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도 필요한 'UX 리서처', 유권자의 얼굴을 떠올려라 [2030의 정치학]

입력 2022. 9. 25. 19: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88년생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와 93년생 곽민해 뉴웨이즈 매니저가 2030의 시선으로 한국정치, 한국사회를 이야기합니다.
진보·보수가 아닌 6개로 쪼개진 유권자 지형
유권자 변화를 쫓지 못하는 기존 거대 정당
바뀐 유권자 데이터 분석으로 다시 태어나야

수년 전부터 스타트업 채용 공고에서 눈에 띄는 직무가 하나 있다. UX 리서처다. 말 그대로 고객 경험을 연구하는 역할이다. 단순한 만족도 조사와는 다르다. 지금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에 따라서 가장 맞는 방법론을 적용하고 이렇게 수집한 고객의 데이터를 해석해서 궁극적으로 서비스를 개선해야 한다.

그럼 선거 때마다 유권자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정당에서는 유권자에 대해 얼마나 많이 고민하고 있을까.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 과정을 떠올려 보면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울 것 같다. 젊은 세대를 캐스팅 보트로 지목하고 포섭하려는 시도는 했지만 유권자의 실망감은 깊어졌고 역대급으로 저조한 투표율은 낮아진 기대를 방증했다.

정당이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최근 하나 밝혀졌다. 더불어민주당이 유권자 3,000명을 대상으로 한 웹 조사 결과를 정리해 발간한 '미래비전 보고서'를 통해서다. 핵심은 진보와 보수로 양분되던 과거의 유권자 지형이 붕괴했다는 데 있다. 지금의 유권자는 정책 선호와 지지 정당이 다양한 6개 그룹으로 나뉘어 있다. 특정 이슈에 대해서는 입장이 같지만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정반대 태도를 보이는 등 하나로 묶기가 어렵다는 게 새로운 유권자 지형의 특징이다.

보고서는 막연하게 '중도층을 공략해서 지지 기반을 넓히자'는 방식의 진단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대신 환경에 대한 고려를 담은 새로운 성장 모델과 기후위기 해결을 핵심 가치로 제시하고 소수자 차별에 대한 의지를 입법으로 표현하되 당장의 삶이 걱정인 사람들을 위한 복지 정책을 뒷받침해서 다양한 그룹을 동시에 설득해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진보나 보수가 명확하지 않다는 결론 자체는 새롭지 않다. 검찰 개혁 등 기성세대가 사회를 보는 틀이 젊은 세대에게 설득력이 없다는 지적은 꾸준히 있었다. 이 진단 자체가 새롭다면 그만큼 정치가 현실과 괴리되어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이 데이터가 진짜 의미를 가지려면 정당이 어디서부터 달라져야 하는지에 대한 진단과 실행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

문제는 정당이 제대로 변화한 모습을 보여 준 적이 없다는 데 있다. '시대에 맞게 변화하는 정당'으로 민주당을 선택한 비율과 국민의힘을 선택한 유권자 비율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그런 정당이 없다'는 답이 47.1%를 기록했다. '정치 신인에게 열려 있는 정당'에 대한 평가에서도 거대 양당이 16.7%의 선택을 받은 데 비해 '그런 정당이 없다'는 유권자 비율은 40%를 넘었다. 유권자 그룹을 고려해 세심한 정책을 설계하면서 안으로는 세대 교체를 통해 일하는 정당을 만들어 가야 하는 때다.

고객의 데이터를 이해할수록 좋은 점은 내가 어떤 사람을 만족시켜야 하는지 점점 더 구체적인 얼굴을 떠올릴 수 있고 더 생생한 설득 언어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전에 만났던 30년 차 정치인이 '과거에 내가 주로 썼던 말이 요즘 세대에게는 힘이 없는 것 같다'고 푸념한 적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청년, 민생, 혁신, 개혁 등 정치권에서는 너무 자주 쓰이지만 실체가 없는 말이 너무 많다. 세대 교체가 되지 않아 동시대 젊은이의 진단이 끼어들기 힘든 지금 정치 현실에서는 유권자와 정치계의 괴리가 더 커질 가능성도 높다.

데이터를 얻는 것보다 해석과 실행이 중요하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가장 많이 설득해야 하는지, 어떤 정책과 메시지가 단계적으로 필요한지, 무엇보다 국민의 대리인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 자질은 무엇이며 동시에 우리를 다르게 만드는 차별점은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유권자는 누가 써도 되는, 그럴싸한 동어반복에는 이미 지쳐 있기 때문이다.

곽민해 뉴웨이즈 커뮤니케이션 매니저

Copyright©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