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장하고 친엄마 찾으러 떠난 남자..막상 엄마 만나자 [씨네프레소]

박창영 2022. 9. 24.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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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 이 기사에는 영화의 전개 방향을 추측할 수 있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씨네프레소-48] 영화 '플루토에서 아침을'

자유주의자라면 타인을 그의 정체성이나 취향을 근거로 차별할 이유가 없다. 그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렇기에 소수자 인권 문제를 다룬 대부분의 영화는 자유주의에 대한 예찬이기도 하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모든 이가 가능한 한 많은 자유를 누리게 하자는 것이다.

패트릭 `키튼` 브래든은 드랙퀸이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버림 받은 그는 어느 날, 엄마를 찾아 런던으로 떠난다. [사진 제공 = 프리비젼엔터테인먼트]
'플루토에서 아침을'(2005)은 여장 남자인 패트릭 '키튼' 브래든(킬리언 머피)의 이야기다. 그의 여장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은 없지만, 그는 살아가는 동안 자신의 성 정체성 때문에 폭력과 차별에 계속 노출된다. 그럼에도 패트릭은 늘 웃는다. 그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무딘 사람이었을까.
패트릭은 심각해지는 것을 경계한다. 늘 밝은 옷을 입고, 웃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슬픔에 익사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진 제공 = 프리비젼엔터테인먼트]
◆ 양엄마의 화장품과 치마, 구두로 치장한 남자

영화는 패트릭이 유모차를 탄 아기에게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며 시작된다. 가톨릭 신부인 버나드(리엄 니슨)는 집 앞에서 아기 패트릭이 담긴 바구니를 발견한 뒤 이를 패트릭의 양어머니에게 넘긴다. 양어머니와 누나는 패트릭에게 결코 상냥하지 않았지만, 패트릭은 개의치 않았다. 어릴 때부터 두 사람의 화장품, 치마, 구두를 사용해 자신을 치장했고 양어머니에게 심하게 혼나고도 멈출 줄을 몰랐다.

학교에서 패트릭은 문제아 취급을 받았다. 양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부끄러워했다. [사진 제공 = 프리비젼엔터테인먼트]
다수와 다른 성 정체성, 친부모의 부재에도 그는 외롭지만은 않았다.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패트릭이 학교 작문 시간에 야한 이야기를 쓰다 걸려 혼나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벗들이다. 패트릭이 학교에서 '성전환 수술 잘하는 곳을 아느냐'는 질문을 했다가 꾸지람을 당해도 친구들은 그를 재미있게 여길 뿐이었다. 패트릭의 친구 무리에는 다운증후군이 있는 벗도 함께했는데, 이들은 모두 서로를 따뜻하게 감쌌다. 그들은 친구의 다른 점을 차별의 근거로 생각하지 않고 상대의 매력으로 받아들였다.
친구들이 함께했기에 패트릭은 외롭지만은 않았다. [사진 제공 = 프리비젼엔터테인먼트]
◆ 사람들은 날 변태라고 욕하고 때렸다…정작 변태라고 비난받은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패트릭은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는 양어머니 집을 나와 여행을 떠난다. 이 여행의 목적은 두 가지로 보인다. 하나는 친엄마를 찾는 것이고, 또 하나는 스스로를 좀 더 깊이 아는 것이다. 자신을 발견해나가는 과정 중의 일부로 몇몇 남자와의 연애가 그려진다. 그는 진정한 사랑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그 남자들은 패트릭을 위험에 빠뜨리거나 그의 상처를 비즈니스에 이용하는 등 미성숙한 행동을 보여주긴 하지만, 패트릭은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사랑한다.

그의 연애 상대들은 미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패트릭은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사랑한다. [사진 제공 = 프리비젼엔터테인먼트]
이처럼 패트릭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탐색하고, 여러 동성과 연애하는 동안 누구도 피해를 입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패트릭이 '다르다'는 이유로 변태로 낙인찍고 상처를 준다. 폭탄 테러 현장에서 살아남은 패트릭을 경찰이 급작스레 용의자로 체포하는 장면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경찰이 패트릭을 무장 테러 단체인 아일랜드공화군(IRA)으로 몰아간 근거는 단지 패트릭이 눈에 띄는 복장을 하고 있었다는 것뿐이다.
고문에 지친 패트릭은 자백한다. 자신이 샤넬 향수를 이용해서 테러를 저질렀다고. [사진 제공 = 프리비젼엔터테인먼트]
이는 타인을 그의 정체성이나 취향을 이유로 탄압하는 것이 얼마나 비합리적인지에 대한 이야기다. 세상에서 '비정상'으로 불리지만 타인에게 해를 입히지 않고 자기 삶을 사는 패트릭과, 스스로를 '정상'으로 수식하면서 남을 '변태'로 규정하고 폭력을 가하는 이들 중 누가 더 '정상'이냐는 질문이다. 자유주의자인 당신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마술사 애인은 패트릭을 꽤나 좋아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패트릭의 상처를 마술쇼에 활용한 그가 '진정한 사랑'을 했다고 보기엔 애매한 구석이 있다. [사진 제공 = 프리비젼엔터테인먼트]
◆ 날 때리던 경찰, 날 걱정하는 친구가 됐다

그러나 이 영화는 차별주의자의 폭력성을 폭로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들도 변화될 수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세상에서 차별을 줄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이야기를 넌지시 건넨다. 예를 들어 패트릭을 감금한 채 자백을 강요하던 경찰은 태도의 변화를 보여준다. 누명을 벗고 석방된 패트릭이 성매매 산업으로 몰리자 소식을 들은 경찰이 그를 찾아온 것이다. 경찰은 패트릭이 매춘보다는 자신을 덜 혹사하고도 돈을 벌 수 있는 합법 스트립 클럽에서 일하도록 도와준다. 처음 패트릭의 의상을 근거로 테러리스트라고 낙인찍었던 경찰이 이제 그를 인간적으로 걱정하게 된 것이다. '비정상'인 줄 알았던 패트릭과 함께 경찰서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그도 자신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인간임을 깨달은 셈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막연히 차별하는 것은 어쩌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르단 것이다.

패트릭이 조금 더 나은 일자리를 구하게 되는 데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고문하던 경찰의 역할이 컸다. 계기가 어찌 됐든 간에 경찰은 패트릭과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가 자신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인간임을 깨달은 것이다. 물론 대안으로 또 다른 유흥업소를 제안한 것이 윤리적인지에 대한 질문은 나올 수 있겠다. 그러나 적어도 경찰의 인격만 놓고 봤을 땐, 그는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서 살아가게 됐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제공 = 프리비젼엔터테인먼트]
◆ 엄마를 찾으려고 했는데, 아빠를 찾게 됐다

영화의 포커스는 다시 패트릭의 친엄마 찾기로 돌아온다. 그는 숱한 역경에도 꿋꿋이 엄마 찾는 일을 지속한다. 그러나 이는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닌데, 패트릭이 엄마에 대해 아는 정보라곤 그가 미국의 유명 배우 밋지 게이너를 닮았다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미궁에 빠진 패트릭은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위의 경찰이 소개해준 유흥업소에서 일하게 되고, 그러던 도중 자신을 양어머니에게 맡긴 신부 버나드의 방문을 받는다. 신부는 패트릭 친엄마의 주소를 알려주며 고백한다. 사실 내가 네 아버지였노라고.

신부 버나드는 패트릭의 친아버지였다. [사진 제공 = 프리비젼엔터테인먼트]
신부가 알려준 주소에서 패트릭은 새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엄마를 본다. 그리고 엄마에게 자신의 존재를 밝히는 대신 거기서 멈추기로 한다. 상상의 존재였던 엄마가 실제로 있었음을 안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한 것이다. 가톨릭 사제와의 사이에서 자신을 낳아 키우지도 못했던 엄마의 과거 사정을 이해하고, 그의 현재 인생을 존중하기로 한다. 그는 이 여행을 통해 엄마의 존재를 눈으로 확인한 것 외에도 선물을 받게 됐다. 바로 아버지를 찾은 것이다. 패트릭은 아버지, 그리고 자신의 미혼모 친구 찰리(루스 네가)와 한집에서 살게 된다. 남들이 망측하다고 손가락질을 하든 안 하든 세 사람은 행복하다.
패트릭의 친구 찰리가 미혼모가 된 것은 그의 남자친구가 어느 날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패트릭은 찰리가 용기를 내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끝까지 함께한다. [사진 제공 = 프리비젼엔터테인먼트]
'플루토에서 아침을'은 세상에서 오해받는 이들을 위해 따뜻한 격려를 담은 영화다. 작품의 중반부에 패트릭은 엄마를 '유령숙녀'라고 표현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럼 엄마도 현실도 마치 허구처럼 느껴지죠. 안 그럼 자꾸 눈물이 나거든요." 그는 비극적인 현실을 소설 속 한 장면으로 생각함으로써 고통을 견뎌냈다. 자신을 차별한 사람들이 남긴 생채기, 부모에게 버려졌다는 마음 한구석의 상처가 불쑥불쑥 떠올랐지만, 슬픔이 자기 인생을 잠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비감(悲感)에서 빠져나와 인생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로 '서사'를 선택한 것이다. 자기 인생의 커다란 서사를 계속해서 상상하며 현재의 슬픔을 조금 떨어져서 바라본 것이다. 언젠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될 인생 속에서, 지금의 슬픔은 작은 점에 지나지 않을 테니 말이다.
'플루토에서 아침을' 포스터. [사진 제공 = 프리비젼엔터테인먼트]
장르: 코미디·드라마

감독: 닐 조던

출연: 킬리언 머피, 리엄 니슨, 브렌던 글리슨, 루스 네가

평점: 왓챠피디아(3.7/5.0), IMDb(7.2/10), 로튼토마토 토마토지수(57%), 팝콘지수(80%)

※2022년 9월 23일 기준.

감상 가능한 곳(OTT): 웨이브, 티빙, 왓챠, U+모바일tv

[씨네프레소 지난 회차]

27회-성인 배우도 연애할 땐 썸부터 탄다…'러브 액츄얼리'

29회-"여제자 스타로 키웠더니, 날 떠난다네요"…'밀리언 달러 베이비'

30회-날 구해준 아저씨, 엄마 망친 마약상이었다…'문라이트'

32회-날 위로하던 스승, 뒤에선 애인과 나 갈라놔…'시네마 천국'

36회-"못 걷는 내가 부러워? 그럼 너도 다리 잘라"…'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39회-남친이 제 얘기로 19금 칼럼을 썼습니다…'연애 빠진 로맨스'와 '비열한 거리'

41회-아빠 잃었는데, 삼촌이 절 키우기 싫다네요…'맨체스터 바이 더 씨'

[박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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