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성 실패… 이재명의 기본소득, 현금박치기 진보로 희화화될 것”
‘좋은 불평등’ 출간해 文정부 비판한
최병천 전 민주당 싱크탱크 부원장
최근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좋은 불평등’이라는 제목의 책이 화제다. 민주당 진영 안에서 “문재인 정부의 ‘소주성(소득 주도 성장)’과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은 실패했다”고 냉정하게 평가한 최초의 책이기 때문이다. 저자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은 민주당 등 진보 정당에서 오래 활동해왔다. 그는 “소주성과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 실패한 이유는 ‘진짜 하층’을 위한 정책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진짜 하층은 노조가 아니라 노인인데, 문재인 정부 정책팀이 제대로 진단하지 못하고 진보 세력의 정책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생긴 실수라고 봤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1만원 인상’ ‘SOC 예산 감축’ 등은 고용 쇼크를 가져왔고, 이에 따라 불평등이 확대됐다”고도 했다. 지난 23일 서울 한 카페에서 만난 최 소장은 ‘기초연금 40만원 인상론’을 주장하고 있는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에 대해서도 “이 정책이 ‘현금 박치기’ ‘증세 폭탄’이란 걸 알면 2030세대도 금세 민주당을 떠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소장은 “이제 민주당도 이런 포퓰리즘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경제 정책으로는 억강부약(抑强扶弱·강한 자를 누르고 약한 자를 도와줌)이 아니라 친기업 진보주의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저임금 1만원, 불평등 더 커졌다
-책을 낸 이유는 뭔가.
“문재인 정부의 소주성은 하층 소득을 끌어올려 불평등을 줄이고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겠다는 기획하에 만들어진 정책이다. 그런데 2018년 통계를 보면 고용은 급감하고 불평등은 오히려 커졌다. 문 정부도 이를 알았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소주성 언급을 피했다고 본다. 그러나 왜, 무엇이 틀렸는가에 대한 분석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초기부터 최저임금 1만원 인상에 대해 ‘진보 사회운동 단체, 노조가 주장하는 걸 흉내 내면 안 된다’고 주장했지만 간단히 무시됐다. 노조는 사실상 상층이다. 그래서 이때부터 통계 등에 기반한 연구를 했고 탄탄한 논리로 책을 냈다.”
-소주성은 왜 실패했나.
“진보 진영은 한국 경제 불평등이 재벌, 신자유주의 정책, 비정규직 등의 내부 원인으로 생겨났다고 믿고 있다. 이를 3대 적폐라고 본다. 하지만 한국의 불평등은 1992년 한중 수교 체결 등에 따른 개혁·개방 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국에 대한 수출 증가로 대기업 수출이 대박이 나고 그에 따라 불평등이 커졌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 때 불평등이 커졌다. 책에서 이는 ‘좋은 불평등’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진보 진영의 내부 원인에 따른 불평등 진단은 틀린 것이다. 이런 잘못된 분석 속에서 소주성, 최저임금 인상 등이 채택됐기 때문에 성공할 리가 없다. 특히 소주성은 노동 담론에 과몰입한 결과, 노인 등 비노동자를 외면했다. 또 최저임금 1만원 인상 등을 통해 오히려 일자리를 빼앗는 결과를 낳았다.”
2018년 일자리는 4분의 1로 급감
-최저임금 1만원도 진보 세력의 요구였다.
“그렇다. 유럽의 노동운동 세력은 국가 정책에 관여하는 경험이 많다. 그러나 우리는 아니다. 그러다 보니 애초에 구호성 정책을 내세우는 거다. 실행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정책인 것처럼 보이지만 구호인 것이다. 다른 나라들도 왜 최저임금을 올리고 싶지 않겠나. 하지만 갑작스러운 변화는 부작용을 가져온다는 걸 아는 것이다. 민주당 정책 입안자들, 국회의원들 등은 정책의 적합성을 고려할 능력도 딸리고 그냥 넙죽넙죽 받는다. 그걸 진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책임 있는 국정 운영 자세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 정부를 표방했는데.
“대충 경기가 어렵더라도 우리나라는 연간 30~40만명의 일자리가 늘어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2018년 일자리는 9.7만명이었다. 4분의 1수준으로 확 줄어든 것이다. 최저임금은 과도하게 인상하면서 반대로 SOC 예산은 과도하게 감축하면서 고용 쇼크가 온 것이다. 최저임금은 진보의 상징, SOC예산은 적폐로 단정해 이런 정책이 나온 것이다. 문제를 알아챈 정부가 2019년부터는 SOC 예산을 다시 늘렸다.”
노무현은 한미 FTA 추진했다
-문재인 정부는 왜 이 같은 진보 세력의 정책만을 수용했을까.
“노무현 정부는 한미 FTA를 추진했다. 통치 세력이 되니까 나라를 위한 게 무엇인지 고민을 했던 거다. 하지만 이게 지지층의 생각과 달랐고 정치적으로 고립되는 결과를 낳았다. 정책적으로 아주 잘하고도 진보와 다른쪽으로 가서 정무적으로 어려움에 빠진 것이다. 이를 지켜본 문재인 정부는 완전히 반대로 갔다. 진보 정책을 다 수용해 진보와 잘 지내보려고 했다. 그런데 결국 정책적 어려움에 빠지게 됐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둘 다 정답은 아니다. 민주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진보 생태계가 오작동하고 있다.”
-하지만 문 전 대통령은 소주성 실패를 인정하지 않았다.
“퇴임 전 손석희씨와 한 인터뷰에서 소주성에 대해 ‘성과적인 측면이 많은데 부작용만 지나치게 부각됐다’고 입장을 보인 걸 보면 실패했다고 보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은 대선이 끝나고 당의 강령에서 소주성을 삭제했다. 실패를 인정한 것이다.”
-지금의 민주당은 어떤가.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 40만원(현 30만원) 지급을 추진하고 있다.
“이 역시도 단기적으로 유리한 이슈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마이너스 이슈가 될 거다.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노인 부양비가 늘어난다는 말이다. 현 세대가 감당해야 하는 돈이다. 증세 논쟁으로 가면 진다. ‘어떻게 20조, 30조 만들 거냐’고 하면, 해명에 허덕이다가 망한다. 국민의힘도 답답하다. 이럴 때 비용 추계를 쫙 해서 ‘증세 폭탄’ 프레임으로 가면, 젊은 세대가 ‘이재명의 민주당’을 지지하겠나.”
-노인 정책이 중요하다면서 기초연금 이슈는 왜 문제인가.
“퍼주기식 포퓰리즘으로는 안 된다. 2021년에 민주당에서 발의했다가 통과가 안 된 ‘불효자 방지법’ 같은 정책을 내와야 한다. 노인들이 자녀에게 살아있을 때 증여를 많이 하는데, 그러고 나면 자녀들의 학대가 시작된다. 그걸 막는 법안이다. 언제든 상속권을 박탈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당시 이 법안에 대한 조사를 했는데 이제 미래를 준비하는 405060에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이었다.”
야당도 이재명도 사회주의 찌꺼기 버려야
-이재명 대표는 대선 때 잠시 보류했던 기본소득을 최근 다시 들고 나올 기세다.
“민주당이 조사한 대선 기간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2030의 65%가 기본소득을 반대했다. 진보 내에서는 어필할 수 있으나 전체 유권자에게는, 최소한 중도층에는 먹히지 않는다. 현금 박치기 진보라는 이름으로 희화화될 수 있다. 기본소득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처럼 수시로 바뀐다. 어떤 때는 모두에게 준다고 했다가, 또 청년에게만 준다고 한다. 이유가 뭐겠나. 엄청난 재원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거의 미션 임파서블에 가깝다.”
-책에서 정의당도 세게 비판했더라. 20대 국회 때 심상정 의원이 낸 일명 ‘살찐 고양이법(최고 임금 법안)’은 나쁜 정책이라고 했다.
“이 법안은 실제 되면 엄청난 부작용을 낳는다. 본인도 통과되지 못할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별로 고민도 안 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도 사실은 정의당이 밀어붙이고 민주당이 받은 정책이다. 누구는 ‘정의당이 민주당 2중대’라고 하는데, 틀리는 얘기다. ‘민주당이 정의당의 1중대’라고 해야 맞는다. 문재인 정부는 정의당이 주장해온 노동, 복지 정책을 싹 다 가져와서 정책화했다. 그래서 민주당이 중도를 국민의힘에 내줬고, 이번 대선에서 패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민주당도, 정의당도 다 어려워졌다.”
-민주당이 갈 길은.
“마르크스주의는 로빈후드적 세계관과 맞닿아있다. 자본가, 부자는 나쁘고, 노동자, 서민은 좋은 집단이라고 한다. 사회주의는 망했다. 그런데 아직도 민주당의 운동권은 여기에 멈춰있다. 현대화 작업을 해야 한다. 왼쪽 병을 탈피해야 한다. 이 사회의 주류가 되려는 자세를 갖고, 여당다운 야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미국에서는 민주당을 좋아하고 지지하는 기업이 많다. 한국은 어떤가. 대기업에 사랑받는 민주당이 되면 왜 안 되나. 노동자를 배제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균형을 찾자는 것이다. 민주당이 사회주의 노선을 폐기한 것이 맞는다면 그 이념적 찌꺼기들도 다 같이 버려야 한다.”
☞최병천
1973년생. 강원 정선에서 태어났다. 노동운동을 하다 “사회주의는 망했고, 이제 유럽식 복지국가가 진보의 대안”이라고 생각해 민주노동당에 입당한 뒤, 2002년 대선 때 권영길 캠프에서 일했다. 2010년 무상급식 논란 당시 “민주당도 복지국가 노선으로 바뀌고 있다”는 판단으로 2012년 민주당에 입당했다. 민병두 의원 보좌관을 거쳐 2018년 대통령 직속 소득주도성장 특위에서 일했다. 2020년 박원순 서울시장의 마지막 정책보좌관을 지냈고, 2021년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복지국가를 부탁해’ ‘2020 한국의 논점’ ‘2022 한국의 논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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