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말이에 피노 누아르 어때? 제법 잘 어울려 [ESC]

한겨레 2022. 9. 24.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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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솔푸드 분식과 와인의 만남
매운 떡볶이엔 달콤한 향 진판델
순대엔 오크향 묵직한 샤르도네를
지난 16일 부산 해운대구 분식점 ‘김밥라면시대’에서 열린 ‘캘와 분식 바’에 캘리포니아산 와인, 튀김과 떡볶이가 나란히 놓여 있다. 백문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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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은 비싸고 마시기 번거로운 술이란 편견이 옛말이 된 지 오래다. 관세청 통계를 살펴보면 2019년 2억5925만달러였던 와인 수입액은 2021년 5억5981만달러로 2배 이상 늘었다. 그만큼 접근성도 좋아지고 대중화했다는 말. 와인과 함께 먹는 음식의 저변도 넓어졌다.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의 고급 음식뿐 아니라 전이나 나물 같은 한식, 떡볶이나 순대 같은 분식과의 페어링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지난 16~18일 부산에서 열린 ‘캘와 분식 바’는 한국인의 솔푸드이자 언제 어디서나 편히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분식과 캘리포니아 와인을 함께 즐기자는 취지에서 열린 행사다. 해운대 전통시장 내에 위치한 오래된 분식집에서 김밥과 떡볶이, 순대, 튀김, 어묵 등과 함께 캘리포니아 와인이 만났다.

LA와 닮은 부산에서 분식과 와인을

그런데 왜 부산이었을까? 서울에서도, 지방 어느 도시에서도 가장 흔한 음식이 바로 분식 아닌가. 미국에서 와인이 가장 많이 생산되는 도시인 로스앤젤레스(LA)는 바다와 내륙이 조화한 특유의 분위기가 부산과 공통적이다. 로스앤젤레스는 미국 내에서 한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도시이기도 해서, 쉽게 한국 분식을 만날 수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캘리포니아와인협회 북아시아 및 오스트랄라시아 지역 공동대표인 히로 테지마는 “로스앤젤레스의 자매 도시인 부산은 한국에서도 무척 특별한 곳”이라고 말했다. 국내에 수입되는 미국 와인 가운데 대다수가 캘리포니아 지역 와인이 차지한다는 점도 중요한 포인트다. 한국인에게 가장 친근한 미국 와인이, 한국인이 친근하게 느끼는 음식과 만난 셈이다.

와인의 풍성한 과실향은 분식의 자극적인 맛을 잘 잡아준다. 백문영 객원기자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맛. 분식과 와인의 조화는 어떨까? 떡볶이와 같은 자극적인 음식에 와인의 맛과 향이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은 기우였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와인전문교육기관 이인순 와인랩의 이인순 대표는 “타닌의 떫은맛과 떡볶이의 매운맛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고 평했다. “잘 익은 과일 향을 머금은 진판델이나 메를로 품종으로 만든 레드 와인을 살짝 낮은 온도로 맞춰, 떡볶이와 매칭해보라”는 말대로 떡볶이와 와인을 한입씩 차례로 먹고 마셔 보니 떡볶이의 매콤한 맛에 와인의 풍성한 과일 향이 착 감기는 느낌이었다.

‘한국식 샤르퀴트리’ 순대는 말할 필요 없이 와인과 가장 매칭하기 좋은 음식이기도 하다. ‘고기에 레드 와인’ 같은 흔한 공식 대신 오크 숙성을 한 풍부한 맛의 샤르도네와 매칭해보자. 묵직한 오크향이 순대, 간과 허파 등 다양한 부속 부위를 한층 고급스럽게 만들어준다. 튀김 역시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편하게 먹는 음식인데, 김말이나 오징어튀김 등 가벼운 맛의 튀김에는 상큼한 산미를 지닌 소비뇽 블랑이나 톡톡 탄산이 튀는 스파클링 와인이 잘 어울렸다. 이 대표는 “김말이를 떡볶이 소스에 푹 찍어 차갑게 준비한 피노누아르를 매칭하면 아주 특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식 깨고 다양하게 페어링해보자

분식과 와인의 만남에 일반 소비자들의 반응도 열광적이었다. 이날 행사가 열린 분식점 ‘김밥라면시대’의 오랜 단골이라고 소개한 장하나(23)씨는 “학창 시절부터 즐겨 먹던 분식에 와인을 곁들여 먹는 경험이 즐겁고 신선하다”고 평가했다. 와인은 어려운 술이란 편견도 어느 정도 깨진 듯했다. 장씨는 “와인을 막걸리 마시듯 쉽고 편하게 마실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을 하게 됐다”고도 말했다. 김종문 김밥라면시대 대표 역시 “20년간 분식점을 운영하면서 해보지 못했던 특별한 경험”이라며 “손님 반응이 아주 호의적이라 앞으로 한두병씩 판매해볼 생각”이라고 포부를 내비쳤다.

와인도 어차피 술이고, 술은 즐겁자고 마시는 것 아닌가. ‘와인은 꼭 이래야 한다’는 틀을 깨고, 열린 마음으로 와인을 대하는 유연성이야말로 지금 같은 다양성의 시대에 꼭 필요한 태도다. 일상생활에서 편하게 즐기는 라이프스타일의 한 방식으로 와인이 스며들고 있다는 걸 다양한 분식과 와인을 페어링하며 확인했다.

풍요로운 햇살을 받고 자란 캘리포니아산 포도로 만든 와인은 볶고, 찌고, 튀긴 다양한 분식의 맛을 한층 더 풍성하고 화려하게 만든다. 이인순 와인랩의 이인순 대표에게 시중에서 구하기 쉬운 캘리포니아 와인 페어링을 추천받았다.

떡볶이엔 달콤한 진판델을 매운맛을 중화할 수 있는 살짝 단맛이 나는 로제 와인이 잘 어울린다. 달콤하고 크리미한 딸기와 멜론 향이 특징인 ‘서터 홈 화이트 진판델’ 로제 와인을 추천한다. 새콤달콤한 맛에 바닐라의 부드러운 풍미가 매콤달콤한 맛의 떡볶이와 훌륭한 조화를 이룬다.

순대엔 과실 향 짙은 메를로 분식집 특유의 당면 순대에는 가벼운 메를로나 카베르네 소비뇽 품종의 레드 와인을 추천한다. 대체적으로 타닌이 너무 강하지 않은 레드 와인인 ‘본테라 오가닉 이스테이트 메를로’를 매칭해보자. 블루베리, 자두 같은 싱그러운 과실 향이 살짝 비릿할 수 있는 순대의 고기 향을 훌륭하게 뒷받침해준다.

튀김엔 산미 있는 소비뇽 블랑을​ 튀김의 기름진 맛을 잡아주려면 산미가 있는 와인이 좋겠다. 주변에서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와인으로는 ‘캔달잭슨 빈트너스 리저브 소비뇽 블랑’이 있다. 잘 익은 배와 신선한 레몬 향이 갓 튀긴 튀김과 아주 잘 어울린다. 튀김을 떡볶이 소스에 찍어 먹어도 좋지만, 와인과 함께라면 아무 양념을 더하지 않아도 괜찮다.

김밥엔 깔끔한 로제나 화이트!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의 풍미를 모두 가진 로제 와인 또는 상큼한 향의 화이트 와인이 어울린다. 고기, 채소, 달걀 등 다양한 속재료가 들어가는 음식인 만큼, 오히려 와인과의 페어링이 쉽지 않을 수 있으니 신중하게 와인을 고를 것. 잘 익은 열대 과일의 풍미에 깔끔하고 딱 떨어지는 산미를 가진 ‘베린저 파운더스 샤르도네’를 추천한다.

백문영 객원기자 moonyoungbai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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