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량 한계 초과 땐 백약이 무효..숙취해소제 찾기보다 음주 속도를 줄여라[알아두면 쓸모 있는 한의과학]

이준혁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정책팀장 2022. 9. 25.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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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혁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정책팀장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거리 두기가 완화되면서 최근 술자리 모임이 늘어나고 있다.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과 마주하며, 가벼운 음주를 통해 그동안 못다 한 담소를 나누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다. 하지만 본인의 주량을 조금만 넘게 되면 여지없이 숙취란 불청객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숙취 없이 술을 즐기고자 하는 것은 사람들 공통의 바람이다. 그래서 숙취 해소제 시장에는 많은 제품이 쏟아져 나오고, 사람들은 각자의 해장 음식에 대한 비법을 지니고 있다.

숙취가 일어나는 원리를 간단히 말하자면 이렇다. 간이 시간당 처리할 수 있는 알코올의 용량을 초과하는 바람에 몸의 해독 기능이 손상되고, 아직 해독되지 못한 알코올과 알코올의 중간 산물인 아세트알데히드가 몸의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숙취 해소가 최근의 개념이라면 해장은 좀 더 오래된 개념이다. 해장이라는 용어의 유래는 조금 복잡하다. 요즘 사람들에게 해장이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면, 아마 대부분은 속을 풀어준다는 해장(解腸)이라고 답할 듯하다. 하지만 해장은 엄밀하게 보면 술을 깬다는 해정(解醒)에서 유래됐다고 하는 의견이 주류를 이룬다. 예전에는 술로 인해 몸에 쓸데없는 열(熱)과 습(濕)이 쌓여서 독이 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몸에 생기는 손상을 주상(酒傷)이라 하고 이를 치료하는 것을 해정(解醒)이라고 했다. 숙취에 쓰는 유명한 처방인 갈화해정탕(葛花解醒湯)의 경우 그 이름 그대로 칡꽃이 들어간 술 깨는 약이라는 뜻이다.

숙취이든 주상(酒傷)이든 그 원리는 술로 인한 독이다. 그것을 아세트알데히드라고 보든, 인체 장부의 습열이라고 보든 결국은 술로 인해 쌓이게 되는 독소를 몸이 감당하지 못해서 생기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하수종말처리장의 용량 한계치와 비슷하다. 시간당 처리할 수 있는 하수량을 초과하는 바람에 처리장 기능이 마비되고, 하수가 넘쳐서 곳곳을 오염시키는 것이다. 그 결과로 두통, 불쾌감, 구토, 우울감 등 사람마다 다양한 형태의 주관적인 증상이 나타난다.

최근에 출시되고 있는 숙취 해소제와 전통적인 한약 처방들은 이러한 독으로 생기는 증상들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많은 증상이 주관적이기 때문에 그 효능을 같은 잣대로 과학적인 관점에서 검증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고, 효능에 대한 시비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숙취로 인한 증상이 개선된다고 해서 술로 인해 생긴 몸의 손상이 치료되는 것도 아니다. 결국 손상은 여전히 회복되지 않고 남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숙취라는 병도 치료보다는 예방이 더 중요하다. 숙취 예방은 결국 술을 해독할 수 있는 능력 내에서 마시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양도 중요하지만, 속도가 중요하다. 굳이 표현하자면 주량(酒量)보다는 주속(酒速)이 중요하다. 사람은 저마다 체격도 다르고, 체질도 달라서, 해독 능력도 다르다. 서로 마시는 속도도 달라야 하는 게 정상이다. 코로나19 시대를 지나면서 음주 문화도 많이 바뀌고 있다. 이제 예전처럼 같이 속도를 맞추어 과음하는 문화는 사라지고 있다. 즐겁게 술 한잔하는 자리에서, 숙취 해소제를 미리 챙겨주는 마음으로, 술 마시는 속도를 배려해주자.

이준혁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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