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만 분의 1 뚫은 '미스터 앨버트로스'
문경준은 9월 17일 제주 블랙스톤CC(파72·7385야드)에서 열린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코리안투어 비즈플레이 전자신문 오픈 2라운드에서 짜릿한 경험을 했다. 이날 17번 홀(파5·574야드)에서 앨버트로스를 기록하며 단숨에 3타를 줄였다. 테일러메이드 스텔스 3번 우드(15도)로 티샷한 공을 292.2야드 보낸 뒤 핀까지 260야드를 남기고 핑 425 19도 유틸리티로 한 두 번째 샷이 컵으로 빨려 들어갔다. 문경준은 "(세컨드 샷의) 첫 바운드를 보고 핀에 붙겠다고 생각했는데 공이 사라졌다. 앞서 두 번의 앨버트로스 때는 공이 들어가는 걸 직접 못 봤는데 이번엔 목격할 수 있었다. 눈이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옆바람이 부는 상황이라 클럽 선택에 고심했는데 운 좋게 뒤에서 바람이 불 때 샷을 해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진기록 달성에 따라 상금 500만 원을 특별상으로 받았다.
KPGA 11차례, KLPGA투어 6번 앨버트로스 불과
KPGA에 따르면 역대 코리안투어에서 앨버트로스는 11차례만 나온 희귀한 기록이다. 홀인원은 149개가 기록됐다. 앨버트로스는 장타에 정확성을 겸비해야 하고 행운까지 겹쳐야 가능해 '신의 선물'로도 불린다.
코리안투어에서 1호 앨버트로스는 최근 지도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허석호가 2002년 안산 제일CC에서 열린 제20회 신한동해오픈에서 신고했다. 신한동해오픈은 올해를 비롯해 과거 3차례 앨버트로스가 나온 최다 배출 대회다.
흔히 홀인원을 하면 3년 동안 재수가 좋다는 말이 있다. 그럼 홀인원보다 어렵다는 앨버트로스는 어떨까. 코다는 정규대회에서 처음 앨버트로스를 한 뒤 일이 술술 풀렸다. 앨버트로스 이후 출전한 2018년 LPGA투어 스윙잉 스커츠 타이완 챔피언십에서 정상에 올랐다. 자신의 LPGA투어 첫 승이었다. 지난해에는 도쿄올림픽 여자 골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다. 그는 언니 제시카 코다와 자매 골프 스타로도 유명하다.
KLPGA투어에서 역대 앨버트로스 기록은 6번에 불과하다. 첫 번째 주인공은 박성자로 1995년 9월 29일 용인 88CC에서 열린 제1회 제일모직 로즈여자오픈에서 작성했다. 앨버트로스를 기록한 6명의 선수 가운데 해당 대회에서 우승한 경우는 한 번도 없다. '핫식스' 이정은은 2020년 아이에스동서오픈 1라운드에서 앨버트로스를 기록하며 66타를 쳤으나 2라운드에서 77타로 무너져 컷 탈락하기도 했다. 홀인원은 1978년 KLPGA 출범 후 9월 22일 현재 343개가 기록됐다.
장하나는 LPGA투어에서 새로운 역사를 쓴 적이 있다. 2016년 LPGA투어 시즌 개막전인 바하마 클래식 3라운드 8번 홀(파4·218야드)에서 티샷한 공이 그대로 컵으로 빨려 들어갔다. 1950년 출범한 LPGA투어 사상 최초의 파4 홀인원이었다. 단번에 3타를 줄인 앨버트로스(더블이글)였다. 장하나는 그린에 올라 큰절까지 하며 환호했다. 이 대회 우승 트로피는 김효주에게 돌아갔다. 호주 교포 이민지는 LPGA 2호 파4 홀인원 주인공이다. 2016년 KIA클래식 3라운드 16번 홀(파4·275야드)에서 5번 우드로 티샷한 공이 그린 바로 밖에 떨어진 뒤 왼쪽으로 내리막을 타더니 홀인원이 됐다. 파3홀에서도 해본 적 없는 홀인원을 파4홀에서 하며 앨버트로스를 기록한 것이다.
장하나, LPGA투어 사상 최초 파4 홀인원
미국프로골프협회(PGA) 투어에서 파4 홀인원은 딱 한 번 작성됐을 뿐이다. 2001년 피닉스오픈에서 앤드루 머기가 332야드짜리 17번 홀(파4)에서 홀인원을 기록했다. 국내에서는 아직 파4 홀인원이 기록된 바 없다.‘명인 열전'이라는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마스터스는 4명에게만 앨버트로스를 허락했다. 이 중 우승까지 한 경우는 1935년 첫 주인공 진 세러즌뿐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대회 장소인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내셔널GC에는 그의 이름을 딴 다리도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인 유승민(40) 대한탁구협회 회장은 6월 생애 첫 앨버트로스를 기록하는 황홀한 체험을 했다. 유 회장은 제주 서귀포시 우리들CC(대표 이유성) 남코스 17번 홀(파5)에서 드라이버 티샷을 한 뒤 175m를 남겨둔 상황에서 타이틀리스트 5번 아이언으로 한 세컨드 샷이 홀로 빨려 들어갔다.
당시 유 회장과 동반했던 조장현 우리들CC 부사장은 "451m 파5홀인데 화이트티가 조금 앞쪽으로 당겨진 상황이라 드라이버가 잘 맞으면 2온이 가능했다. 유 회장이 마지막으로 세컨드 샷을 했는데 완전히 핀을 향해 날아갔다. 그린에 올라간 뒤 공이 안 보여 확인하니 컵 안에 있어 다들 놀랐다. 30년 구력에 앨버트로스는 처음 봤다"고 놀라워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탁구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유 회장은 은퇴 후 2015년 골프를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제주 나인브릿지에서 홀인원을 낚기도 해다. 그리 길지 않은 구력에도 앨버트로스 1회, 홀인원 1회에 이글도 3차례나 해 주위의 부러움을 살 정도다.
골프는 새를 잡는 쾌감을 느끼는 운동이라고도 한다. 날개를 펴면 그 길이가 4m에 이르러 바다를 건넌다는 앨버트로스는 신천옹으로 불린다. 기준 타수보다 더 적게 치는 버디(어린 새)만 해도 흥분하기 마련이다. 이글은 -2타이고 콘도르(-4타), 오스트리치(타조·-5타)도 있다.
새와 인연이 깊은 문경준은 고교 1학년까지 테니스 선수로 활약하다 대학교 2학년 때 교양과목으로 뒤늦게 골프를 접했다. 그의 세 아들은 말레이시아에서 유학하고 있다. 기러기 아빠냐는 질문에 그는 "비둘기 아빠"라며 웃었다. 기러기보다 자주 만난다는 의미.
문경준은 코리안투어에서 4년 넘게 명맥이 끊긴 40대 챔피언을 노리고 있다. 황인춘(당시 43세)이 2017년 10월 현대해상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에서 4차 연장전 끝에 우승한 뒤 40세 이상 우승자가 나오지 않고 있다.
문경준은 지난해 아프리카 앨버트로스 이후 코리안투어 KB금융 리브챔피언십에서 6년 69개 대회 만에 개인 통산 두 번째 타이틀을 안았다. 이번에는 과연 어떨까. 앨버트로스의 큰 날개를 타고 다시 훨훨 날 수 있을까.
김종석 부장은…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동아일보 스포츠부장을 역임한 골프 전문기자다. 1998년부터 골프를 담당했고 농구, 야구, 테니스, 배드민턴 등 주요 종목을 두루 취재했다.
김종석 채널A 성장동력센터 부장 (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kjs0123@donga.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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