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급선무는 휴전”… 중국도 러시아와 거리두기

베이징/박수찬 특파원 2022. 9. 24.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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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고위직과 회동서 “유럽의 중재 지지”

지난 2월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장기화하면서 그동안 러시아와 “한계 없는 협력”을 강조해온 중국이 러시아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에 밀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차 대전 후 처음으로 예비군 30만 동원령을 내리고 핵 사용까지 언급하자 중국은 “지금 급선무는 휴전”이라며 거리 두기에 나섰다.

2022년 9월 22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7차 유엔 총회 회의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부장이 악수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중국 정부 발표에 따르면 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 중인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 21일(현지 시각)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정책 고위 대표와 만나 “우크라이나 상황이 확대·장기화하는 추세를 보이고 부정적 파급 효과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며 “중국이 바라지 않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현재 급선무는 정전(停戰)이며 중국은 수수방관하거나 불에 기름을 붓는 행위를 하지 않고 우리만의 방식으로 역할을 하고 동시에 EU와 유럽 대국들이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는 것을 지지한다”고 했다. 왕 부장이 그동안 러시아를 비난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해 연대 의식을 표명해 온 ‘EU와 유럽 대국’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왕 부장은 이날 폴란드, 노르웨이 외교장관과도 회동했다. 두 나라는 러시아에 맞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는 국가들이다.

중국은 당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복잡한 역사적 경위가 있다”며 러시아를 두둔하는 듯한 입장을 보여왔다. 미국과 EU가 주도하는 대(對)러시아 제재를 반대하고 중국 매체가 ‘침공’ ‘침략’ 등의 단어도 쓰지 못하도록 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개전 직후인 지난 3월 프랑스·독일 정상과의 화상 회의에서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각국의 주권과 영토 보존이 존중돼야 하며, 유엔 헌장의 취지와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각국의 합리적 안보 우려가 중시돼야 하며 평화적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입장만 밝힘으로써 사실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추인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중국의 입장이 달라지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 것은 지난 15일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열린 중·러 정상회의 때다. 공개된 발언에서 시 주석은 중·러 간의 경제 협력을 강조했지만 비공개 논의 때는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인한 국제 정세 불안 등을 언급하며 정전을 요구했다고 한다. 푸틴 대통령도 “중국의 질문과 우려를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월 베이징에서 열린 중·러 정상회담에서 “한계 없는 협력”을 언급했을 때와는 분위기가 확 달라진 것이다. 스인홍 중국 인민대 교수는 미 CNN방송 인터뷰에서 “공개된 시 주석의 발언은 근래 들어 가장 신중하고 가장 로 키(low-key)였다”고 했다.

중국이 당장 공개적으로 러시아와 관계를 재조정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중국은 올 들어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을 186% 늘렸고 양국 무역액은 조만간 사상 처음 2000억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대만 문제 등에서 미국에 공동 대응하는 파트너로서 러시아는 여전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이 장기화되고 전 세계 에너지, 식량 위기로 확산할 경우 다음 달 당 총서기직 3연임을 전후로 안정적인 경제·안보 환경이 절실한 시진핑 주석에게 러시아는 부담이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중국 전체 수출의 21%를 차지하는 유럽이 전쟁에 휘말릴 경우 중국 경제에 직격탄이 될 전망이다. 익명을 요구한 중국 학자는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 사이에 ‘브로맨스(남자들 간의 지극한 우정)’가 있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어디까지나 전략적인 계산과 필요에 따른 행동”이라며 “역사적으로 자신의 이익에 따라 맨 먼저 중국을 배신했던 나라가 러시아라는 점을 중국 지도부는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유엔에서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반대하고 싼값에 러시아산 원유를 도입하며 반사이익을 챙겼던 인도도 러시아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지난 16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면전에서 “지금은 전쟁의 시대가 아니다”며 “어떻게 하면 평화의 길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지 논의할 기회를 찾자”고 했다. 인도 신문 타임스오브인디아는 “모디 총리는 그간 중국 공세에 맞서기 위해 러시아산 무기와 원유, 미국의 투자와 공급망을 동시에 필요로 했지만 (중러 관계,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등이) 장기적인 계획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했다. 인도의 수브라만얌 자이샨카르 외교부 장관은 22일 뉴욕에서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외교장관과 회의를 갖고 우크라이나 내에서의 즉각적인 적대 행위 중단과 대화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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