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혐오의 시대

최정애 전남대 교수·소설가 2022. 9. 24. 03: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독일 연방 내무부가 2022년 2월 말부터 9월9일 사이 독일로 유입된 우크라이나 난민의 수를 100만8635명으로 집계했다. 난민이 사회 주요 이슈였던 2015년과 2016년의 시리아 난민 증가 추세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난민들은 독일 입국 후 90일 동안 별도의 허가 없이 거주가 가능하다. 머무는 동안 장기 거주 허가를 얻으면 일자리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독일에서는 정부가 출신 국가를 따져 난민을 가려 받는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다른 국가 출신의 난민들은 거주 허가를 받기 위한 조건이 상대적으로 까다로운 탓이다.

최정애 전남대 교수·소설가

한편 난민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행정력에 한계가 다다른 모양새다. 이미 독일의 16개 연방주 중 12개 주가 숙소 부족 등의 문제로 난민 수용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난민 수용 문제는 최근 몇년간 독일에서 논란이 큰 사회 이슈 중 하나였다.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가 난민을 받아들이자고 주장하고 다른 정당에서도 이견이 없었던 2015년, 41%의 독일인들이 ‘그렇게 많은 난민을 수용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의견에 동의하고 있었다. 2017년 총선에서 강력히 난민 반대 입장을 표명한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의 치솟았던 인기가 이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지금은 한 발짝 물러선 것처럼 보이지만 이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정부는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난민을 위한 사회 통합 프로그램이 가동되었으며, 청소, 요리, 간병같이 인력난을 겪고 있는 분야에서 난민 고용을 적극적으로 늘린다는 실질적 계획도 세웠다. 실제로도 2013년 이후 독일로 들어온 난민의 49%가 일자리를 찾으며 노동시장에 합류하였다. 최근 증가한 우크라이나 난민에 독일 정부가 거는 기대는 조금 더 크다. 언어와 문화 차원에서 이질감이 적을 것으로 기대되는 이들을 최대한 노동 시장에 통합하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사회 구성원이 된 이민자들과 함께하는 독일 사회는 계속 변화 중이다. 지난 6월 말, 슐레스비히 홀슈타인주에서는 29세의 흑인 여성 아미나타 투레가 사회부 장관에 선출됐다. 투레 장관의 부모는 아프리카 말리에서 탈출한 난민으로, 그는 난민 캠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열두 살이 되어서야 독일 시민권을 취득했고 스무 살이 되던 해 녹색당에 입당했다. 이로써 투레는 아프리카 난민 가족 출신으로 독일 주정부 장관에 오른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여러 해 난민의 사회통합을 고민해온 그는 반인종차별과 평등, 이주, 여성 등의 문제에 방점을 두고 활동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계속해서 변화하는 독일의 난민상을 보며 생각난 것이 있다. 2018년 제주를 통해 입국했던 500여명의 예멘인들이 난민 지위를 신청한 사건이었다. 내전과 박해를 피해 온 그들은 난민 지위 불인정, 열악한 노동환경, 편견과 경계심에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우리는 이것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난민 문제를 얼마나 민감하게 받아들이는지 확인했다.

우리나라가 유엔난민협약에 가입한 것은 1992년으로, 2012년 대한민국은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도 제정했다. 공표된 의지와 다르게 실제 난민이 들어오는 경우는 매우 적고 지위를 인정받을 확률도 낮다. 1994년부터 우리나라에 난민 지위를 신청한 사람은 약 7만5000명으로, 그중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1200명, 신청자의 1.5% 수준이다. 전쟁, 종교, 인종, 기후위기에 이르는 다양한 문제로 난민이 늘어나는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정부는 난민 협약국의 명칭에 걸맞은 지원책을 세우고 꾸준히 관심을 쏟고 있는지, 시민들은 진정한 세계 시민으로서 뜻을 세우고 역량을 구축하는지.

독일 기자 바스티안 베르브너는 자신의 책 <혐오 없는 삶>에서, 피상적인 접촉이 난민에 대한 편견을 키우고 공포를 낳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오해를 앞세운 차별과 실체 없는 뉴스를 확산하는 각종 매체들이 극단적인 편견을 양산하고 혐오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베르브너는 더불어 사는 사회란 결국 편견과 싸우겠다는 개개인의 의지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한다. 우리는 공동체를 이루는 사회 구성원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하므로, 개인과 개인, 사람과 사람으로서 난민들과의 관계를 만드는 다양한 방법을 찾는 것이 결국 해결책이 아니겠냐는 것이었다. 그것은 혐오의 시대에 맞서 개개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지만, 또한 개개인의 생각과 행동이 공동체의 새로운 물결을 만들게 할 유일한 일이기도 할 것이다.

최정애 전남대 교수·소설가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