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한국의 초산 연령
옛 유교사회에서는 여성이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을 ‘칠거지악’(七去之惡) 중 하나로 여겼다. 남편의 일방적 이혼이 가능할 만큼 중대한 과실로 간주했다는 뜻이다. 고된 양육을 거의 전적으로 떠맡는 여성이 출산을 계속하도록 유도하는 이데올로기였을 것이다. 다산(多産)은 한 가정과 사회가 노동력과 국력을 확대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출생률은 1960년 6.0명이었다.
출생률 급락 쇼크는 1997년 외환위기와 함께 왔다. 고도산업화와 도시화 궤도에 오른 1980년대 후반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6~1.7명이던 출생률이 1999년 1.42명으로 뚝 떨어졌다. 일각에서는 종족본능과 강한 가족주의를 근거로, 더는 출생률이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낙관했다. 출산장려는 저소득층 자녀만 무책임하게 늘린다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가족은 해체됐고 기혼 여성 가운데 반드시 자녀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1991년 90.3%에서 2000년 58.1%로 급감했다. 그 원인으로 ‘고용시장 이중구조, 비정규직의 저임금, 양성평등과 먼 자녀양육, 육아의 경제 부담 증가, 가정·직장 양립이 불가능한 사회 환경’이 꼽혔다. 20년 지난 요즘 보고서와 토씨 하나 다르지 않다.
OECD가 ‘2022년 한국 경제 보고서’에서 한국 여성이 첫째 자녀를 낳는 평균연령이 2020년 기준 32.30세로 1993년 26.23세에서 27년 만에 6.07세나 올랐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미국은 2.7세, 영국은 3.3세, 노르웨이는 3.9세 높아졌지만 모두 20대 후반을 넘어서지는 않는다. 일본도 3.5세(27.2세→30.7세) 오르는 데 그쳤다. 한국 합계출산율은 0.81명으로 1명대인 이들 나라를 밑돈다. OECD는 “한국 여성들이 일·가정 사이 냉혹한 선택에 직면하면서 출산을 미룬다”고 분석했다.
2005년 출범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실패했고, 여성가족부는 본분을 망각한 채 표류 중이다. 합계출산율 1.8명으로 인구 1000만을 돌파한 스웨덴의 오늘은 1930년대부터 가족 형태·직업과 상관없이 누구나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도록 성평등한 육아문화를 추진한 결실이다. 2021년 한국의 초산 연령은 32.6세다. 전년보다 0.3세 더 높아졌다. 정부가 위기의식을 가질 때다.
최민영 논설위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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