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철의 행동경제학] 인플레이션속 화폐착각(화폐가치를 인식 못하는 상태)
실업률 오르는 경기불황 몰릴수록
물가상승률만 못한 임금 인상에도
오른 것에만 안도하는 착각에 빠져
실질적 화폐가치 증감은 인식 못해
“내 월급만 빼고 다 오른다”는 말이 있다. 최근 물가가 급등하면서 사람들이 하는 푸념 섞인 말이다. 통계청이 2일 발표한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7%다. 6월의 6.0%와 7월의 6.3%에 비해 낮아졌지만 여전히 높은 수치다.
반면 한국은행은 8일 발간한 ‘2022년 9월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에서 올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5.2%로 전망했다. 하지만 올해 타결된 평균임금 인상률은 한국은행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8월 28일 발표한 매출액 상위 600대 비금융 기업 대상 ‘2022년 주요 대기업 단체교섭 현황 및 노동 현안 조사’ 결과에 의하면 올해 최종 타결된 평균 임금 인상률은 4.4%에 불과하다. 아주 단순하게 계산하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2%인데 임금 인상률은 4.4%이므로 실질임금 인상률(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차감한 임금 인상률)은 -0.8%다. 즉 실질임금은 오히려 소폭 하락한 셈이 된다. 인플레이션 시기에 왜 임금은 물가 상승을 상쇄할 정도로 충분히 오르지 못하는 걸까.
물론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노조의 유무, 노사 간 협상력 차이, 노동시장의 수급, 산업구조, 기업의 규모와 수익성, 정부의 역할 등 다양하다. 하지만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러한 이유를 화폐착각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화폐착각(money illusion)이란 화폐의 실질적 가치의 증감에 대해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 또는 화폐의 실질 가치보다 명목 가치로 화폐가치를 판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 같은 화폐착각 때문에 사람들이 화폐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비합리적인 선택을 한다고 주장한다.
화폐의 실질 가치는 물가 수준의 변동에 따라 변한다. 즉 화폐의 실질 가치는 물가가 상승하면 하락하고 물가가 하락하면 상승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화폐착각에 빠지면 물가 수준이 화폐의 실질 가치에 미치는 영향을 객관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오직 화폐의 양(명목 가치)으로만 화폐의 가치를 판단하게 된다. 즉 사람들은 화폐가치를 판단할 때 인플레이션을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임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화폐착각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실질임금보다는 명목임금(물가 상승을 고려하지 않은 임금)으로 임금의 가치를 판단하게 된다.
행동경제학을 연구한 공로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실러 교수에 의하면 “임금이 인상된다면 비록 물가가 임금만큼 오르더라도 일에 대한 만족도는 증가할 것”이라는 내용에 대해 일반인 응답자들의 과반수가 동의했다고 한다. 즉 대다수 사람들은 물가가 오르더라도 임금이 물가 상승률만큼 오르면(즉 실질임금이 인상되지 않더라도) 임금 인상 자체에 만족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은 임금을 물가 상승률 정도만 인상해 실질임금을 동결하더라도 노동자를 만족시킬 수 있다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또 다른 행동경제학자인 리처드 세일러와 대니얼 카너먼 교수 등은 실러보다 좀 더 나아갔다. 그들의 연구에 의하면 “실업률이 높고 물가 상승률이 12%일 때 임금을 5%만 인상(실질임금은 7% 하락)한다”는 결정에 대해 응답자들의 78%가 수용하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세일러는 ‘화폐착각’ 때문에 물가가 상승할 때 기업이 노동자들의 저항을 유발하지 않고도 실질임금을 삭감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봤다. 또한 그는 인플레이션이 어느 정도 지속되면 화폐착각에 의해 임금이 물가 상승률만큼 오르지 못해 실질임금이 점진적으로 하락하면서 실업률이 개선될 수도 있다고 했다.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화폐착각으로 인해 실질임금이 하락하면 노동에 대한 수요가 증가해 고용이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실질임금의 하락은 장기적으로 소득 격차와 빈부 격차 등의 사회적 문제뿐만 아니라 구매력 저하로 인한 소비 감소와 경제성장률 하락 등의 국가 경제적 문제를 초래할 수도 있다. 따라서 노동자와 기업·정부는 임금 인상률과 물가 상승률을 연동시키는 물가연동제 같은 선진국의 제도와 다양한 아이디어에 관해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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