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 못 구하니 가정파탄 날 지경"

강다은 기자 2022. 9. 24.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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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로구 대림역 인근 휴대폰 가게에서 직원을 구하는 문구가 붙어있다. 코로나 거리두기가 풀리고 인건비가 올라가며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자영업자들이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고운호 기자

서울 송파구에서 한식집을 운영하는 이모(56)씨는 최근 두 딸, 아내와 함께 가게를 운영하며 매일 가족들과 다투고 있다. 2020년 초까지만 해도 직원 4명과 함께 일하던 이씨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자 직원 3명을 해고하고 주방 보조 직원 1명과 아내와만 일해왔다. 지난 4월 사회적 거리 두기 조치가 전면 해제되고 아르바이트(알바)생을 더 채용하려 했으나, 알바 공고를 올린 지 한 달이 넘도록 지원자가 없자 딸 두 명이 일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딸들이 약속이 있어 갑자기 일을 못 간다고 하거나, 손님들 응대하는 방식에서도 의견이 달라 서로에게 짜증을 내는 경우가 잦다고 한다. 이씨는 “어려운 때에 딸들이 도와줘 고맙다”면서도 “사사건건 가족들과 부딪히다 보니 시급을 더 올려주더라도 직원들 뽑아 쓰고 싶다”고 했다.

직원을 고용하는 대신 가족과 함께 일을 하는 자영업자들이 늘어나면서 “장사하다 가족 갈등만 커진다”는 자영업자들의 호소가 잇따르고 있다. 최근 ‘긱 워커’ 증가, 외국인 근로자 공급 부족 등으로 극심한 구인난이 지속되면서 홀로 일하거나 가족 종사자와 함께 일하는 자영업자가 늘었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최근 실시한 소상공인 고용현황 관련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27%가 ‘무급 가족종사자’와 함께 일하고 있다고 답했다. 최저임금 인상과 구인난으로 최근 식당이나 카페 알바생의 시급이 1만 2000원 내외까지 치솟자 인건비 부담으로 적은 임금만 주고 가족을 고용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서로 원치 않는데, 사장과 가족 종사자 모두 ‘어쩔 수 없는’ 동업을 하게 되면서 자영업자 중엔 가족들과 싸우거나 갈등을 빚는 경우가 느는 것이다.

◇ 소상공인 27% 가족과 하는데...구인난에 ‘가족직원’ 늘자 갈등 잇따라

추모(76)씨가 운영하는 서울 종로구의 한 전집도 구인난을 겪다 지난 4월부터 추씨의 조카 3명이 일을 도와주고 있다. 조카들은 왕복 2시간이 더 걸리는 경기도 광명 등에서 출퇴근하며 “너무 멀어 힘들다”며 투덜거리지만, 직원이 부족해 달래가며 일을 시키고 있다. 추씨는 “조카들도 ‘도와달라’는 읍소에 어쩔 수 없이 나오다 보니 다른 직원들보다 쉽게 불만을 표시한다”며 “그래도 직원 구하기가 어려워 어쩔 수 없이 함께 일한다”고 했다. 서울 관악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이모(64)씨도 “딸이 일을 도와주고 있는데, 딸은 ‘배달앱에 광고를 더 해야 한다’고 하고, 나는 ‘그럴 바엔 사람을 한명 더 쓴다’고 하는 식으로 식당 운영에 대해 많이 부딪혔다”고 했다.

◇ “장사하다 가족관계 파탄지경…돈 더 주고 알바 쓰고 싶어요”

자녀들의 가게 일을 도와주는 부모들과 사장들 사이에도 싸움이 잦다고 한다. 서울 강남구 저가커피 매장에도 알바생이 없어 오전 시간 사장인 김모(22)씨와 김씨의 부모님이 일을 함께 한다. 김씨는 “부모님이 가게에 나와있을 땐 내가 직원같다”며 “잔소리가 심해도 창업 당시 2억을 빌려주셨다보니 눈치만 보고 있다”고 했다. 자영업자 온라인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엔 “엄마랑 베이커리를 하는데 둘 다 짜증이 늘고 너무 많이 충돌해 스트레스가 많다. 엄마랑 일을 그만두고, 엄마가 만들던 빵 종류를 앞으론 다른 업체에서 납품받을까 생각중” “설거지 순서, 컴플레인 해결 방법 하나하나 다 부딪힌다” “기분 조금만 나쁘면 무급으로 일하던 부모님이 ‘일 안 도와주겠다’고 협박한다”는 식의 호소가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도 이겨냈지만, 가족과 함께 일하다 최근 갈등이 커져 식당을 정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해결 안 되는 ‘중병’된 구인난…추석 앞두고 직원없어 휴업 선택도

한편 구인난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갑자기 늘어난 알바생 수요 때문에 ‘반짝 현상’일 것이란 예측도 있었으나 늘어나는 청년 지원금, ‘긱 워커’ 인기 등으로 구인난이 장기화되고 있다. 이 때문에 알바생을 못구해 ‘울며 겨자먹기’로 영업시간이나 홀 규모를 줄이는 식당도 많아졌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홍모(54)씨는 지난달 알바생 1명이 일을 그만두자 ‘연중무휴’에서 ‘주5일 영업’으로 영업일수를 줄였다. 홍씨는 “2019년에 비해 알바생 8명 정도가 부족한 상황이라 올해 추석도 처음으로 연휴 전일을 다 쉬었다” 며 “함께 일해줄 가족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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