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가을, 슬로우 비디오처럼 즐길 수 있는 곳

장주영 2022. 9. 24. 15: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푸른 하늘이 점점 높아지고, 검붉은 단풍이 온천지에 내려앉으면 게임은 끝이다. 전 세계 어느 곳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대한민국의 가을이 시작한 것일테니 말이다. 아쉽게도 유난히 짧은 가을이기에 이 순간을 놓치면 두고두고 아쉽다. 어쩌면 체계적으로 규모 있게 마치 촘촘히 예산 짜듯 가을 즐기기 계획을 세우는 것이 필요할지 모른다.

그래서 준비했다. 올 가을을 보다 낭만적으로 보낼 수 있는 5곳이다. 흐르는 시간은 찰나일 수 있지만 누가 어떻게 즐기냐에 따라 슬로우 비디오처럼 지나갈 수도 있다. 단, 수도권으로 지역을 한정했다. 다른 곳은 곧 따로 살뜰히 정리할 예정이니 기다려주시길.​​

구리 아차산보루

사진 = 경기관광공사

경기도 구리 아차산은 가을단풍이 주는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역사적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아차산성은 ‘삼국사기’에 이 성을 백제 책계왕 28년(286년)에 수리했다는 기록이 있어 그 이전에 축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96년에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빼앗았고, 475년에는 백제 개로왕이 성 아래에서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안타까운 것은 현재 산성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아차산성은 볼 수 없지만 보루는 볼 수 있다. 보루는 보루성이라고도 부른다. 주위를 관찰하기 좋은 낮은 봉우리에 쌓은 소형 석축산성으로 산성에 비해 규모가 작은 군사시설을 말한다. 아차산에는 여러 개의 보루가 있다. 산행을 하면서 가장 먼저 만나는 1보루, 그 다음에 나타나는 5보루, 3보루는 발굴조사가 이뤄지지 않거나 일부만 이뤄져 흙더미처럼 보인다. 제대로 된 보루의 모습은 4보루에서 볼 수 있다. 방어를 위해 쌓은 석축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과거와 현재가 하나라는 것을 보여준다.

아차산 능선을 걷다보면, 서울 풍경과 하남‧구리시 일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바벨탑처럼 우뚝 솟은 롯데월드타워를 중심으로 한 강남 일대는 물론 정상부로 올라가면서 북한산 아래 강북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고개를 경기도 방향으로 돌리면 한강의 물길을 중심으로 구리시와 하남시의 풍경이 펼쳐져 가을날의 산행으로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다.

수원전통문화관

사진 = 경기관광공사

전통은 오늘과 발맞출 때 힘이 있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세상인지라 과거를 답습하지 않고 시대의 흐름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전통과 현대가 슬기롭게 공존하는 수원전통문화관은 수원 장안문 앞에 자리한 전통문화 체험 공간이다. 전통문화를 더 많은 사람이 체험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통음식 교육과 예절 교육, 세시풍속 행사 등 흥미로운 전통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전통식생활체험관은 전통·궁중·발효음식 체험을 진행하거나 전통 식문화 주제의 전시를 연다. 올가을에는 제철 식재료로 만드는 가을 궁중다과, 떡·한과·음료 조리법을 배우는 하반기 전통병과 프로그램이 입맛을 돋운다. 예절교육관에서는 잊혀가는 전통 예절을 알리고자 다례·예절·규방공예 등을 체험 위주 프로그램으로 선보인다. 유튜브로 얼핏 보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몸을 움직이며 체득할 수 있는 시간이기에 더욱 뜻깊다.

또한 일대에는 행궁동 맛집과 카페 투어, 가벼운 산책 코스로 제격이다. 기와지붕 한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거나, 툇마루에 앉아 다리쉼을 하는 것만으로도 가을날의 운치를 누릴 수 있다.

양주 천만송이 천일홍 축제

사진 = 경기관광공사

향긋한 꽃향기가 은은히 퍼지면, 느긋하게 산책하며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기 금상첨화가 아닐까. 코로나19 이후 3년 만에 열리는 ‘양주 천만송이 천일홍 축제’는 9월 넷째 주 주말인 24일과 25일, 양일간 나리농원에서 열린다. 축제 일정에 맞추지 못하더라도, 10월 20일까지 넉넉히 개방하기에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나리공원에는 거대한 천일홍 군락지를 중심으로 핑크뮬리·댑싸리·코스모스·구절초·가우라·칸나 등 형형색색의 가을꽃을 만날 수 있다. 광활한 대지를 수놓은 가을꽃이 저마다의 매력을 뽐내고 있어, 꽃밭 사이로 난 산책로를 걷는 것만으로도 완연한 가을을 느낄 수 있다.

으뜸인 꽃은 역시 천일홍. 진보라색, 연분홍색, 하얀색 등 색감이 다채로워 꽃과 눈맞춤하고 각각의 이름을 확인하는 재미가 있다. 가장 흔히 보는 진보라색 천일홍의 이름은 오드리 바이컬로즈, 얼핏 보면 메밀꽃 같은 하얀 천일홍은 오드리 화이트다. SNS에 자주 등장하는 핑크뮬리도 인기다. 가을에 분홍 꽃이 피는 핑크뮬리는 같은 볏과 식물인 억새를 닮아 분홍 억새라고도 불린다.

이밖에 가을 햇볕에 빨갛게 물드는 댑싸리, 샛노란 태양 같은 숙근해바라기, 가을 전령사 코스모스 등 발길 닿는 곳마다 꽃 천지다. 농원 북쪽 전망대에 오르면 꽃이 만발한 전경이 한눈에 들어찬다. 나들이에 사진이 빠질 수 없다. 꽃밭이 근사한 배경이 되는 곳곳의 포토존에서 가을날의 한 컷을 완성해보시길.

양평 쉬자파크

사진 = 경기관광공사

용문산 자락의 쉬자파크는 숙박과 산림치유, 숲 체험이 어우러진 산림휴양단지다. 18만㎡ 부지에 생태습지와 쉬자정원 같은 테마 공간, 숲 체험을 위한 산림교육센터와 치유센터, 숙박동으로 쓰이는 초가원과 치유의 집까지 알차게 들어섰다. 숙박동과 발목풀장을 제외한 곳은 반려견과 함께할 수 있어 더욱 즐겁다.

쉬자파크 한가운데 들어선 초가원은 풀로 덮인 지붕이 독특한 프리미엄 숙박시설이다. 3개 동은 각각 다락방을 갖춘 한옥 복층 구조로, 푸르른 자연과 이질감 없이 섞인다. 치유의 집은 붉은 벽돌 지붕을 인 유럽풍 건물로, 야외 바비큐 시설에서 휴가 분위기를 낼 수 있다. 두 숙소 모두 넓은 테이블이 있어 일하기에 불편함이 없다.

일하다 몸이 찌뿌둥하면 쉬자파크 곳곳을 발길 닿는 대로 거닐면 된다. 길은 생태습지·명상의 숲·쉬자정원 등 자연의 생명력이 충만한 곳으로 이어진다. 느티나무와 아까시나무, 회화나무 같은 다양한 나무를 벗하며 걷는 즐거움이 각별하다. 쉬자파크 둘레를 한 바퀴 크게 도는 2.3km 길이의 치유숲길을 걷거나, 숲 해설 또는 산림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해도 좋다.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순도 높은 자연의 색과 소리, 향기에 잠든 오감이 삽시간에 깨어난다.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이라면 쉬자정원과 발목풀장을 꼭 가봐야 한다. 9월까지 쉬자정원의 잔디밭을 달리거나 곤충을 관찰하다가 발목풀장에서 더위를 식힐 수 있다. 한갓진 숲속 산책을 하고 싶다면 초가원 뒤편의 솔쉼터가 어떨까. 솔숲 그늘 아래, 알싸한 솔향에 복잡했던 마음이 가라앉는다.

하루 두 번 진행하는 산림치유 프로그램은 방문객 연령대와 특성에 따라 맞춤형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직장인을 위한 숲속 명상부터 임산부를 위한 숲속 체조, 시니어를 위한 오감 요법까지 다양해 숲과 친해지는 계기가 된다. 쉬자파크는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려 경사가 심하고 계단이 많은 편이다. 편안한 복장과 운동화 착용은 필수다.

여주 신륵사 강월헌

사진 = 경기관광공사

가을이 내려앉은 신륵사 경내는 고요하면서 화려하다. 속세의 시간과 풍경을 뛰어넘는 가을 기암과 단풍, 그리고 남한강의 물길이 어우러진 풍경이 신비로움을 더한다. 그 위에 내려앉은 한가위 달빛을 만날 수 있는 곳은 남한강 변 바위 절벽에 세워진 강월헌이다.

강월헌은 나옹화상이 양주 회암사에 머물 때 기거하던 처소 이름으로, 고려 말의 학자 목은 이색이 나옹화상과 강물에 비치는 달을 보며 강월헌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가을 맑은 날 강월헌 정자에 오르면 하늘과 강물이라는 두개의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다. 정자 주변에는 나뭇잎이 바람에 날리는 소리가 쉬지 않고 들린다. 여기에 풀벌레의 울음소리가 더해져 마냥 상쾌한 가을날을 느낄 수 있다.

[장주영 여행+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