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시장에 스며드는 해외작가의 '못 보던' 화풍[아트&머니]
프리즈·키아프 여파 출품수·총액 줄어
170여점 150억여원어치 규모에 그쳐
친숙한 동물소재 낯선 해외작품 대거
호주 커윅 작품, 두 옥션에 모두 나와
헝가리 보조, 미국 번하드도 韓 조준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한국미술계로 볼 때 결코 만만치 않은 ‘사건’이었다. 미술시장과 작가·작품을 통째 시험대에 올렸던 그 시간 말이다. 이달 초순 대한민국을 미술 하나로 북새통에 몰아넣은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 얘기다. ‘프리즈 서울’은 지난 2일부터 5일까지 나흘간, ‘키아프 서울’은 2일부터 6일까지 닷새간 ‘소문 무성한 잔치’를 열었고, 각자의 계산법대로 성과를 쓰고 과제를 안은 채 마무리했더랬다.
어차피 작품을 팔고 사는 행사였던 만큼, 프리즈와 키아프 내부에선 수치로 따져야 할 성패가 웬만큼 나와 있을 터. 하지만 대규모 아트페어 이후에도 ‘일상의 미술품 거래’를 이어가야 하는 화랑·경매 등에선 다른 계산기가 작동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이번 행사로 인해 한국미술시장이 얻게 된 수확으로는 국내 애호가의 시선이 넓어진 점을 꼽을 수 있다. 한국미술 작가와 작품이 줄창 파내려간 한우물에서 벗어나 해외미술 작가와 작품으로 눈을 돌리게 한 결정적 계기였다고 할까. 마땅히 작품을 선별하는 폭과 규모도 커질 거란 기대가 생기는 거다.
다만 걱정이 생겼다면, 같은 기준에서 한국미술 작가와 작품으로 가던 뭉칫돈이 해외미술 작가와 작품으로 분산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특히 9월에는 말이다. 한바탕 미술전쟁을 치른 컬렉터들에게 과연 실탄의 여력이 남아있을까 하는 점도 우려스러울 수밖에 없다.
당장 그 변화와 부담을 모두 끌어안은 ‘미술품 경매시장’이 먼저 움직인다. 예정했던 ‘9월 메이저 경매’가 마지막 주 27일(서울옥션)과 28일(케이옥션) 나란히 열린다. 서울옥션은 늘 개최하던 장소를 옮겨 부산 해운대구 해운대해변로 그랜드조선 부산에서 ‘부산세일’로 진행한다. 케이옥션은 서울 강남구 케이옥션 본사에서 ‘9월 경매’로 연다.
역시 프리즈·키아프의 여파가 적잖아 보인다. 일단 출품 규모를 대폭 줄였다. 두 경매사에서 출품하는 작품은 170여점 150억여원어치. 서울옥션은 78점 90억원어치를, 케이옥션은 100점 60억원어치를 내놨다. 이미 출품작 수와 총액이 줄어든 게 보였던 지난달 200여점 180억여원어치보다도 적다. 지난해 9월 경매에서는 두 경매사가 330여점 211억원어치(서울옥션이 164점 86억원, 케이옥션이 168점 125억원)를 출품했더랬다.
늘 봐왔던 한국 근현대 인기작가군 외에 해외작가의 출품작을 도드라지게 세운 것도 프리즈·키아프의 영향이라면 영향이다. 저만치 경매의 끝 순서나 차지하던 작품들이 앞으로 앞으로 진출하는 게 보이는 거다. 국내 작가의 작품들에선 잘 보이지 않던, 독특한 소재·화풍을 과감하게 드러난 해외작품들이 국내 미술시장에 별 거리낌 없이 스며들고 있다고 할까.
서울옥션은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는 여성·흑인·젊은 작가에 이어 제3세계 작가로까지 영역을 넓혔다”며 “사볼츠 보조, 수안자야 켄컷, 로버트 나바 등 세계미술시장에서 급부상 중인 ‘라이징 작가’를 국내 경매사 처음으로 소개한다”고 전했다. 케이옥션도 다르지 않다. “글로벌 미술시장 인기작가들의 작품을 골고루 출품했다”면서 조르디 커윅, 캐서린 번하드, 마유카 야마모토, 조지 몰튼 클락, 에드가 플랜스 등이 든 리스트를 꺼내놨다.
조르디 커윅 5점, 에드가 플랜스 6점…국내 인기작가급
아직은 ‘낯선’ 해외작가들 중 양쪽 옥션이 9월 경매에서 제대로 띄운 작가로는 당장 조르디 커윅(40)과 에드가 플랜스(45) 등이 있다. 커윅의 작품은 5점, 플랜스의 작품은 6점이 나서, 국내 웬만한 인기작가 못지않은 수준인 거다.
호주 출신의 커윅은 ‘혜성처럼 나타난 작가’로 불린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덕에 되레 작가만의 독보적인 화풍을 구현할 수 있었고 그 작업이 시장에 제대로 먹혔다는 평가가 따른다. 호랑이·코브라 등 맹수, 신화·원주민 등 원시를 키워드 삼아, 자연친화적이고 탈문명·탈문화적인 소재에 거칠지만 유머러스한 배치를 입혀내는 게 특징이다.
양 경매에 출품한 커윅의 작품 중에선 ‘호랑이’를 공통분모로 한 두 점이 눈에 띈다. 호랑이 가죽으로 러그를 만들어 바닥에 펼쳐둔 ‘무제’(2021·59.2×41.5㎝·서울옥션)와 역시 호랑이 패턴을 바닥에 깔고 화분을 올린 실내 풍경을 그린 ‘무제’(연도미상·160×120.5㎝·케이옥션)가 그것. 서울옥션에선 추정가 2500만∼4000만원에, 케이옥션에선 9500만∼2억 5000만원에 내놨다. 이외에도 ‘모반’(The Rebels·2018·서울옥션)이 추정가 7000만∼1억 2000만원에, ‘뱀 뱀’(Serpent Serpent·2022·케이옥션)이 6500만∼2억원에 각각 나선다.
스페인 출신의 플랜스는, 큰 귀를 가진 쥐 모양의 모자를 쓴 어린아이를 주인공으로 삼은, 마치 만화의 한 장면 같은 작업이 특징. 그 가운데 이번 경매에선 ‘푸른 하늘을 날아가는 아티스트 소녀의 상상’(Artist Girl Imagination Flies Across the Blue Sky·2019·100×100㎝·서울옥션)이 추정가 2억 5000만∼3억 5000만원에, ‘무제’(연도미상·70×50㎝·케이옥션)가 8000만∼1억 3000만원을 달고 응찰을 기다린다.
동물 소재로 가벼운 작품 다수…쿠사마 이번엔 ‘초록호박’
양쪽 옥션이 각각 ‘미는’ 해외작가의 작품도 묘하게 오버랩된다. 동물 캐릭터로 가볍고 발랄한 세계관을 꾸렸다는 작품세계에서 말이다. 헝가리 작가 사볼츠 보조(30)는 밝은 화면에 과감한 붓질로 장난기 가득한 동물들의 일상을 상상하고, 미국 작가 캐서린 번하드(47)는 아크릴·스프레이페인트 등을 동원한 분방한 재료로 동물·사물 등을 조합한 과감한 화면을 구성한다. 이번 경매에는 보조의 ‘아침 교통체증’(Morning Traffic·2021·189×160㎝·서울옥션)이 추정가 1억 7000만∼2억 5000만원에, 번하드의 ‘펩시 악어’(Pepsi Alligator·2019·121.9×121.9㎝.·케이옥션)가 1억 1000만∼1억 4000만원을 달고 새주인을 찾는다.
‘신진’의 활약에도 국내 미술시장을 장악한 해외작가로 단연 톱이라 할 쿠사마 야요이(93)가 빠지면 섭섭하다. 이번에는 ‘초록 호박’이다. 서울옥션에선 10호 크기의 ‘호박’(Pumpkin·2004·53×45.5㎝)이 추정가 19억∼30억원에 출품했다. 케이옥션에선 색과 모양이 크게 다르지 않은 그보다 좀 작은 ‘호박’(Pumpkin·1993·22.9×15.9㎝)이 나선다. 추정가는 7억 8000만∼12억원.
쿠사마의 ‘호박’은 색과 모양을 막론하고 늘 컬렉터를 긴장시켰지만, 이번엔 그 강도가 좀 세다. 지난달 서울옥션에서 빨간 ‘호박’(Pumpkin·2004··53×45.5㎝)이 낮은 추정가 19억원을 훌쩍 넘겨 22억원에 낙찰됐던 터. 이번 서울옥션에서 내건 ‘호박’과 색만 다를 뿐 제작연도, 크기까지 똑같다.
오현주 (euanoh@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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