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정보라 작가를 응원하며
정보라 작가가 연세대학교를 상대로 퇴직금 및 수당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2010년부터 2021년까지 11년 동안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과에서 시간강사로 일했다고 한다. 매 학기 9학점의 강의를 했고 6년 동안 우수 강사로 선정되어 총장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성실하게 근속했음에도 불구하고 퇴직금을 지급받지 못했다.
나도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에서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시간강사로 일했다. 매 학기 6~8학점의 강의를 했고 3년 동안 강의평점 상위 10%에게 주는 우수 강사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나도 정보라 작가처럼 무엇도 보장받지 못했다. 그후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책을 쓰고 대학에서 나왔다.
사실 퇴직금만 못 받았던 것은 아니다. 건강보험이 보장되지 않았고 대출을 받기 위해 찾아갔던 은행에서는 재직증명서를 제출할 수 없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나는 아이가 태어나고부터는 학교 인근의 맥도날드에서 물류상하차 일을 했다. 생계를 위해서, 그리고 건강보험을 보장받기 위해서 공부하는 시간과 강의를 준비하는 시간을 줄였다. 그러는 동안 왜 대학이 아니라 맥도날드에서 나와 가족을 사회적으로 보장해 주는 것인지, 왜 맥도날드에서 더 나를 노동자로 감각할 수 있는 것인지, 하는 물음표가 생겨났다.
대학에서 나온 이후 맥도날드도 함께 그만두었다. 그때 점장은 나에게 당신은 우리 매장에서 정말 중요한 사람이라고, 시급을 올려줄 테니 계속 일을 해달라고 말했다. 내가 이사를 간다고 적당히 둘러대자 그는 그러면 대한민국 어디로 이사를 가든 다음날 아침부터 그 지역의 맥도날드에서 일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답했다. 같이 일한 사람에게 이러한 말을 들을 수 있는 건 행복한 일이다. 나는 그에게 사실대로 말했다. 그는 그러면 어쩔 수 없네요, 라고 말하고는, 두 장의 서류를 내밀었다. 한 장은 내가 퇴직금을 받을 수 있다는 서류였고 다른 한 장은 가족의 건강보험을 앞으로 1년 동안 보장해 주겠다는 서류였다. 고마운 마음에 “저에게 왜 이렇게 잘해주시는 건가요?” 하고 묻자, 그는 웃으며 한마디로 답했다. “민섭님, 이건 그냥 법에 다 있는 거예요. 그냥 받으세요.”
대학원생 조교 시절까지 감안하면 내가 10년 가까이 일한 대학보다도, 오히려 맥도날드가 나를 노동자로 대우해 줬다. 사실 맥도날드도 대한민국의 최저기준의 법을 지킨 것뿐이다. 어떤 개인이나 회사가 최저기준의 무언가를 지켰다고 해서 그 사람이 괜찮다거나 그 회사가 좋다거나 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다만, 대학이 잘못되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문학 공부만 했던 나는 처음으로 법이라는 것을 찾아보았다. 대학이 아니었다면 평생 법 없이 살았을 삶이었다. 건강보험법시행령에서는 주 15시간 이하 노동하는 사람을 초단시간근로자로 분류해 건강보험을 제공하지 않아도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니까 위법은 아닌 셈이다. 그러나 시간강사의 노동이라는 것이 그렇게 강의실에서의 숫자로만 매겨질 수는 없다. 정보라 작가도 강의를 준비하고 학생들을 평가한 시간들이 함께 산정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그 사실을 대학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비용을 지출하지 않기 위해 강의 시수만을 노동 시간으로 주장하고, 한 사람에게 15학점 이상의 강의를 배정하지 않고, 노동의 연속성을 부정하기 위해 4개월마다 해고와 임용을 반복한다. 우리는 그런 것을 편법이라고 부른다.
비단 연세대학교만의 문제는 아니다. 오늘도 대한민국의 모든 대학이 당연하다는 듯 그렇게 하고 있다. 몇몇 시간강사 선배들이 대학과의 퇴직금 소송에서 승리했듯, 정보라 작가의 승소를 응원한다. 법 뒤에 숨은 대학들이, 적어도 거리의 패스트푸드점보다는 나아지길 바랄 뿐이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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