씨가 극적으로 구조돼 지하주차장 차량 통로를 빠져나온 시간은 이날 오후 9시 41분. 주영군 손을 잡고 지하주차장을 내려간 지 16시간 뒤였다. 김씨는 “구조될 때까지 3~4시간 정도만 지난 줄 알았다”며 “구조되자마자 '아들은 어떻게 됐느냐'고 물었는데 아무도 답하지 않더라”고 말했다. 주영군은 김씨가 밖으로 나온 지 3시간 뒤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김씨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곳과 몇 걸음 떨어지지 않는 곳이었다.
김씨는 사고 후 엘리베이터와 같은 닫힌 공간에선 잠시도 서 있지 못하는 공황장애에 시달리면서도 날마다 주영군과 함께 갇혔던 아파트 지하주차장을 찾는다. 아들이 입던 옷과 물건들을 방 안에 그대로 둔 채, 영정사진 앞에서 아들의 일기장과 엄마에게 썼던 편지들을 읽고 또 읽는 게 일상이 됐다. 그러면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아들과 이웃들을 위해 기도하며 힘겹게 삶을 이어가고 있다.
주영군이 하늘로 떠난 뒤, 김씨 가족 앞에는 아기 고양이 두 마리가 우연히 생겼다. 김씨는 “주영이가 줄무늬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서 사진을 찍어놨는데 누나들이 빨래방에 갔다가 사진과 똑같이 생긴 고양이가 길을 잃고 울고 있어 데리고 왔다”며 “신기하게도 고양이들이 주영이 방을 떠나지 않는다”고 전했다.
김씨는 “사고 순간을 되짚어보면, 주영이와 주민들을 구할 수 있는 기회가 분명히 있었다”며 “왜 그날 '차를 빼라'는 방송만 있고, 안내하는 사람은 없었는지, 왜 뒤쪽 통로에선 구조를 시도하지 않고 통제했는지 알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영이는 어린 나이에도 교회 해외 봉사를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천사 같은 아이였다”며 "아들과 다른 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으려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참사 원인이 제대로 밝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항= 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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