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보도, 기업홍보하거나 극단적 이상기후 치중하거나
[민언련 신문방송 모니터 보고서] 기사형 광고, 기후악당도 기후천사로… 'RE100'도 삼성이 하니 대대적 보도
[미디어오늘 민주언론시민연합]
8월8일, 상당수 언론이 '물폭탄'이라는 표현까지 쓸 정도로 수도권에 폭우가 내리며 곳곳에 인명 및 침수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이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한반도에 상륙한 태풍 힌남노 역시 많은 양의 비를 뿌리며 곳곳에 피해를 입혔는데, 특히 경북 포항지역 피해가 컸습니다. 포항제철소가 설립 이후 처음 침수로 가동이 중단되었고,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침수되며 주민 7명이 사망했습니다.
힌남노가 지나간 후에도 1주일 사이 3개의 태풍이 생겨났고, 그중 14호 태풍 난마돌이 한반도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측되며 언론도 촉각을 곤두세웠습니다. 대다수 기상전문가는 예년보다 수온이 1~2도가량 높아지며 따뜻해진 바다가 짧은 기간 여러 개의 위력적인 태풍을 만든 원인이 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즉, 기후위기는 더 이상 남의 일이나 먼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계기후행동의 날 : 재난보도 못지않게 중요한 심층보도
이처럼 한반도에서도 기후위기로 인한 집중호우와 위력적인 태풍이 이어지는 상황에서는 재난상황을 신속히 전하고 피해예방과 복구에 도움을 주는 보도 못지않게 기후위기 원인과 대응방법, 해결책을 짚는 심층보도가 중요합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기후위기대응의 시급성을 강조하며 대응 강화를 촉구하는 9월24일 세계기후행동의 날을 맞아 언론이 기후위기에 대한 심층보도를 충분히 하고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신문은 9월13일부터 19일까지 1주일간 '기후'가 포함된 6개 종합일간지와 2개 경제일간지 지면기사를 전수분석했습니다. 방송은 같은 기간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기후'로 검색했을 때 나온 KBS, MBC, SBS 등 지상파3사와 JTBC, TV조선, 채널A, MBN 등 종편4사, YTN, 연합뉴스TV 등 보도전문채널2사 보도를 전수분석했습니다.
보도주제는 5가지로 분류했는데요.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나 관련 통계자료를 소개하는 보도는 '기후위기현황', 기후위기대응을 소개하거나 촉구하는 보도는 '기후위기대응', 특정 기업의 기후위기대응을 조명해 사실상 기업홍보에 가까운 보도는 '기업홍보', 기후위기 관련 행사를 소개하는 보도는 '기후위기행사'로 분류했습니다. 보도에 단순히 '기후'라는 단어를 포함하고 있을 뿐 기후위기와 관련성이 적거나 없는 보도는 '기타'로 분류했습니다.
'기후악당'도 '기후천사'로 만들어주는 기사형 광고?
신문의 경우, 해당 기간 검색된 총 214건의 기사 중 광고이거나 기후와 연관 없는 37건을 제외한 177건 중 기후변화, 기후대응, 기후위기와 관련성이 낮은 기사 104건을 제외해 총 모니터링 대상은 73건입니다. 73건 중 기타로 분류된 기사가 24건으로 가장 많았고 기업홍보가 21건으로 다음 순서를 차지했습니다. 기후위기현황이 14건, 기후위기대응이 10건, 9월24일 열리는 '기후정의행진'을 다룬 기후위기 행사가 4건으로 그 뒤를 이었습니다.
비록 짧은 기간 모니터링이지만 특정 기업의 친환경 사업 관련 내용을 다룬 기사가 많은 점과 기후변화에 어떻게 대응할지 논의를 이끄는 것보다 기후위기 현주소를 알려주는 기사가 더 많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기업홍보로 분류된 기사가 많은 이유는 모니터링 대상에 경제일간지 매일경제와 한국경제가 포함돼 이들이 일반적으로 재계산업계 동향을 알리는 보도를 많이 한 것과 조선일보가 모니터링 기간 중 9월 13일 '에너지 안보 시대' 특집면을 발행해 에너지 위기를 극복하려는 기업들의 자체 소개 기사를 다수 실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조선일보의 해당 특집면은 '애드버토리얼 섹션 Advertorial section' 즉 기사형 광고를 위한 지면입니다. SK이노베이션, 현대제철, 포스코에너지 등 기업이 '친환경 에너지 회사로 거듭나겠다', '탄소 중립 선도하겠다' 등의 내용으로 조선일보 지면에 기사형 광고를 실었습니다. 모니터링 대상이 된 기사 중 하나는 <광양 LNG 터미널 증설 추진… 수소 발전 신생태계 구축>(9월13일 최연진 기자)으로 “국내 최초최대 민간 발전사”인 포스코에너지가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한 가교 역할로 LNG가 주목받고 있”어 “LNG 밸류체인 확대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또한 “외부 전문 기업과 사업 협력을 통해 신규 신재생에너지 사업 개발도 적극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라는 내용도 담겨 있습니다.
9월1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민의힘 임이자 의원이 환경부로부터 받은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대상 기업 배출량'을 살펴보면 최근 5년간 우리나라에서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한 기업은 포스코입니다. 철강 산업은 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산업 중 하나인데요. 포스코가 배출한 온실가스는 우리나라 전체 배출량의 10%에 달했습니다. 포스코 계열사 포스코에너지는 국내 마지막 석탄화력발전소(삼척블루파워) 건설을 추진 중이라 환경단체 등으로부터 '기후악당'이라 불리기도 하는데요. 이러한 내용은 조선일보의 기사형 광고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기업홍보' 치중한 조선일보매일경제한국경제
신문사별로 가장 많이 보도한 주제는 무엇일까요. 경향신문은 기후위기현황을, 한국일보는 기후위기대응 및 기타를 가장 많이 보도했습니다. 한겨레는 기타를 제외하곤 기후위기현황이 다음으로 많이 보도한 주제입니다. 조선일보와 매일경제, 한국경제는 기후 관련 보도 중 기업홍보성 내용을 가장 많이 보도했습니다. 조선일보는 전체 9건 중 7건이 기업홍보 내용이고, 기후위기현황을 소개하거나 기후위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알려준 기사는 없습니다. 매일경제 또한 7건 중 5건이, 한국경제는 6건 중 3건이 기업홍보 관련 내용입니다. 9월24일로 예정된 기후정의행동을 소개한 신문사는 경향신문과 한겨레밖에 없습니다.
삼성전자 홍보에 그쳐서야… 재생에너지 공급대책 정부에 요구해야
한편 모니터링 기간 삼성전자가 '혁신기술'을 통해 기후위기 문제를 풀겠다며 '신환경경영전략'을 발표했는데 이로 인해 기업홍보로 분류된 보도가 늘었습니다. 기업홍보로 분류된 21건 중 10건이 삼성전자의 경영전략을 소개하는 내용인데요. 세계에서 가장 전기를 많이 쓰는 IT 제조기업 삼성전자가 2050년까지 탄소 배출을 0으로 만들겠다는 '탄소중립(Net zero)'과 함께 삼성전자가 쓰는 전기를 100% 재생에너지 전기로 바꾸겠다며 'RE100' 가입을 선언한 점은 전향적인 변화이기 때문에 충분히 보도할 만하다고 볼 수 있는데요. 단순히 삼성전자의 친환경 선언을 옮겨준 보도도 있고, 아쉬운 부분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함께 전한 보도도 있습니다.
한국경제 <삼성전자의 7조 신환경경영 “차 800만대 탄소감축 효과”>(9월16일 박신영 기자)는 삼성전자의 경영전략을 칭찬하는 내용으로 채워졌으며 며칠 뒤 칼럼 <시론-기후위기, 결국 기술로 풀어야 한다>(9월19일 유승직 숙명여대 기후환경융합학과 교수)는 삼성전자 선언의 의미를 높이 평가하며 정부의 재생에너지 관련 정책 정비를 요구했습니다.
한국경제 칼럼이 추상적으로 정부에 재생에너지 조달 여건 개선을 요구했다면, 한겨레 <삼성도 '탈탄소' 하는데, 정부만 재생에너지 축소 '역주행'>(9월16일 김규남 기자)은 자세한 현황을 들어 국제 추세와 반대로 가는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정책을 비판했습니다. 한겨레는 삼성전자가 '국내 재생에너지 공급 여건이 열악하다'는 근거를 들어 “국내 사업장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할 시점을 2050년으로 '멀리' 잡았다”며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이런 국제적 추세와 기업들의 요구와 반대되는 길을 걷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정부가 8월 말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을 공개했는데 신재생에너지 발전비중 목표를 21.5%로 제시한 게 지난해 확정한 '2030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의 목표치에서 후퇴한 수준이라는 지적을 덧붙였습니다.
2021년 기준 국내 주요 기업 온실가스 배출량 3위를 기록한 삼성전자가 지금이라도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전향적으로 나선 것은 분명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를 홍보하는 식의 보도만으로는 기후위기대응도, 삼성전자 친환경 경영을 적극 이끌어내는 데는 부족합니다. 국내 재생에너지 공급 부족에 대한 대책 마련을 정부에 요구하고,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투자를 늘릴 수 있도록 언론이 관련 보도에 힘써야 합니다.
1주일간 기후위기 방송보도 36.5건… 대부분이상기후 소개
방송의 경우, 9월13일부터 19일까지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기후'로 검색했을 때 나온 보도건수는 총 83.5건입니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기타' 56.3%(47건)입니다. '기후'라는 단어가 포함된 방송보도 중 약 60%가 진짜 기후위기 보도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기타'를 제외한 보도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기후위기현황' 15건(18.0%)인데요.
현황을 바탕으로 기후위기를 깊이 있게 진단하는 보도는 없었으며, 기후위기로 인한 세계 곳곳의 극단적 이상기후를 소개하는 데 그쳤습니다. KBS는 <이탈리아 중부 폭우… 10명 사망4명 실종>(9월1일 유원중 특파원)에서 이탈리아 집중 호우를 보도했는데요. “넉 달 치 내릴 비가 불과 3~4시간 만에 내렸다”, “물 폭탄을 맞은 마을은 큰 피해”라며 이상기후로 인한 현지 피해상황을 전달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2020년 한국언론학보에 실린 논문 「해석수준과 대응수준이 기후변화 대응행동 의도에 미치는 영향」에서는 “사람들은 기후변화가 지리적으로 먼 곳에서 발생하고 있고, 시간적으로 미래의 일이며, 사회적으로 자신과 관련이 없는 사람들에게 발생하고 있다고 느낀다”, “사건 또는 대상에 대한 설명 수준을 구체적이고 맥락적으로 제시하는 경우 심리적 거리를 가깝게 느낄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를 통해 시민들이 기후위기를 먼 일이나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문제, '우리'의 문제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언론이 기후위기현황을 단편적으로 제시할 게 아니라 그에 얽힌 맥락을 구체적으로 풀어내 심층 보도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RE100 가입, SK는 보도 않더니 삼성은 채널A 빼고 모두 보도
'기후위기현황' 다음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한 주제는 '기업홍보' 12.5건(15.0%)이었는데요. 채널A를 빼고 모두 '삼성의 RE100 가입'을 보도했습니다. RE100은 기업이 쓰는 전기를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하자는 것으로 국내에서는 SK와 LG 일부 계열사가 참여 중인데요. 삼성은 9월15일 RE100 가입을 선언하며 2050년까지 사용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전력소비량이 많은 삼성에서 RE100 가입을 선언했으니 충분히 주목하고 보도할 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2년 전 SK가 국내 최초로 RE100에 가입했을 때 MBN을 제외한 어떤 방송에서도 해당 소식을 보도하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채널A를 제외한 모든 방송사가 삼성의 RE100 가입을 보도한 것에 의아함이 남습니다.
'기후위기대응' 보도는 9건(11.5%)에 불과했습니다. KBS(5건), MBC(3건), JTBC(1건)입니다. KBS와 JTBC는 이상기후 때문에 벌어질 피해 예방과 복구에 도움이 되는 기술과 대비책을 설명하고 부족한 대응을 지적하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 반면, MBC는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선제적 대응을 강조하는 <플라스틱 없는 세상 가능한가?> 기획보도를 냈습니다. 기후위기 원인 '탄소배출'의 주범으로 꼽히는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한 소비자, 기업, 정부 역할에 주목한 것인데요. 소비자 노력과 인식개선만으로 플라스틱을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으며, 기업과 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줬습니다. TV조선과 채널A에서는 기후위기현황과 대응 보도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대응도 중요하지만 기후위기 근본 해결책 보도 절실
플래닛타임즈 <지구 온도 상승 1.5도가 의미하는 것>(4월26일 김선주 기자)에 따르면, “기후 위기에 맞서 과학자들이 가장 바람직한 대응책으로 꼽는 것이 바로 '1.5도 이내' 시나리오”인데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 수준보다 1.5도 높아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는 기록적인 폭염과 폭우는 기후위기가 원인입니다. 기후위기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평균기온 상승으로 인해 초래된 것이죠.
따라서 기록적인 폭염과 폭우를 예상해 피해를 예방하고 복구하는 것 못지않게 지구 온도 상승 자체를 막을 탄소 배출량 감소가 어느 때보다 절실합니다. 언론이 기후위기로 인한 자연재난 피해를 대비하는 보도만큼이나 기후위기의 근본원인을 해결할 수 있는 보도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것인데요. 그러나 언론의 기후위기대응 보도는 원인 해결보다는 기후위기로 불거진 폭염과 폭우로 인한 피해를 예방하거나 복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어 아쉬움을 낳고 있습니다.
- 모니터 대상 : 2022년 9월13~19일 '기후'가 포함된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기사 전체 /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기후'로 검색한 KBS, MBC, SBS, JTBC, TV조선, 채널A, MBN, YTN, 연합뉴스TV 방송보도 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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