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탱크를 달라"..전쟁 공포 휩싸인 각국, K-2 전차 원한다 [박수찬의 軍]
“앞으로 ‘K-방위산업’의 진정한 주역은 K-2 전차가 될 것이다. 외국서 관심이 매우 높다.” 폴란드가 지난달 K-2 180대를 구매하는 본계약을 체결한 것과 관련, 국내 방위산업 관계자는 이같은 평가를 남겼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러시아군 전차가 우크라이나군 대전차미사일에 대거 파괴되면서 불거졌던 ‘전차 무용론’도 K-2에 대한 관심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모양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차 수요 폭증
냉전 시절 전쟁의 주역으로 평가받았던 전차는 탈냉전 시대에 들어서면서 구시대 무기로 밀려났다. 세계 각국은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전차를 퇴역시키거나 제3국에 넘겼다.
독일의 경우 냉전 붕괴 시점에서 레오파르트 2 전차 2000여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냉전이 끝나면서 보유량을 계속 감축했고, 남은 수량은 폴란드와 덴마크, 캐나다 등에 중고로 팔렸다.
이같은 추세는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된 2000년대 이후에 더욱 심해졌다. 수송기로 이동이 가능한 차륜형 장갑차나 지뢰방호차량(MRAP), 전술차량 등이 주목을 받았다.
세계 각국에서 전차 개발은 정체되고, 장갑차를 비롯한 군용 차량을 개발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같은 상황을 뒤집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군은 개전 초기부터 전차를 앞세워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냉전 시절 옛 소련 무기를 도입했던 동유럽은 1990년대부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했지만, 예산 등의 문제로 러시아산 무기를 개량하면서 계속 사용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자 동유럽 국가들이 보유한 러시아산 무기는 우크라이나 지원 대상 1순위로 지목됐다. 우크라이나군이 인수 즉시 사용할 수 있는 무기였기 때문이다.
러시아산 전차는 최우선 지원 대상이었다. 당초 예상과 달리 러시아가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면서 우크라이나군도 전차를 앞세워 하루에 수십㎞씩 이동하는 기동전을 벌일 수 있었고, 방어전에서도 전차를 활용해 전투를 치르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재블린이나 NLAW처럼 대전차미사일 위주로 제공됐던 지원은 자연스레 전차나 장갑차를 비롯한 중화기로 옮겨갔다.
초기에는 독일산 레오파르트 2 등의 전차 지원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별도의 훈련을 거치지 않아도 우크라이나군이 사용할 수 있는 러시아산 전차를 지원하는 것이 더 낫다는 지적이 힘을 얻었다.
이에 따라 폴란드와 체코, 북마케도니아 등은 자신들이 갖고 있던 T-72를 여러 차례에 걸쳐 우크라이나에 보냈다. 사실상 유럽에서 T-72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여기에 러시아의 위협에 맞서 군을 현대화하고 러시아산 무기에 대한 의존을 없애야 한다는 필요성이 더해지면서 서방 기술로 제작된 전차 수요가 늘어나는 모양새다.
하지만 러시아산 전차를 성능개량하거나 조립 생산을 진행했던 경험으로는 서방 기술과 표준을 적용한 신형 전차의 독자 제작은 어려웠다. 도입 루트를 외국으로 잡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신 전차 ‘기근’, K-2 독주 가능성
문제는 폭증한 수요를 신속하게 충족할 수 있는 전차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서방에서 첨단 전차 기술은 오랜 기간 정체 국면에 있었다.
영국에서 만든 챌린저는 세계 시장에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아리에테는 수출 실적이 없으며, 성능을 높이는 작업도 최근에야 거론되는 상황이다. 독일 레오파르트 2A7+는 독일 연방군에 납품하는 과정에서 납기 지연 문제를 겪었다.
프랑스와 독일이 차세대 전차(EMBT)를 개발하고 있지만, 이는 기술 실증의 성격이 강하다. 기존 전차를 능가하는 최신형 전차가 언제쯤 실전배치될 지는 불확실한 상태다.
본토에서 싸우지 않는 원정군 개념을 지닌 미국은 분쟁 지역으로 빠르게 수송 가능한 장갑차에 집중, 전차를 단기간 내 대량생산할 능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미국과 유럽 전차 중에서 고품질의 신규 전차를 빠르게 제공할 수 있는 기종은 찾아보기 힘든 셈이다.
K-2는 북한과의 전면전을 염두에 두고 만든 전차다. 전시 보급을 원활히 하고자 빠른 속도로 대량생산을 할 수 있는 구조를 갖췄다.
성능도 우수하다. 자동장전장치는 탄약을 빠르고 안정적으로 장전한다. 전차로 접근하는 대전차 미사일을 감지, 연막탄을 발사하고 회피기동을 실시한다. 기존 전차에 탑재된 1200마력 엔진보다 출력이 더 높은 1500마력 엔진을 탑재해 기동력도 강화됐다.
포수가 표적에 사격할 때, 전차장은 다른 목표물을 추적하는 헌터 킬러(Hunter-Killer)을 기능을 갖춰 다양한 표적을 대상으로 하는 교전에서도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
자세를 정밀하게 제어하는 유기압 현수장치는 울퉁불퉁한 지형에서도 매끄럽게 주행이 가능하다. 차체가 크게 흔들리지 않아 목표물 조준과 타격의 정확도가 높다.
포탑 전면에는 레이저 경고장치가 있다. 레이저 유도방식의 대전차미사일 공격 시 레이저 신호를 탐지, 관련 정보를 승무원에게 제공한다.
◆폴란드·체코·호주 등에서 관심 높아
K-2 제작사인 현대로템과 K-2 180대를 도입하는 1차 이행계약을 체결한 폴란드는 기갑전력을 K-2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폴란드에 수출되는 K-2PL은 적이 쏜 대전차미사일을 파괴하는 능동방호체계, 차량 하부에 탈부착이 가능한 지뢰 방호 키트, 전후좌우 시야를 확보하는 360도 카메라 등이 장착되어 한국군 K-2보다 성능이 향상될 전망이다.
폴란드의 요구사항이 반영되는 K-2PL은 2차 이행계약을 통해 도입 규모와 생산방식 등이 정해진다. 2차 이행계약 시점은 연말로 예정되어 있다.
K-2PL은 한국군용 K-2와 70~80% 정도 유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폴란드의 요구사항이 많지 않아서 공통성이 높다는 후문이다.
다만 생산 방식이 변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 폴란드와 한국이 생산물량을 어떻게 배분하느냐의 문제다.
폴란드는 T-72를 개량해 말레이시아에 판매하는 등 전차 생산과 성능개량 경험을 갖추고 있다. 폴란드 정부는 관련 경험을 유지·발전시키고자 K-2PL의 현지 생산을 추진중이다.
폴란드에서 단순 조립 생산을 할 수도 있고, 폴란드산 부품이나 장비를 탑재할 가능성도 있다. 생산 물량과 방식을 놓고 양측간 줄다리기가 이어질 수도 있다.
폴란드와 인접한 체코, 슬로바키아도 K-2에 관심이 높다. 이들 국가는 우크라이나에 T-72를 지원, 전차 전력에 공백이 발생했다. 러시아산 무기를 퇴출하려는 기조 속에서 나토 표준에 부합하는 신형 전차로 대체하려는 의도라는 평가다.
K-9 자주포를 도입한 호주도 초기 단계지만 K-2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호주에서는 미국산 M-1계열 전차의 성능개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논란 속에서 대체 소요의 필요성이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르웨이는 폴란드에서 대형 계약을 맺은 현대로템이 수주에 총력을 기울이는 국가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독일 측에 유리한 형세였다. 노르웨이 육군 기갑병과는 오랜 기간 독일산 전차를 운용했다. 독일의 운영개념과 후속군수지원에 익숙했던 기갑병과로서는 레오파르트2A7+를 선호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폴란드가 K-2 도입을 결정하고, 독일산 전차의 납기 지연 문제가 거론되면서 노르웨이 기갑병과에서도 “K-2를 도입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벤트-요아킴 벤슨 노르웨이 국방차관은 진나달 K-2 전차 수입 여부를 묻는 미국의소리(VOA) 방송 질의에 “K-2는 성능이 높은 현대식 전차로 평가받고 있으며, 제조사도 서방 세계에서 선도적인 전차 생산업체”라고 밝혔다.
노르웨이 전차 사업에서 독일을 꺾고 수주에 성공한다면 유럽 전차 시장에서 현대로템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기반을 얻게 된다.
신형 전차 도입을 원하는 국가들이 요구하는 성능을 대부분 충족한다는 점에서 K-2가 글로벌 무기 시장에서 베스트셀러 전차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오고 있다.
과거에는 수출이 쉽지 않았지만, 폴란드가 대량 주문을 하면서 대외 신뢰도가 향상됐다. 그만큼 관심도 높아진 셈이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차의 중요성이 주목을 받는 상황에서 가격이 다소 높더라도 첨단 기술을 갖추고, 성능개량 계획이 구체화한 신형 전차를 원하는 국가들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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