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어쩌다 이렇게 늦게 공 차는 재미를 알게 된 걸까

한겨레 2022. 9. 24.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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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하루운동]#오늘하루운동―풋살
왜 일찍 공을 찰 생각을 못 했을까
늘지 않는 실력에 슬럼프 빠질 때면
50대에도 열정 넘치는 언니들을 본다
내가 속한 광진여성풋살팀. 20대부터 50대까지 한 팀이 되어 공을 찬다. 장은선 다큐멘터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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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프다. 실력이 느는 속도가 전 같지 않다.

풋살을 시작한 지 만 2년, 이렇게 정체기가 찾아올 때면 마음이 조급해지고 괜히 나이 탓을 하게 된다. 나이가 들어 배우고 익히는 속도가 느려진 탓이라고 말이다. 10년 뒤 내 나이는 마흔넷. 할머니가 되어서도 공을 차리라 다짐한 나지만, 마흔넷의 내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왠지 두 다리가 무거워진다. 게다가 우리 팀 막내 팀원의 나이에 10을 더해도 지금 내 나이가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이제라도 공을 차게 된 것이 감사하기는커녕, 왜 이제서야 시작하게 된 건지 괜스레 억울했던 적도 있다. 어쩌다 이렇게 늦게서야 공 차는 재미를 알게 된 걸까.

마흔에 시작한 언니들

나는 체육 시간을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체육 과목 수행평가에서는 늘 우수한 성적을 거뒀고, 반 대항 체육대회가 있을 때면 응원석보단 운동장 위를 누비는 편이었다. 다만 여학생인 내가 참가하는 종목은 피구 또는 발야구였다. 남학생들은 축구 또는 농구 경기에 참가했다. 마치 성별에 따라 출전 종목이 분명히 나뉘어 있다는 듯한 분위기 속에서 체육대회는 진행되었고, 피날레는 언제나 축구 결승이었다. 게다가 피구와 발야구는 혼성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왕왕 있었지만 축구와 농구 경기에 여학생이 함께 뛰는 것은 ‘라떼는’ 한번도 본 적 없는 광경이었다.

2000년대 초반 싸이월드 ‘얼짱 패셔니스타’ 반윤희의 아디다스 올드스쿨 축구화 패션은 꽤 유명했다. 나 역시 학창 시절 그를 따라 축구화를 신고 학교를 가곤 했는데, 그걸 신고 다니면서도 공을 차볼 생각은 왜 전혀 못 했을까. 패션으로 축구화를 신는 언니는 있어도, 축구하는 언니는 본 적이 없었던 탓이다.

풋살을 시작한 뒤 나는 공을 찰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어디든 달려갔다. ‘골 때리는 그녀들’ 덕에 여자 풋살 동호회가 우후죽순 늘어나던 시기였고, 어딜 가든 막 공을 차기 시작한 내 또래 여성들을 제법 만날 수 있었다. 공 차는 여성들을 만나는 것만으로 늘 가슴이 뛰었는데, 한 여성축구단을 찾아간 날은 정말 ‘가슴이 웅장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곳에는 공을 차는 언니들, 구력이 10년 이상 되는 40~50대 언니들이 쌩쌩한 얼굴로 운동장 위를 달리고 있었다. ‘아니… 다들 어디 계시다 이제야 나타나셨어요?!’ 너무나 낯설고, 동시에 너무나 보고 싶었던 광경을 마주하고는 속으로 외쳤다. 하지만 그 질문은 따지자면 잘못된 질문이었다. 언니들은 10년 넘게 운동장을 지키고 있었고, 이제서야 운동장을 찾아온 건 나였으니까.

“나는 진짜 인생이 확 바뀌었어!” 석순(55) 언니는 마흔살에 축구를 시작했다. 10년 넘게 별다른 외부 활동 없이 전업주부로 살다 보니 우울증이 찾아왔다. 우연히 여성축구단 모집 펼침막을 본 한 친구가 언니를 꼬셔 운동장으로 데려갔다. 신기하게도 첫날부터 느낌이 왔다. “그냥 뛰는 게 좋았어.” 공을 가지고 할 줄 아는 건 없었지만 일단 운동장 위를 달리니 살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좀 남달랐어, 괜찮았지.(웃음)” 꾸준히 운동을 해온 것도 아니었는데 언니의 감각은 시작부터 남달랐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다. 연습하는 만큼 느는 재미, 팀 동료들과 발을 맞추며 함께 성장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작고 단단한 몸으로 운동장 구석구석을 누비는 석순 언니는 나와 함께 공을 차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적극적인 선수다. 특히 언니가 수비를 볼 때면 언니를 믿고 라인을 마음껏 올려 공격하러 갈 수 있다. “내성적이고 예민한 성격이었는데 공을 차기 시작하면서 우울증도 나아지고 엄청 적극적으로 바뀌었어.” 누구라도 지금 운동장 위 언니를 보고는 ‘내성적’이란 단어를 떠올릴 순 없을 거다.

맨 왼쪽에서 공을 가지고 있는 선수가 정희 언니, 가운데 35번 선수가 석순 언니, 그리고 정희 언니에게 공을 받으러 뛰어가는 사람이 나다. 장은선 다큐멘터리 감독

정희(48) 언니도 마흔에 축구를 시작했다. 유방암이 찾아온 뒤였다. 때마침 아들이 다니던 축구교실 감독이 여자축구단 감독을 맡게 되었고, 집에서만 지내던 언니를 운동장으로 초대했다. 축구는 난생처음 하는 도전이었다. “축구는 단체 운동이잖아. 그런데 나한테 공이 오면 자꾸 뺏기고, 수비도 제대로 못 하고 하니까 내가 폐가 되는 거야.” 자신감이 떨어질 때 함께 시작한 동갑내기 친구들이 도움이 되었다. 서로 북돋워주면서 팀워크도 쌓여갔다. 언니는 8년째 건강하게 축구를 하고 있다.

“나는 항상 주춤주춤하면서 살아왔거든. 시골 출신이 서울로 올라와 늘 주눅 들어 있었고. 뭔가를 조금씩 포기하면서 살았는데 축구할 때만큼은 달라져.” 축구가 뭐길래 성격을, 인생을 바꿔놓는 걸까. 나는 감히 짐작해본다. 언니들이 입을 모아 바뀌었다고 말하는 면모는 그저 꺼내놓을 기회가 없었던, 언니들이 이미 가지고 있던 일부일 거라고. 그런 모습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축구라는 스포츠가 가진 매력이라고.

20년 뒤에도 공 차는 나를 상상해

나보다 더 좋은 체력으로, 넘치는 열정으로 공을 차는 언니들을 본다. 언니들 덕에 10년 뒤, 20년 뒤에도 운동장을 누비며 공을 차는 나를 상상할 수 있다. 그게 얼마나 큰 용기가 되는지 언니들은 알까. 석순 언니가 눈을 반짝이며 말한다. “예전에는 그저 공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성실히만 뛰었다면 이제야 좀 축구가 뭔지 알 것 같아.” 구력 15년의 언니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렇게 말하는데, 겨우 3년차인 내가 나이 탓을 하며 공차기를 게을리할 수 있을까!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내 질문에 석순 언니가 이미 계획이 다 있다는 듯 곧장 답했다. “발이 맞는 팀을 만들어서 꾸준히 운동도 하고 대회도 나가고 싶어. 근데 선수가 없네~. 은.선.아?”

글·사진 장은선 다큐멘터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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