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엔딩'..휘바이든 망신부터 일본에 '찾아가는' 만남까지
영국 여왕 참배 취소, 30분 한-일 간담, 48초 한-미 조우
대통령실 혼돈의 외교 프로토콜..졸속 의욕, 부메랑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두 번째 해외순방에서도 ‘준비 안 된’ 외교 역량을 그대로 드러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조문을 하러 간 영국 런던에선 조문하지 못했고 “흔쾌히 합의됐다”던 한-일 정상회담은 윤 대통령이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있는 행사장을 찾아가 비공개로 진행했다. 미국 뉴욕에서 만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회동은 ‘48초’에 그쳤다. 48초는 미국의 한국 전기자동차 보조금 차별 문제 등을 논의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영국 런던
2022년 9월18일(현지시각) 오후 3시30분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영국 스탠스테드공항 도착
18일 오후 6시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참배를 ‘교통 사정’ 탓에 가지 못하고 찰스 3세 영국 국왕 주최 리셉션 참석(1시간 진행)
19일 오전 11시 웨스트민스터사원에서 열린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 참석 뒤 조문록 작성
#미국 뉴욕
9월19일 저녁 8시30분 윤 대통령과 김 여사, 미국 뉴욕 제이에프케이(JFK)공항 도착
20일 낮 12시20분 윤 대통령, 유엔총회장 입장해 12시51분부터 11분 동안 ‘북한 언급 없는’ 연설
20일 오후 3시45분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면담
21일 낮 12시23분 윤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있는 행사장 찾아 30분간 약식 회담
21일 오후 2시20분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정상회담
21일 오후 5시15분 윤 대통령, 예정에 없던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에 참석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48초간 대화
영국 첫 일정부터 불확실성의 연속
윤 대통령의 순방 일정을 보면, 이른바 외교의 ‘프로토콜’(외교용 언어로 약속이나 규율, 의전)이 혼돈에 빠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런던에 도착한 첫 일정부터 불확실했다. 윤 대통령은 영국으로 향하는 대통령전용기 안에서 “6·25 참전용사 헌화하러 가고 그다음에 (여왕) 추모하고 그다음에 리셉션 하고 세 개인데, 세 개를 다 할 수 있을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관이 안치된 웨스트민스터홀을 찾아가 참배하는 계획이 가능한지 알 수 없는 채 런던에 도착했다는 이야기다. 결국 대통령실은 ‘런던 현지 교통 문제 탓에 참배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전용기 출발시간을 앞당겼어야 했다거나, 윤 대통령이 걸어서라도 할 수 있는 ‘조문 외교’를 하지 않았다고 질타했다.
뉴욕에서도 윤 대통령 행보는 프로토콜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앞서 9월15일 김태효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1차장은 “(해외순방 기간에) 한-미 정상회담, 한-일 정상회담을 하기로 합의해놓고 시간을 조율 중에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정상회담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9월21일 기시다 일본 총리가 참석하는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의 친구들’ 행사장이 있는 빌딩을 찾아가, 양국 국기와 취재진도 없이 비공개로 회담했다. 대통령실은 회담 결과에 대해 “한-일 간 갈등이 존재하는 가운데 해결을 위한 첫걸음을 뗐다는 의미가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핵심 현안인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 등의 언급은 없었다. 일본은 윤 대통령과의 만남을 정상회담이 아니라 ‘비공식 간담’이라 표현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이날 오후 바이든 대통령이 주최한 행사를 찾아갔다. 행사가 끝난 뒤 각 나라 정상들이 단체사진을 찍고 자유롭게 대화하는 도중 바이든 대통령을 찾아 48초간 대화를 나눴다. 바이든 대통령이 뉴욕 체류 일정을 줄이면서 짧게 ‘조우’하는 데 그친 것이다. 윤 대통령이 행사장을 나오면서 동행한 박진 외교부 장관과 김성한 안보실장 쪽을 바라보며 “국회에서 이 ××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이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말하는 듯한 장면이 방송사 카메라에 포착돼 욕설·비속어 논란도 일었다. 이에 김은혜 홍보수석은 15시간 만인 22일 오전(현지시간) 브리핑을 열어, 윤 대통령의 발언은 “국회에서 이 ××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이 쪽팔려서…”가 아니라 “국회에서 이 ××들이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면 쪽팔려서…”라고 반박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을 겨눈 것이라는 취지다.
기본부터 무너진 외교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외교의 기본부터 무너진 상황”이라고 했다. 정상회담은 제3국에서 열리더라도 회담을 여는 주최국이 있고, 양국을 상징하는 국기를 놓고 진행한다. 회담에 앞서 인사 발언을 공개하고 양국 배석자를 같은 인원으로 맞추는 등 형식을 갖추는 것은 국가 대 국가라는 대등한 관계에서 정상 간 이야기를 나눈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이번 한-일 정상의 만남은 사전 예고 없이 윤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를 찾아가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국기도 없는 곳에서 비공개로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일했던 한 외교 관련 담당자는 “프로토콜은 외교에서 정말 중요하고 형식과 과정이 (회담) 내용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저렇게 하면 기본적으로 갑과 을이 돼버린다”고 말했다.
이번 영국·미국·캐나다 순방은 대통령실을 개편한 뒤 윤 대통령이 선보인 첫 외교 무대였다. 특히 김태효 1차장은 양국이 함께 발표하는 관례를 깨고 먼저 한-일, 한-미 정상회담 개최를 공식 발표하는 ‘의욕’을 보였다. 윤 대통령도 순방 출발 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대타협”을 말하며 한-일 외교 문제 해결을 언급했다. 그러나 졸속 의욕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일본은 한국 정부가 외교 관례를 깬 것에 불쾌감을 드러내며 정상회담 일정을 마지막까지 발표하지 않았다. 이에 정상회담을 먼저 언급한 한국이 일본 쪽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외교 컨트롤타워 총체적 부실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는 “일본 총리는 이번 유엔 연설에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조건 없이 만나겠다는 제안을 하면서도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는 굴욕감을 느껴야 하는 게 정상이고, 외교 컨트롤타워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드러냈다”고 말했다.
전기차 보조금 차별과 통화 스와프 등 한-미 현안을 정상회담으로 풀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구상도 어긋났다. 백악관은 보도자료를 내어 “두 지도자는 한-미 동맹을 강화했다”고 밝혔지만, 전기차 보조금 등은 언급하지 않았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정상외교의 목적도 성과도 전무한 국제적인 망신, 외교 참사에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 외교 라인의 전면적 교체가 불가피해 보인다”고 했다.
9월22일 나온 여론조사(9월19~21일 전국 만 18살 이상 남녀 1천 명 대상 전국지표조사, 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 결과를 보면, 윤 대통령의 해외순방 성과에 대해 ‘성과가 없을 것’이란 답변은 55%에 이르렀다. ‘성과 있을 것’이란 답변은 40%였다. 윤 대통령이 ‘외교적 쇼’를 통해 현안 해결과 낮은 지지율에 대한 돌파구를 마련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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