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앞둔 F1 통산 4회 챔피언, 그가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이유
세계 최대 자동차 경주 대회 F1(포뮬러1) 팬들에게는 선수들의 출근길도 하나의 재밋거리다. 레이스가 열릴 때마다 서킷 주변에는 선수들이 메르세데스-벤츠, 페라리, 맥라렌, 애스턴 마틴 등의 최고급 스포츠카를 타고 경기장에 출근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팬들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팬들은 선수들의 이름을 연호하고 선수들은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들며 화답한다.
그러나 F1 통산 4회 월드 챔피언에 빛나는 제바스티안 페텔(35·독일·애스턴 마틴)의 출근길 모습은 이와 다르다. 그는 항상 자전거를 타고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낸다. 선글라스를 낀 채 백팩을 둘러메고 자전거를 타는 모습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엔 천둥번개가 치는 악천후 속에서도 자전거를 타고 모습을 드러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올해에만 연봉과 후원 계약을 합쳐 1500만달러(약 211억원)를 받는 것으로 알려진 페텔이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이유는 환경 보호에 있다. 불필요한 자동차 이용을 줄여 탄소 배출을 줄이는데 앞장서겠다는 것이다. 그는 올 시즌을 앞두고 한 인터뷰에서 “교통 정체를 뚫고 20분간 차를 타고 오는 것과 20분 걸려 자전거를 타고 오는 것 중에 선택하라면 난 백번이고 후자를 택하겠다”고 했다.
‘자전거 출근’ 외에도 페텔은 기후 변화와 같은 환경 문제에 큰 관심을 가지고 각종 공식 석상에서 이와 관련된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스위스에 거주하는 그는 오스트리아 등 인접 국가에서 레이스가 열릴 땐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고 직접 운전을 해 이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행기를 어쩔 수 없이 타야하는 대륙 간 이동에 대해서도 페텔은 “가까운 나라에서 열리는 레이스끼리는 연달아 일정을 편성하는 등 비행기 이동을 최소화해 탄소 배출을 줄이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말 뿐이 아니다. 그는 환경 보호를 위한 활동에도 직접 나서고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처음으로 관중이 입장한 지난해 영국 그랑프리가 끝난 뒤 페텔은 직접 봉투를 들고 관중석을 돌아다니며 버려진 쓰레기를 수거했고, 올해 오스트리아 그랑프리를 앞두고는 지역 학생들과 함께 개체 수가 줄어들고 있는 꿀벌을 보호하는 ‘꿀벌 호텔’을 짓는 봉사 활동을 하기도 했다.
올해 6월 캐나다 그랑프리 때는 캐나다 앨버타주가 석유 추출을 위해 산림을 훼손한 일을 비판하기 위해 ‘캐나다의 기후 범죄’라고 적힌 옷을 입고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앨버타 주정부는 “페텔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탄소를 배출하는 사우디 석유 회사의 후원을 받는 애스턴 마틴 팀의 F1 드라이버”라며 그의 지적이 위선적이라고 비판했는데, 페텔은 이에 대해 “내가 위선적이라는 지적은 맞을 수 있다. 그러나 이건 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더 큰 차원의 문제”라고 반박했다.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기로 한 페텔의 결심에도 환경 문제가 영향을 미쳤다. 페텔은 지난 4일 미국 CNN과의 인터뷰에서 “나이도 많이 들었고 아이들도 은퇴 결정에 영향을 끼쳤지만, 기후 변화 문제도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동차 경주를 하는 내 직업에 의문을 품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인터뷰에서 “F1이 천문학적인 돈을 벌고 있는데, 관중들이 경기장에 차를 가져오지 않도록 대체 교통 수단을 마련하는 등 환경 보호 활동에 돈을 투자할 필요가 있으며 환경 오염을 줄일 수 있도록 경주 차량의 설계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F1은 2026년 도입을 목표로 친환경 연료를 사용해 탄소 배출을 줄이면서도 현재와 같은 차량 출력과 속도를 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페텔은 경주 산업 전체와 레이싱 팬들의 인식이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누군가는 겨울을 앞두고 각종 요금을 내지 못해 얼어죽을 걱정을 하고 있을 때 우리는 연료를 태우며 경주를 한다. 우리가 하는 일을 되돌아보고 변화를 줘 약간의 편안함을 포기할 줄 알아야한다”고 했다.
페텔이 은퇴를 하기도 전에 이미 그가 F1 팀들로부터 비(非)선수직을 제안받고 있다는 루머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환경 보호 활동해 앞장서 온 ‘4회 챔피언’ 페텔이 F1계를 완전히 떠날지, 아니면 F1 산업에 남아 변화를 이끌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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