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콘서트 예약 왜 힘드나 했더니.. 매크로로 싹쓸이

이기우 기자 2022. 9. 26. 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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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 수만원씩 웃돈 붙여 온라인 무더기 되팔아
택시도 원하는 콜만 잡게 해주는 매크로앱 자주 사용

25일 골프장 이용권을 거래하는 한 홈페이지에는 10월 초 연휴 기간 수도권과 전국 각 지역 골프장 라운딩 이용권이 수백 건씩 매물로 올라와 있었다. 수도권만 1000여 건, 충청권이 1400여 건에 이를 정도였다. 연휴 기간인 2일 오전 기준 경기도 북부 지역 골프장의 경우 골프장 홈페이지에서 직접 예약하는 가격보다 수만원씩 웃돈이 붙은 상태였다. 골프장마다 예약이 몰리자 매크로라고 불리는 자동 접속 프로그램으로 무더기로 예약한 업자들이 이를 되팔고 있는 것이다.

골프 예약뿐 아니라 콘서트, 기차표처럼 예매 경쟁이 있는 모든 분야에서 매크로를 이용한 편법이 선착순을 무력화하고 있다. 각종 SNS에서 ‘매크로’를 검색하면 수많은 ‘대리 티케팅’ 메시지가 뜬다. 콘서트·팬미팅·뮤지컬 티켓을 대신 구입해주겠다는 매크로 업자들의 광고다. 이들은 매크로를 이용해 티켓을 싹쓸이한 후 웃돈을 붙여 팔거나 매크로 프로그램 자체를 판매한다.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가 최근 리셀 목적의 한정품 구매에 제동을 걸겠다고 나선 것도 매크로 업자들의 싹쓸이 때문이었다.

기사가 콜을 받아 움직이는 택시, 대리운전, 퀵서비스, 음식배달 업종에서도 매크로가 극성이다. 택시 호출 앱 카카오T 운영사 카카오모빌리티는 택시 기사들에게 매크로 사용 여부가 의심된다는 경고 메시지를 수시로 보내고 있다. 원하는 콜을 입맛대로 골라잡을 수 있게 하는 매크로 앱이 기사들 사이에 성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크로를 통한 예매 싹쓸이가 만연하면서 골프의 경우 일반인이 골프장 홈페이지에서 정상적으로 라운딩을 예약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국내 주요 골프장들은 보통 라운딩 3주 전 혹은 한 달 전 아침부터 예약을 시작하는데, 주말이나 연휴처럼 예약이 몰리는 날짜는 1분도 안 돼서 예약이 마감된다. 한 직장인은 “주말에 라운딩을 나갈 때 3주 전 예약은 거의 불가능하다”며 “웃돈을 주고 예약하거나 가격이 비싸 자리가 남는 골프장을 예약하는 게 일상화됐다”고 했다.

각종 예매, 온라인 판매 시장이 매크로 업자들에 의해 왜곡되면서 일반 이용자들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를 차단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이들 업계의 고민이다. 매크로에 대한 차단 방법으로는 예약하는 과정에 보안 문자를 입력하는 절차를 추가하거나 선착순 예약을 무작위 추첨으로 바꾸는 방식이 거론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매크로는 이런 방법도 무력화하는 기능을 보유하고 있다.

골프장을 운영하는 한 국내 기업 관계자는 “매크로를 원천 차단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코로나 종식으로 국내 골프 수요가 해외로 분산되는 것 말고는 매크로 문제가 해결될 길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국내 보안 업체들도 매크로와 관련해서는 근절 대책이라고 할 만한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불법 매크로에 대한 대응이 창과 방패의 싸움이라지만 현실은 방패가 창을 막을 수 없는 불공평한 싸움”이라고 했다. 업체 측에서 특정 매크로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도 금방 이를 우회할 수 있는 매크로가 새로 개발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25일 온라인 블로그에서 대리운전 기사용 매크로를 판매한다고 밝힌 업자에게 연락했더니 “현재 카카오 대리기사 앱에서 매크로가 잘 작동하지 않고 있어 앱을 수정하고 있다”며 “수정이 완료되면 연락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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