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에 붉게 멍든 연정 꽃무릇..꽃말은 '이룰 수 없는 사랑'

정충신 기자 2022. 9. 24.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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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시 성주산자연휴양림 : 보령시 성주산자연휴양림에 꽃망울을 활짝 터뜨린 꽃무릇. 보령시 제공
꽃카페 상사화 배롱나무 : 여름꽃인 배롱나무(목백일홍) 그늘 아래 연분홍빛 상사화가 피어 있다. 가을꽃인 붉은 꽃무릇과 상사화는 같은 상사화과 식물이지만 엄연히 다른 꽃이다.
꽃카페 꽃무릇 대나무 길상사 4 : 성북동 길상사 경내 대나무 밭에 핀 꽃무릇이 대나무와 키재기라도 해보겠다는 듯 대나무처럼 곧게 쭉쭉 뻗어있다.
꽃카페 꽃무릇 아침햇살 당첨 길상사 : 서울 성북동 길상사 경내 뜨락 진홍색 꽃무릇이 붉은 쌀알을 단 듯한 이삭여귀와 함께 아침햇살에 반짝이고 있다. 꽃무릇은 아침 저녁 햇살에 반짝일 때가 가장 아름답다.
꽃카페 꽃무릇 아침 부도 길상사 1 : 서울 성북동 길상사 스님들이 거처하는 요사채 앞 부도와 함께 피어있는 꽃무릇. 길상사 측은 꽃무릇에 대해 "해탈과 열반에 대한 가질 수 없는 그리움, 그리고 길상사를 시주해주신 김영한 보살님과 백석 시인 간의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 그리고 법정스님을 그리워하는 마음 이런 것들이 중의적으로 포함됐다"고 길상의 꽃무릇을 얘기한다.
꽃카페 꽃무릇 하나 길상사 2 : 붉은 이삭여뀌와 사이좋게 피어있는 성북동 길상사의 꽃무릇. 가을 길상사에는 한라돌쩌귀, 개미취, 바위취 등 우리꽃들이 많이 식재돼 있다.

■ 정충신의 꽃·나무 카페

꽃무릇은 붉은 물결의 가을의 전령사 , 상사화는 연분홍빛 여름꽃

꽃무릇은 석산화·지옥꽃·붉은거미백합·붉노랑상사화 이름도

꽃이 지고 나면 잎이 피는 공통점…꽃말은 둘다 ‘이룰 수 없는 사랑’

글·사진 =정충신 선임기자

‘지나갈 테면 빨리 지나가라 했지요 한참이/지난 뒤에도 그 자리에서 꿈쩍 않네요/머무를 테면 머물러 봐라 했지요 마음은/지천으로 흘러흘러 붉게 물들이대요/내가 그대에게 갈 수 없고/그대가 나에게 갈 수 없어도/꽃은 피었습니다//천지에 그대라 눈에 밟힙니다’

이잠 시인의 ‘꽃무릇’은 붉은 파도가 넘실대는 듯, 천지를 울긋불긋 물들이며 눈에 밟히는 가을의 전령을 노래한다. 꽃무릇의 핏빛 그리움에 취하면 기어코 꽃멀미를 하고 만다.

이파리가 시들어서 져야만 꽃이 피기 때문에,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하므로, 그 꽃과 잎이 서로 그리워한다는 특이한 꽃이다. 화사하다 못해 애틋하기까지 한 붉은빛을 토해낼 것만 같은 꽃무릇의 꽃잎! 그리움에 붉게 멍이 든 흔적일까. 꽃무릇은 시인들에게 기다림의 미학을 싱징하는 꽃이다. ‘이별의 아픔’‘연정’그리고 ‘만나지 못하고 애태우는 기다림’의 꽃이다.

최경자 시인은 ‘선운사 꽃무릇’에서 “조각난 꿈을 모아 추억으로 묻어두고 영혼을 불사르는 불멸의 꽃”이라고 했다. 서상옥 시인은 ‘꽃무릇 연정’에서 “불꽃 튀는 사랑”“붉은 정열”의 꽃이라고 했다.

천지에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는 무리진 꽃무릇은 두고 녹의홍상(綠衣紅裳 ), 연두 저고리에 다홍치마 입은 모습이라고 한 말은 맞지 않다. 거꾸로 다홍 저고리에 연두치마를 한 ‘홍의녹상(紅衣綠裳)’이란 표현이 맞다.

꽃무릇은 수선화과로 본래 이름은 꽃대가 마늘종을 닮았대서 석산화(石蒜花)이다. 서로 떨어져 사모하는 정인처럼 꽃과 잎이 사무치도록 그리워한다고 해서 꽃무릇을 붉노랑상사화라고도 한다. 흔히 상사화(相思花)라고도 부르지만 연분홍색 ‘상사화(相思花)’는 엄연히 다른 식물이다.

‘아직 한 번도 당신을 직접 뵙진 못했군요 / 기다림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를 / 기다려보지 못한 이들은 잘 모릅니다 // 좋아하면서도 만나지 못하고 / 서로 어긋나는 안타까움을 / 어긋나보지 않은 이들은 잘 모릅니다 // 날마다 그리움으로 길어진 꽃술 / 내 분홍빛 애틋한 사랑은 / 언제까지 홀로여야 할까요 // 오랜 세월 침묵 속에서 / 나는 당신께 말하는 법을 배웠고 / 어둠 속에서 / 위로 없이도 신뢰하는 법을 익혀왔습니다 // 죽어서라도 꼭 당신을 만나야지요 / 사랑은 죽음보다 강함을 / 오늘은 어제보다 더욱 믿으니까요’

이해인의 시 ‘상사화(相思花)’다 .

여름꽃인 상사화는 봄에 일찍 잎이 나오는데 5~6월 고온기에 잎이 없어졌다가 칠월칠석 무렵인 8월 분홍색 꽃이 피고, 꽃이 진후 다음해까지 잎 없이 월동한다. 가을꽃인 꽃무릇은 9월 하순부터 10월 중순까지 붉은색 꽃이 피고, 10월중순 꽃이 진 후에 잎이 나와 겨울에 푸른 잎을 간직하고 월동한 후 5월경 고온이 되면 잎이 없어진다. 상사화 잎은 군자란처럼 넓고 길지만 꽃무릇은 난처럼 좁고 짧다. 꽃피는 시기도 다르고 꽃색도 다르고 잎 형태도 다르다. 잎은 줄기가 없이 땅에서 바로 나오는 특징은 같다. 수선화과 가족이지만 특성과 형태가 판이하게 다른 종이다.

상사화는 연분홍에 여리여리한 느낌이고 꽃잎이 얇은 나리꽃을 닮았다. 꽃무릇은 꽃색이 붉고 매우 정열적인 느낌이며, 꽃술이 상사화보다 길게 나있다. 빨갛게 멍든 꽃잎과 여인의 속눈썹처럼 긴 꽃술이 가녀린 꽃대에 의지해 하늘거린다.

공통점은 바로 꽃이 필 때 잎 없이 꽃이 먼저 핀다는 점이다. 잎이 있을 때는 꽃이 없고 꽃이 필 때는 잎이 없어져, 꽃과 잎이 서로 그리워한다고 해 상사화란 꽃이름이 만들어졌다. 꽃무릇 역시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않는 점에서 닮았다. 둘다 상사화속으로 수선화과이며 속명은 리코리스(Lycris)다. 리코리스는 ‘바다의 여신’이다. 꽃무릇은 붉은 물결이 넘실대는 ‘꽃바다’라는 의미로 읽힌다.

‘상사화’는 꽃과 잎이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에 근거해 지어낸 말이지만 선운사 꽃무릇에는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전해온다. 선운사 스님을 짝사랑하던 여인이 상사병에 걸려 죽었고 이듬해 그 무덤에서 꽃이 피어났다고 한다.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상징하는 이 꽃에 상사화라는 이름을 붙인 까닭이다. 꽃무릇의 꽃말이 ‘이룰 수 없는 사랑’‘슬픈 추억’인 이유다. 꽃무릇의 또다른 꽃말은 봄에 꽃을 피우기 위해 잎이 추운 겨울을 견디어 헌신한다는 의미에서 ‘참사랑’이기도 하다.‘상사화’ 꽃말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꽃무릇은 동북아가 서식지로 우리나라가 원산지이기도 하다. 개화기가 되면 잎 없이 긴 줄기 같은 꽃대가 나오면서 꽃만 홀로 핀다. 꽃대는 30∼60㎝로, 끝에 꽃이 5∼6개 정도 핀다. 멀리서 보면 마치 큰 꽃 하나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따로 피어서 하나가 된다. 꽃잎의 길이는 4∼5㎝이고 뒤로 말린 모습을 하고 있다. 수술은 6개,암술은 1개로 꽃 밖으로 나와 있는 형태다.암수술이 따로 존재하지만 열매를 맺지는 않는 구근식물이다.

꽃색깔이 용암이나 지옥불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지옥꽃,죽음의 꽃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죽음의 꽃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꽃무릇의 알뿌리는 약용으로도 사용하지만 유독성을 갖고 있어 잘못 사용했다가는 독성으로 인해 죽음에 이르기도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서양에서는 꽃의 형상을 보고 거미를 떠올려 ‘붉은 거미 백합(Red Spider Lily)’으로 부르기도 한다.

꽃무릇 명소는 전북 고창 선운산과 전남 영광 불갑산, 전남 함평의 모악산 주변 산자락과 산사 주변이 대표적이다. 서울에서 꽃무릇 정취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은 성북동 길상사이다. 무소유를 몸소 실천한 법정 스님 법향을 느낄 수 있다.

요즘은 경남 남해, 충남 보령 등 웬만한 지자체마다 수만, 수십만 그루 꽃무릇을 식재해 가을 축제를 열고 있어 단풍철에 앞서 꽃무릇으로 꽃멀미를 하게 만든다.

중국 일본 등이 원산지인 꽃무릇이 산사 주변에 많은 까닭은 불경을 책으로 엮거나 탱화를 그릴 때 알뿌리의 알칼로이드 성분을 섞으면 좀이 슬거나 변색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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