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가 신랑에 보낸 신호.. 너무 독특해서 세계유산 등재 [커피로 맛보는 역사, 역사로 배우는 커피]
[이길상 기자]
▲ 예멘 다마르주 아니스 지역에서 커피를 재배하는 모습. |
ⓒ 연합뉴스 |
예멘에서 커피는 수백 년 전과 마찬가지로 대규모 농장보다는 소규모 농가 단위로 경작되고 있다. 비료나 농약을 거의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유기농 커피로 분류할 수 있다. 봄과 가을 두 차례 수확한 커피를 전통적이고 자연친화적인 건식법을 이용해 가공한다. 2020년 국제커피협회(ICO) 통계에 의하면 예멘의 총생산량은 연 6000톤 정도로 추정된다. 세계 커피 생산량의 0.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대부분 자연 경작되고 수확과 가공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져 생두의 모양이 일정하지 않다. 로스팅 후에도 원두의 색깔이 균일하지 않다. 이런 특징 때문에 생두의 체계적 등급 분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국제적으로 '커피의 귀부인' 혹은 '커피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받으며 고급 커피로 인정받고 있는 것에 비해 관리는 비체계적이다.
예멘 내전과 난민 사태가 보여주듯이 반복되는 지역 정세의 불안정으로 인해 20세기 세계 커피 소비의 폭발적 증가에도 불구하고 커피 소비의 출발점이었던 중동 지역은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커피 소비가 적었다. 커피 제1의 물결과 제2의 물결이 중동 지역에는 닿지 않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이 지역을 지배하는 음료는 차였다. 그러던 것이 21세기 들어 스페셜티 커피에 대한 관심 확대와 함께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19세기까지 예멘을 중심으로 한 홍해 지역이 중동 커피산업과 소비의 중심이었다면, 21세기 현재 중동 커피 소비의 중심은 아마도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 페르시아만 주변 국가들일 것이다.
▲ 예멘의 수도 사나에 있는 한 스페셜티 커피숍에서 직원이 커피를 밀봉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현재 중동 지역에서 거래되는 커피의 양은 60킬로그램짜리 자루로 450만~500만 개 정도로 추정된다. 이는 미국 소비량의 1000의 1 정도에 불과하지만 성장 속도는 세계 커피 시장 성장률의 4~5배에 이른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연평균 10퍼센트 이상의 성장이 예상되는 이슬람권 스페셜티 커피 시장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 중의 하나가 바로 중동의 중심인 페르시아만이다. 이 지역 커피 문화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이른바 밀레니엄 세대 혹은 Z세대라고 불리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출생자들이다.
이들은 생활의 독창성을 추구하고 미학적으로 돋보이기를 추구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는데 음료나 음식을 선택하고 소비하는 데서도 그런 특징을 드러낸다.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에서, 누구나 마실 수 있는 커피보다는 나만이 즐길 수 있는 그림 같은 공간에서 나만을 위해 만들어진 특별한 커피의 맛을 즐기는 것이다. 이들이 유행시키는 공간이 바로 스페셜티 커피를 제공하는 작은 커피숍, 이른바 부티크 커피숍이다.
두바이에 있는 알케미 두바이(Alchemy Dubai)나 매드 테일러스(Mad Tailors)가 바로 그런 곳이다. 작은 수영장과 식물원 또는 미술관에서 스페셜티 커피를 즐기는 것이다. 커피와 함께 제공되는 사이드 메뉴의 독창성도 이들 작은 커피숍들이 추구하는 새로운 문화이다.
▲ 튀르키예식 커피 |
ⓒ 위키미디어 공용 |
이렇게 제공되는 튀르키예식 커피는 강한 바디감, 맛있는 향과 오래가는 아로마가 특징이다. 튀르키예인들은 커피를 마신 후 잔을 엎는다. 바닥에 새겨진 찌꺼기 모양을 보고 점을 치기도 한다. 남은 커피 찌꺼기 모양으로 점치는 풍습은 튀르키예에서 만들어져 17세기 말 즈음 프랑스 파리를 거쳐 오스트리아, 헝가리, 독일 등에서 유행할 정도였다. 이렇게 즐기는 튀르키예식 커피는 다른 종류의 커피에 비해 카페인 함량이 낮다고 튀르키예 사람들은 믿고 있다.
튀르키예인들에게 커피는 오래전부터 우정, 사랑, 그리고 공감의 상징이었다. 커피가 얼마나 중요한 문화였는지는 속담에도 남아 있다. "한 잔의 커피는 40년 지속되는 우정을 만든다"는 속담이 그것이다. 튀르키예어로 아침 식사를 '카흐발티(kahvalti)'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커피를 뜻하는 '카흐베(kahve)'와 이전을 뜻하는 '알티(alti)'가 합해져 '커피 마시기 전'이란 뜻이다.
▲ 튀르키예의 한 가정에서 청혼을 위해 찾아온 예비 신랑에게 신부가 커피를 대접하고 있다. |
ⓒ 튀르키예 문화관광부 |
커피 문화가 가장 먼저 발달하였던 튀르키예는 20세기 들어 커피산업이나 커피 소비시장으로서의 의미를 잃어버린 상태에 접어들었다.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들이 그렇듯이 19세기 후반 인도로부터 전해진 차 문화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보다 중요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커피 가격이 급격히 상승하였기 때문이었다. 1922년 제국의 멸망으로 예멘을 비롯하여 커피 공급 지역이 튀르키예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면서 튀르키예인들에게 커피는 점점 더 구하기 어려운 음료가 되었다. 커피의 대용품으로 등장한 차가 국민 음료의 자리를 차지하였다.
커피에 대한 차의 우위는 100년 가까이 지속되었다. 현재 차 소비량 순위에서는 세계 5위, 국민 1인당 차 소비량 순위에서는 세계 6위를 차지할 정도로 튀르키예에서는 차가 국민 음료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튀르키예에서도 21세기에 들어 커피 소비가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2010년 이후 연 15퍼센트 수준의 커피 소비 증가를 보이고 있고, 카페 시장의 27퍼센트를 차지하는 스타벅스 매장은 매년 증가하여 2020년에 523개를 넘어섰다. 유럽 전체에서 영국 다음으로 많다.
현재 튀르키예에는 국제적으로 명성 높은 커피 체인점들이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 미국의 스타벅스, 독일의 치보(Tchibo), 영국의 카페 네로(Caffe Nero), 오스트레일리아의 글로리아 진스 커피(Gloria Jeans Coffee) 등 세계적 커피 브랜드뿐 아니라 엠오씨(MOC), 페데랄(Federal), 페트라(Petra), 카흐베 듄예스(Kahve Dünyasi), 카흐베 디야리(Kahve Diyari) 등 자국 브랜드들도 빠르게 성장 중이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커피의 대유행 속에서 가장 관심을 끌었던 질문 중 하나는 "과연 차의 나라 영국, 일본, 중국, 인도, 튀르키예, 러시아 등에서 커피가 차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인지?"였다.
가장 먼저 영국과 일본이 커피를 선택하였고, 이어서 중국, 러시아 순으로 커피가 차 문화를 서서히 침식하기 시작하였다. 마지막 남은 나라가 튀르키예와 인도였다. 이제 튀르키예도 차를 버리고 커피로 옮겨가는 첫 단추를 끼운 것이 분명하다.
- 유튜브채널 <커피히스토리>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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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이길상(2021). 커피세계사 + 한국가배사. 푸른역사. Oya Yildirim & Oya Berkay Karaca(2022). The consumption of tea and coffee in Turkey and emerging new trends. Journal of Ethnic Foods Volume 9, No.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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