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과 함께 핏빛으로 물든 수영장.. 이 복수극은 꿈인가 현실인가

이영관 기자 2022. 9. 2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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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게트 소년병

바게트 소년병

오한기 | 문학동네 | 308쪽 | 1만4500원

꿈에서 본 장면이 희미하게 기억날 때가 있다. 어떤 장면인지 설명하려고 하면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찝찝한 기분을 안고 지내다 그런 순간이 오기도 한다. “꿈에서 본 것 같은데?” 그 순간 꿈과 현실의 경계는 무너진다. 눈앞에 있는 것이 실제로 꿈에서 본 것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다만, 생각을 거듭할수록 ‘본 것 같다’는 추측은 어느새 ‘봤다’는 확신으로 변한다.

소설집은 꿈을 옮겨 놓은 듯한 7편의 이야기를 묶었다. 표제작 속 수진은 ‘바게트 소년병’의 잔상을 잊지 못한다. 곰팡이 핀 바게트를 총처럼 겨누고 있는 소년. 공사 중인 수영장 캐비닛에 살면서 한 남성에게 복수하러 간 누나를 기다리고 있다. ‘소년병’은 자취를 감추지만, 수진의 머릿속에는 ‘무질서’라는 단어가 맴돈다.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듯한 느낌을 받는다.

수진은 소년병의 존재를 주변에 말하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그 이야기를 소설로 쓰기 시작한다. 샴쌍둥이가 수영장에 다니는 사람들을 모두 죽이는 내용. 서서히 피로 물드는 수영장을 묘사하며 끝난다. 몇 달 뒤 그 장면이 현실이 된다. 50대 남성이 총에 맞아 수영장 물이 핏빛으로 물든 것. 범인은 어린 남녀다. 수진은 중얼거린다. “다행이야. 복수에 성공했구나.”

2016년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받은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편지를 주고받는다는 내용의 ‘펜팔’을 비롯한 소설들은 꿈같은 장면들을 눈앞에 펼쳐놓는다. 이야기의 ‘무질서’에 몸을 맡겨보자. 꿈과 현실의 경계가 사라지고, 마침내 꿈보다 더 꿈같은 현실을 경험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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