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국회에 부담만 안겨준 대통령의 해외순방
윤석열 대통령의 영국·미국·캐나다 순방에서 불거진 비속어 논란이 정기국회를 진행 중인 여야의 대치를 더욱 가파르게 하고 있다. 여당은 국면 전환을 위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형수 욕설’로 맞불을 놓고, 야당은 김건희 여사에 대한 국정조사와 특별검사(특검)법 추진을 요구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해외 순방이 정기국회에 부담만 안겨준 꼴이다. 강 대 강 정국 때문에 민생 의제가 파묻힐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의 ‘이 XX’ 발언이 민주당을 향한 것이라는 해명에 논란이 확산되자 주말 내내 역공에 나섰다. 조수진 의원은 지난 24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 대표의 ‘형수 욕설’ 논란 관련 기사를 첨부한 뒤 “이것이 진짜 욕설”이라고 썼다. 김기현 의원은 같은 날 “조작된 광우병 사태를 다시 획책하려는 무리들이 스멀스멀 나타나 꿈틀거리고 있다”며 해당 발언을 보도한 MBC가 가짜뉴스로 조작·선동했다고 주장했다. 권성동 전 원내대표는 25일 “MBC 자막은 대통령 발언을 지극히 악의적으로 왜곡하기에 충분했다”고 거들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순방을 실패로 규정하고 외교라인 경질로 비속어 파문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성준 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에서 “이번 순방의 핵심 과제였던 한·미 통화스와프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문제는 다뤄보지도 못했다”며 “윤 대통령의 순방은 총체적 무능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줬다. 외교 참사를 깨끗하게 인정하고 사과하지는 못할 망정 뻔뻔하게 거짓말까지 했다”고 비판했다. 오영환 원내대변인은 “영국 조문 취소 외교 결례와 욕설만 남은 국제망신, 캐나다 (방문) 실적 부풀리기 거짓 홍보까지 윤석열 정부의 외교 참사는 삼진아웃”이라며 “민주당은 박진 외교부 장관과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김태효 안보실 1차장, 김은혜 홍보수석의 경질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이 가짜뉴스 선동이라는 국민의힘 주장에 대해선 “좌표찍기식 언론 통제”라고 비판했다. 임오경 대변인은 논평에서 “‘국익을 해치기 때문에 언론 스스로 보도를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말은 정론 보도를 한 언론에 국익의 굴레를 씌우고 진실 보도를 막는 좌표찍기식 언론 통제”라며 “대통령의 욕설을 감추기 위해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 표현의 자유까지 막으려는 것인가”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 순방으로 격화된 여야 대치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다음달 4일부터 시작되는 국정감사를 앞두고 여야는 국정감사 증인으로 각각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채택하겠다는 등 상임위원회 곳곳에서 충돌했다. 대통령실 해명대로라면 협치의 대상인 야당을 향해 비속어를 쓰고도 사과하지 않는 윤 대통령도 불 붙은 대치 정국에 기름을 붓고 있다.
주요 입법 추진 및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도 여야 충돌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7대 입법과제 중 하나인 노란봉투법을 국민의힘은 총력 저지할 방침이다. 국민의힘과 정부는 25일 연 고위당정협의회에서 노란봉투법 입법 반대를 분명히 했다. 정부·여당은 파업한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가압류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이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본다. 민주당은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주식 양도소득세 면제 기준 상향, 다주택자 종합부동산세 중과 폐지 등 정부·여당의 초부자 감세 정책 저지를 당론으로 채택했다.
정치권 내부에서 여야 대치 정국이 민생 위기를 방치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이날 SNS에 “경제, 민생, 물가, 외교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집권 당·정·대답게 야당과 싸우지만 말고 이제라도 협치의 국회를 만들어달라”며 “대통령께서 이재명 대표의 영수회담을 속히 수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 전 원장은 “이 대표도 단독이든 복수든 가리지 말고 대통령 요구를 받아들여라. 영수회담이든 대표회동이든 만나서 정치로 풀어야 나라가, 국민이 산다”고 했다.
탁지영 기자 g0g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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