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열 1.5도라는 고속도로 출구를 놓친다면

한겨레21 2022. 9. 24.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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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기후는 여러 요소 '되먹임'으로 연결된 복잡계.. 숲과 바다가 탄소 흡수는커녕 배출원 될라
2022년 9월13일 스위스 알프스산의 관광명소 글래시어3000 리조트 앞에 만년설과 빙하가 녹아내리는 것을 막기 위한 거대한 장막이 덮여 있다. AFP 연합뉴스

지난 30년 동안 유엔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수많은 회의가 있었지만,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계속 늘었다. 2021년 발간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WG(Working Group) I’ 보고서는 온실가스가 획기적으로 감축되지 않는다면, 2030년 초에 전 지구의 평균기온 상승이 1.5도를 넘어 기후위기가 본격적으로 일어나리라고 전망했다. 현재 이미 1.1도 상승했고 이 추세라면 1.5도를 넘는 세상은 불가피하다. 이렇게 되면 인류는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는 파국을 맞이하게 되는가?

기후는 복잡계이므로 그 안의 모든 것이 다른 것과 서로 연결돼 ‘되먹임’(Feedback)으로 작용한다. 되먹임은 변화에 대해 제동기나 가속기 구실을 한다. 음의 되먹임은 변화를 줄이려는 복원력으로 작용하는 반면, 양의 되먹임은 변화를 증폭한다.

대기에 차곡차곡 쌓이는 온실가스

음의 되먹임은 온실가스라는 외부 충격에서 원래 기후 상태로 되돌아가도록 작용한다. 지금까지 인류가 공기 중에 배출한 전체 이산화탄소는 육상식물이 4분의 1, 바다가 4분의 1을 흡수하고 대기 중에 머무는 것은 절반가량이다. 그리고 온실가스로 인한 가열은 바다가 90% 이상을 흡수하고 빙하를 녹이고 토양을 따뜻하게 하는 데 5% 이상을 사용해, 대기에 머무는 열은 약 2%에 불과하다.

앞으로 기온이 계속 올라가면 지금처럼 숲과 바다가 탄소 흡수원 구실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배출원으로 바뀌게 된다. 동토지대가 녹아 탄소를 배출하고 숲이 파괴돼 탄소를 더 적게 흡수한다. 바다 수온이 상승하면 탄소를 흡수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탄산음료가 따뜻해질수록 탄소가 더 많이 빠져나오듯, 바다도 차가울 때보다 따뜻할 때 가질 수 있는 탄소량이 더 적어진다.

온실가스는 미세먼지처럼 자연적으로 사라지는 게 아니라 대기에 차곡차곡 쌓인다. 지구 가열 난로가 계속 켜진 상태인데 온실가스를 더 집어넣어 화력을 키우고 있다. 그런데 온실가스 축적량에 비례해 기온은 상승하지 않는다. 지구 가열을 일으키는 요인은 온실가스 배출만이 유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두 배 높아지면, 그 온실효과에 따라 1도 정도 기온이 상승한다. 더워진 대기는 수증기를 더 많이 머금을 수 있다. 이렇게 늘어난 수증기도 온실가스이므로 1.5도 기온을 더 상승시킨다. 그 결과 빙하가 녹으면, 빙하에 반사돼 우주로 되돌아가던 태양에너지가 지표면에 흡수돼 0.5도 기온을 더 높인다. 이산화탄소로 인한 1도 상승이 양의 되먹임으로 3도 상승을 일으키는 것이다.

2020년 8월 브라질에 있는 세계 최대 침수초원인 판타나우 습지의 쿠이아바강 너머 삼림에서 산불이 나 거대한 연기를 뿜어내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한순간 무너지는 도미노 파국

이처럼 원인이 결과를 일으킬 뿐만 아니라 결과도 원인을 일으키는 양의 되먹임이 일어난다. 마이크를 스피커에 가까이 두면 자기 증폭으로 소리가 커져 마침내 귀를 찢는 듯한 소리가 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결국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에 상관없이 지구가 열을 자체적으로 증폭한다.

지구는 겉으론 멀쩡해 보이지만, 지속적이고 강력해지는 온실가스 충격으로 속은 멍들고 있다. 권투선수가 처음 몇 라운드에서 펀치를 맞아도 회복력이 있어 버틸 수 있는 것에 비유된다. 마지막 라운드쯤 되면 회복력이 바닥난 권투선수는 한 방에도 쓰러져 다시 못 일어날 수 있다. 티핑포인트(Tipping Point)는 이처럼 기후가 한순간에 균형이 무너져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을 뜻한다. 이런 속성 때문에 티핑포인트는 기후위기가 일어난 다음에야 분명해진다. 우리는 기후위기를 너무 늦게 알아차리기 십상이고 그만큼 적시에 대응하기 어렵다.

여러 티핑요소(Tipping Element)가 전세계에 산재해 서로 연결돼 있다. 티핑요소 하나의 변화가 전체 기후계의 급격한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도미노처럼 한번 무너지면 중간에 정지하기란 어렵다.

그린란드 빙상은 연쇄적인 티핑포인트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린란드 빙상이 녹은 민물이 북대서양에 흘러들어 염도가 낮아져 대서양 순환에 영향을 미친다. 대서양 해류가 약해져 열대지방에서 북극으로의 열전달이 줄어든다. 결국 남극해에 열이 축적돼 남극 빙하 붕괴를 가속함에 따라 해수면을 상승시킨다. 대서양 해류는 전세계 해류와 연결돼 전세계 바다 수온을 변화시킨다. 이에 따라 전세계 강수 형태가 바뀐다. 서부 아프리카 몬순(계절풍)이 불안정해져 사헬지역에서 가뭄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진다. 아마존이 건조해지고 동아시아 몬순이 불안정해져 농업에 피해를 줄 수 있다.

티핑포인트를 어떻게든 피하려 한다면 무엇보다 그 문턱값(Threshold)이 얼마인지 알아야 한다. 수많은 티핑포인트가 지뢰처럼 여기저기에 숨어 있지만, 우리는 그 지점이 어디인지, 기온이 얼마나 더 올라야 폭발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확실히 아는 건, 지금 이대로라면 기후 티핑포인트가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의사가 얼마나 많은 담배를 피워야 언제 암에 걸리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해도 흡연이 암을 일으킨다는 사실은 확실한 것과 마찬가지다.

극지 빙상 붕괴, 열대 산호초 소멸

IPCC는 2001년 제3차 보고서에서 티핑포인트를 처음 본격적으로 다뤘다. 당시 티핑포인트는 지구 가열이 산업화 이전 수준보다 5도를 넘는 경우에 일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2018년 IPCC 특별보고서는 1~2도의 지구 가열에서도 티핑포인트가 발생할 수 있다고 봤다. 2021년 발간된 IPCC 제6차 보고서는 다음 세기까지 티핑포인트가 일어날 명백한 증거는 아직 없지만, 그 개연성은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티핑포인트가 먼 훗날,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당장 오늘 일어날 수도 있고 바로 이곳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과학 증거가 쌓일수록 티핑포인트는 더 낮은 기온 상승에서 나타날 것으로 전망한다.

2022년 9월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에 실린 기후 티핑포인트 연구에서 지구 가열로 16개 티핑포인트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1.1도 기온이 상승한 현재 수준에서도 5개 티핑포인트에 이미 진입했다고 분석했다. △그린란드 빙상 깨짐 △서남극 빙상 깨짐 △영구동토층 녹음 △북대서양 래브라도 바다의 순환 붕괴 △열대 산호초 소멸. 이는 파리기후협약의 목표 온도인 1.5나 2도조차 티핑포인트를 완전히 피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현재 각 나라가 온실가스를 줄이겠다는 정책을 완전히 달성해도 지구는 약 2.6도 가열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티핑포인트 대부분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탄소중립은 지구 가열을 1.5도 이내로 막기 위한 목표이다. 이 목표 온도는 유엔에서 과학자뿐만이 아니라 시민 단체와 정부 대표자들이 함께 합의한 온도이다. 즉 1.5도는 이해관계가 얽혀 복잡하고 어려운 탈탄소 달성에 긴급성과 틀을 제공하기 위해 설정된 온도이다.

지속가능으로 ‘사회적 티핑포인트’를

지구 가열이 커짐에 따라 위험이 급격하게 증가하지만 ‘안전’과 ‘위험’을 가르는 티핑포인트를 명확하게 정하기는 어렵다. 이는 티핑포인트가 일어나 진행하는 과정이 다양한 시간 척도를 가지기 때문이다. 산호초 소멸은 10년 이상, 영구동토층이 녹는 것은 200년 이상 걸리고, 그린란드 빙상은 1만 년에 걸쳐 붕괴한다. 그러므로 1.5도를 넘어서면 낭떠러지 아래로 바로 떨어진다기보다 지뢰밭으로 점차 깊이 들어가는 것과 같다.

지구 가열 1.5도 목표는 1.5도까지만 안전하고 1.5도를 넘으면 파국이 일어나므로 더 이상 막을 가치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1.4도에서 막으면 1.5도보다 안전하다. 1.6도로 제한하면 1.7도나 1.8도보다 낫고 2도보다 훨씬 낫다. 0.1도라도 그 상승을 막을 때마다 추가 위험을 피할 수 있다. 이는 1.5도라는 고속도로 출구를 놓쳤다고 해도 다른 출구가 없는 것은 아닌 경우와 마찬가지다. 1.6도의 출구가 있고 이것을 놓치면 1.7도의 출구가 있다. 출구를 놓칠수록 목표 지점을 돌아가서 더 힘들지만 여전히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올 기회는 있다. 기후위기는 마지막 빠져나올 수 없는 그 순간까지 분투해야 할 가치가 있다.

과학은 2030년까지 현재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반 이상 줄이면 지구 가열을 1.5도 이내로 막을 수 있다고 한다. 과학이 할 수 있다고 제시한 이 목표의 달성 여부는 사회적 의지의 문제일 뿐이다. 기후 티핑포인트가 일어나기 전에 화석연료에 기반한 과잉사회에서 재생에너지에 기반한 지속가능한 사회로 티핑포인트를 일으켜야 한다. 사회적 티핑포인트는 바로 지금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 지금의 끝은 언제인가? 끊임없이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세상을 급격히 바꿔야 하는 것이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가 가야 할 숙명이다.

조천호 경희사이버대학 특임교수·전 국립기상과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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