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와인]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와이너리'서 만든 와인 '마르께스 데 리스칼'

유진우 기자 2022. 9. 24.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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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와이너리를 모두 합치면 약 6만5000여개에 달한다. 이 수만 개가 넘는 ‘그림같은’ 와이너리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곳은 어디일까.

영국 윌리엄 리드(Willam Reed)라는 기업은 2019년부터 ‘월즈 베스트 빈야즈(worlds best vineyards)’라는 이름으로 매년 겉모습이 가장 빼어난 와이너리를 선정한다. 심사는 주변 자연경관은 물론 와이너리의 건축물로서 가치, 와인을 보관하는 지하창고의 유네스코(UN 교육·과학·문화기구) 문화재 등재 여부, 투어 프로그램의 질(質)까지 고려해 점수를 매긴다.

이 기업은 지난해 ‘와인의 본고장 ‘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와이너리로 스페인 중부 리오하 지방 ‘마르께스 데 리스칼(Marqués de Riscal)’을 꼽았다. 내로라하는 프랑스의 유서 깊은 ‘샤또(chateau)’들이나, 사이프러스 나무가 즐비하게 펼쳐진 이탈리아의 고성(古城)들을 모두 제친 결과다.

와인과 여행 전문가로 구성된 투표단 600여명은 마르께스 데 리스칼 와이너리에 ‘뒤틀린 알루미늄 리본이 작열하는 스페인 햇살 아래서 이 와이너리 전체를 감싸고 있다’며 ‘건물에서 은은하게 반사되는 보라색과 금색, 은색 빛은 이 와이너리가 만드는 와인, 그리고 그 와인이 담긴 병을 상징한다’고 평가했다.

그래픽=손민균

국내에서 스페인 와인 인지도는 아직 다른 국가들에 비해 떨어진다. 이 때문에 마르께스 데 리스칼 역시 국내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편은 아니지만, 전 세계 최대 와인 시장인 유럽과 북미권에서는 이미 명성이 높다.

마르께스 데 리스칼은 1858년 리오하 지방에서 가장 먼저 와인을 직접 병에 넣어 팔기 시작했다. 그 이전 리오하 지방 와인은 고급 와인 대접을 받지 못했다. 오래 전 국내 탁주 양조장들이 그랬듯, 대형 통나무통에 와인을 넣어뒀다가 필요한 만큼 소비자가 가져온 유리병에 따라주는 방식으로 와인을 팔았다.

직접 만든 와인을 병에 넣어서 완성된 형태로 팔면 그만큼 높은 값을 받을 수 있지만, 그에 상응하는 주질(酒質)을 보장해야 한다. 마르께스 데 리스칼은 이 지역 다른 와이너리들이 고수하던 전통 스페인식 양조 방식을 버리고, 프랑스 포도 품종을 일부 도입하는 실험을 시작했다.

세계 와인 시장의 변방에 속했던 스페인 시골 리오하 지역에 처음으로 선진 와인 시장인 프랑스 보르도 양조 기술을 접목시킨 셈이다. 양조 과정에서도 포도 줄기를 제거하고 프랑스 유명 와인산지 보르도 지역 통나무통을 사용해 당시 유럽 와인 애호가들이 선호하는 입맛에 맞췄다.

그 결과 1895년에는 프랑스가 아닌 다른 국가 와인 가운데 처음으로 ‘보르도 전시회 최고 영예 인증(Le Diplome d’Honneur de l’Exposition de Bordeaux)’을 받았다. 스페인 왕궁에도 현(現) 스페인 국왕 후안 카를로스 1세 아버지 시절부터 와인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후 전 유럽에서 마르께스 데 리스칼이 유명세를 타면서 급기야 이 와인을 본 딴 모조품까지 시장에 나돌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마르께스 데 리스칼은 20세기 초부터 와인 병을 금색 철실 그물로 감쌌다.

금색 철실을 뜯지 않으면 와인을 마시지 못하게 한 조치였다. 100년이 넘은 지금도 와인 병 하단에 여신이 월계수를 든 모습을 한 1895년 그때 그 인증서와 와인 병을 둘러 싼 금색 그물은 국내 판매점에서 마르께스 데 리스칼을 찾아내는 가장 쉬운 징표다.

와인 품질에 대한 집착은 이 와이너리 특유의 ‘예술 경영’으로 이어진다. 마르께스 데 리스칼의 현 오너 호세 루이스 무기로(Jose Luis Muguiro)는 와인 전문지 디캔터와 인터뷰에서 “선조들이 스페인에 처음으로 프랑스식 양조를 도입했던 것처럼 옛스런 와이너리에 현대적인 디자인을 가미한 ‘복합 문화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흔히 ‘와이너리’하면 유럽이나 미국 구릉지대에 포도밭이 넓게 펼쳐진 모습을 상상한다. 하지만 마르께스 데 리스칼 와이너리 한복판에는 스위트룸 12개 등 총 43개 객실을 갖춘 럭셔리 부띠크 호텔 ‘호텔 마르께스 데 리스칼’이 서 있다. 이 호텔은 건축을 현대예술로 탈바꿈시켰다는 평가를 듣는 프랭크 게리가 설계를 맡았다.

프랭크 게리는 미국 페이스북 본사, LA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2019년 서울에 루이비통 메종 서울을 지은 건축 거장이자, 은박지를 구겨 놓은 듯한 건물 디자인으로 명성이 높다. 포도밭을 배경으로 서 있는 지극히 현대적인 이 호텔은 단위 면적 당 건설비가 세계에서 제일 비싼 호텔 중 하나다.

세계 최고급 부띠크 호텔 모임 ‘럭셔리 콜렉션’은 이 기묘하지만 아름다운 조합을 높게 사 ‘호텔 마르께스 데 리스칼’을 정식 멤버로 받아 들였다.

호텔 마르께스 데 리스칼. /마르께스 데 리스칼 제공

마르께스 데 리스칼은 세계적인 고급 와이너리로 꼽히는 샤또 마고(Margaux) 수석 와인메이커 폴 퐁타이에가 샤또 마고 외에 유일하게 컨설팅을 해주었던 와이너리기도 하다. 그래서 일부 와인 전문가들은 마르께스 데 리스칼에서 마고 특유의 감초향과 후추향 같은 느낌이 난다고 평가한다.

마르께스 데 리스칼이 만드는 여러 와인 가운데 접근성이 가장 좋은 ‘레세르바’ 등급 와인은 포도를 모두 손으로 수확해, 가지를 정리한 후 통나무와 스테인레스 스틸, 콘크리트 양조 탱크에서 온도를 섬세하게 조절해가며 발효한다.

약 1달 정도 포도열매를 재워두는 침용 과정을 마치면 미국산 통나무통에서 2년간 더 숙성한다. 국내에서는 하이트진로가 수입한다. 올해 ‘2022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레드와인 구대륙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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