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대학생 친구'가 없더라도
몇 년 전 일이다. 사람들과도 곧잘 지내고, 착실하게 제 할 일을 다 하던 청년이었다. 정규직 전환 가능성을 기대하며 공장에서 묵묵히 일하던 그에게 어느 순간 주변 선배와 동료들이 자기 뒤에서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팀에서 사고나 오류가 생기면 괜스레 자신의 탓으로 몰아가는 일이 잦아졌다. 작은 실수에도 모욕과 구박을 당하고 위협적인 협박도 들었다. 이를 단순히 텃세라고 치부하고 넘기기엔,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아 괴로웠다.
나는 그가 퇴사하기로 결론을 내리기 직전에 얘기를 들었다. 명백한 직장 내 괴롭힘이었다. 그 공장엔 노동조합도 있고 내가 아는 활동가도 있었다. 직장갑질119 같은 단체도 알려줬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상황을 해결하기보다는 일을 그만두고 말았다. 어디에도 자신의 편이 없다고 느끼면, 사람은 저항과 문제 해결 대신 포기와 무기력에 빠지기 쉽다. 더구나 괴롭힘은 사람의 마음을 함락시킨다. 네가 못났고 부족하니 그런 일을 당해도 싸다고, 괴롭힘을 합리화하는 논리는 당하는 사람 내면에 뿌리내려 자신을 비하하도록 만든다.
애초에 그가 자신을 지킬 방법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그가 퇴사하기까지 그 어떤 방법도 그에게 닿지 못했다. 노동조합이니 노동권이니 하는 모든 것들이 그에겐 낯설고 어색해 다가가기 어려웠다. 노동자의 권리로서 자신을 보호할 수단이 있었음에도 그게 뭔지 몰랐다.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이란 게 있다는 걸 알고 놀랐던 게 50년도 더 된 일이지만,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는 아직도 노동자들에게 닿지 못하고 있다.
물론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는 그 거리를 좁히고자 노력해왔다. 그 노력은 작년 11월 발표한 교육부의 ‘2022년 개정 교육과정 총론 주요 사항’에 담겨 있다. 개정될 교육과정 주요 내용에 “일과 노동에 포함된 의미와 가치”를 명시해 노동교육을 중요한 교육목표로 설정한 것이다. 하지만 올해 8월30일 교육부가 발표한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총론 시안’에는 ‘노동’이 삭제된 채 고등학교 교육목표에서 “일의 가치를 이해하고 자신의 진로에 맞는 지식과 기능을 익히”는 것으로 축소되었다. 사실상 노동자의 권리를 도려낸 채 직업 및 진로교육만을 명시하고 있다.
올해 나는 청년의 불안정노동을 연구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정보기술(IT) 산업 프리랜서와 어린이집 교사를 사례로 다루면서, 둘의 공통된 문제 하나가 보였다. 바로 국가의 무책임이다. 요 몇 년간 국가는 코딩교육, 직업훈련 등 IT 관련 교육을 대대적으로 지원했다. 하지만 국가가 보장해준 진로를 따라 취업한 IT 프리랜서들은 불안정하고 열악한 노동조건에 놓여 있다. 어린이집 교사들은 대학 유아교육과를 나와 국가가 보장하는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어린이집 원장이 군림하는 어린이집의 노동조건은 여전히 문제다. 국가가 노동자를 특정 직업으로 떠민 다음 사실상 알아서 살아남도록 방치하는 셈이다.
전태일은 한자가 가득한 노동법 책을 보며 ‘나에게도 대학생 친구가 있었더라면’ 하고 안타까워했다. 노동자 스스로 자신을 지키려면 노동자와 노동자의 권리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야 한다. 그 거리를 좁히는 건 ‘대학생 친구’가 아닌 국가의 교육 의무다.
최성용 청년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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