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실명제 입안 이형구 前노동부 장관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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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실명제를 입안한 이형구 전 노동부 장관이 24일 오후 6시40분 여의도성모병원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이 재무부에서 추진한 일이 바로 금융실명제다.
1989년 대선 선거공약에 포함돼 재무부에 실시 준비단까지 설치됐지만 유보됐고, 김영삼 대통령 때 전면 실시됐다.
저서에 '한국경제발전론', '한국경제론:성숙기의 국민경제운영의 과제와 방향', '21세기 경제정책의 대전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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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실명제를 입안한 이형구 전 노동부 장관이 24일 오후 6시40분 여의도성모병원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2세.
충남 청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경제기획원에서 잔뼈가 굵었다. 1978년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관, 1979년 정책조정국장, 1980년 경제기획국장을 지내면서 5차 5개년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할 때 핵심 역할을 했다. 1982년 김재익(1938∼1983) 청와대 경제수석이 주도한 이른바 '재무부 점령 사건' 때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장에서 재무부 이재국장으로 옮겼다. '김재익 스쿨'은 물가안정을 중시하는 안정론과 이를 바탕으로 한 경제 개방을 의미했고, 이 이론의 실무입안자 중 한 명이 고인이었다.고인이 재무부에서 추진한 일이 바로 금융실명제다. 당시 '장영자 사건'으로 인한 금융시장의 혼돈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공식 논의되기 시작했다. 1989년 대선 선거공약에 포함돼 재무부에 실시 준비단까지 설치됐지만 유보됐고, 김영삼 대통령 때 전면 실시됐다. 고인은 건설부-재무부-경제기획원의 3개 차관으로 고속승진을 거듭했고, 1990년 산업은행 총재가 됐다.
1994년 말 노동부 장관으로 입각했고,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아주대·세종대 등에서 강의를 하거나 저서를 집필했다. 저서에 '한국경제발전론', '한국경제론:성숙기의 국민경제운영의 과제와 방향', '21세기 경제정책의 대전환' 등이 있다.
유족은 부인 김순애씨와 사이에 1남1녀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발인 27일 오전 7시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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