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 11가지 전골에 산채 18가지 정식, 모두 직접 채취·재배

입력 2022. 9. 24.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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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희의 맛따라기
산채 정식에는 18~22가지 나물 반찬과 찌개가 나온다. [사진 이택희]
이런 음식은 처음이다. 문화적 호기심과 식탐 탓으로 색다른 음식을 찾아다닌 지 30년이 넘었지만 본 적이 없다. 두 가지가 그렇다. 첫째, 소금을 제외한 모든 식료품을 그 동네에서 나온 걸로 쓴다. 가족이 직접 경작하거나 채취한 걸 갈무리해서 사철 밥상을 차린다. 둘째, 완전 식물성이다. 대표 메뉴인 산채 정식과 버섯 전골에는 멸치 비늘 하나도 안 들어간다. 동물성을 멀리하기가 절집 이상이다. 다만, 닭백숙·황태정식은 주재료를 뺄 수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닭·황태를 쓴다.

음식이 거칠지 않고, 기대 이상으로 맛있다. 나물과 버섯 요리가 전문이고, 직접 쑨 손두부 음식도 한다. 비건이나 기후 미식(Klimagourmet) 실천가들에게는 최고 성찬이겠다. 육식 취향인 사람들은 뜨악할 테지만, 서양 사람들도 채식에 눈뜨기 시작했다.

자연산 표고·능이 우린 국물만 사용

지난달 21일 새벽 산에서 따온 버섯. [사진 이택희]
서울양양고속도로가 없던 시절 영서지방에서 설악산에 다녀오려면 한번은 지나던 길가에 음식점이 있다. 원통에서 한계령·미시령 길 갈라지는 삼거리로 가는 중간에 자리 잡은 ‘청정골산채전문식당’이다. 가을 야생버섯이 나오기 시작하는 지난달 21일 그곳을 찾아갔다.

새벽 4시에 버섯 따러 산에 간 아들 오상훈(44)씨가 정오 조금 지나 돌아왔다. 어머니 고순희(67)씨와 아내 김민아(31·베트남 이름 던티루언)씨가 함께 운영하는 식당의 채취 담당이다. 차에서 꺼낸 버섯 배낭을 채반에 풀었다. 송이, 능이, 달걀버섯, 노름바래기버섯, 까치(곰)버섯, 암회색광대버섯, 산느타리버섯, 민자주방망이버섯, 꾀꼬리(오이꽃)버섯, 꽃방패버섯, 보라싸리버섯 등 11가지가 나왔다.

인제군청에 근무하는 아들은 비가 오지 않으면 날마다 산에 간다. 근무일에는 저녁에 랜턴을 들고 가고, 휴일에는 새벽부터 나선다. 본인만 아는 산속 나물·버섯밭에 가거나 이동 중 향기로 알아내 채취한다. 다섯 살 때부터 약초 캐는 어머니 따라 산에 다니며 본능에 가까운 감각을 익힌 덕분이다.

그런 그가 산속 사정을 전했다. “올해 버섯이 안 좋을 것 같다. 봄에 가물었고, 장마 뒤 날씨가 너무 선선하다. 버섯 균사가 온도에 민감하다. 낮 기온이 30도 넘어야 땅속에서 활동한다. 그런데 낮엔 선선하고 밤에는 추울 정도여서 버섯이 잘 안 난다.” 경험으로 아는 예년 사정도 설명했다. “이 지역에서 송이·능이는 9월 초부터 10월 중순까지 나온다. 잡버섯은 8월 초·중순에 시작한다. 작년에는 6월에 능이가 많아 나왔다. 나는 직장 때문에 송이·능이밭 관리를 제대로 못 해 버섯을 양껏 따지는 못한다.”

버섯 전골(6만/8만 원)은 이날 따온 버섯 중 양이 적거나 법제가 필요한 건 빼고 저장한 걸 보태 11가지 버섯으로 안쳐 내왔다. 송이, 능이, 까치버섯, 노름바래기버섯, 꾀꼬리버섯, 싸리버섯, 암회색광대버섯과 저장해둔 산표고, 꽃송이버섯, 목이, 밤버섯이 들어갔다. 더 들어간 건 양파·대파·고춧가루뿐. 국물 내는 재료를 따로 물었다. 자연산 표고·능이 우린 물만 쓴다고 한다. 제철에는 12~13가지, 보통은 10가지 버섯이 들어간다. 송이·능이 같은 귀한 버섯은 제철에 흔할 때는 등외품을 조금씩 넣지만, 다른 때는 넣을 수 없다.

11가지 버섯으로 끓인 전골. [사진 이택희]
여러 버섯 맛이 어우러진 국물을 한술 뜨자 신기하게도 감칠맛이 고기 못지않게 충만했다. 버섯마다 다른 질감도 온갖 부위 고기를 한 솥에 넣고 끓인 탕이나 찌개처럼 리듬감이 즐겁다. 야생버섯의 흙 향을 특히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감탄이 나오는 맛이다. 취재를 피하는 주인을 설득해 길을 열어 주고 식사에 동석한 음식평론가 황광해(65) 선생은 “한약 먹는 느낌”이라고 평했다. 황 선생은 현재 식당 이웃 마을 용대리에서 ‘산나물발전소’를 차리고 인제 지역 산나물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산채 정식(1만5000원)은 22가지 반찬과 된장찌개, 강원도식 막장 짜글이(강된장)로 한 상을 차렸다. 18가지 나물 이름을 일일이 물어봤다. 단풍취, 화살나무순, 엄나무순, 두릅순, 산(山)고추나물, 얼레지나물, 돌들깻잎(‘돌’은 야생 의미), 땅두릅, 들깨 줄기 장아찌, 질경이나물, 오가피순, 참취나물, 싸리버섯무침, 전호나물, 산뽕잎나물, 여름 두릅, 왕고들빼기, 비름나물 등이다. 여기에 배추김치, 알타리김치, 채 친 동치미 무 무침, 깻잎지(‘깻잎반찬’이라 함)가 더 올랐다. 된장찌개는 양배추, 시래기, 직접 만든 두부를 넣고 슴슴하게 국처럼 끓였다(평소엔 18찬이 표준 차림).

처음 먹어보는 얼레지나물은 첫맛은 쌉쌀하고 뒤로 갈수록 구수한데 맑고 고소한 들기름 맛이 풍미를 돋운다. 황 선생은 “멧돼지가 좋아하고, 산나물 가운데 최고로 치는 나물”이라고 설명했다. 전체적으로 나물 맛은 담박하면서 제 향이 모두 살아있다. 그 향을 살리려고 나물에 간장을 쓰지 않고, 소금과 들기름만으로 무친다고 한다. 들기름도 농사지은 들깨로 짠 진품이다. 좋은 기름으로 무쳐서 그런지 나물 하나하나가 반찬으로 손색이 없다. 밭농사를 1만6529㎡(5000평)이나 짓는다고 한다.

묵은 막장에 복령 갈아넣어 맛 살려

막장은 여러 가지 나물 얹어 밥 비빌 때 넣으면 맛의 아귀가 찰떡처럼 맞는다. 담근 지 48년째인 막장에는 긴 사연이 있다. 결혼 이듬해(1975년) 서울 사람이 콩 2가마니 메주를 쑤어 달라고 했다. 일주일이나 쑤어서 띄웠는데 연락이 없었다. 메주를 버릴 수 없어서 보리쌀 한 가마니 밥을 지어 막장을 담갔다. 이 집 막장은 보리밥을 엿기름 물에 띄워 만든 엿물로 메줏가루를 버무려 담근다. 시부모 모시고 살 때는 해마다 장을 담그라 해서 7~8말(1말=7㎏)씩 또 담갔다. 막장이 묵고 묵었다. 먹어보니 맛은 없었다. 살려보려고 자연산 표고 가루, 고로쇠 수액을 넣기도 했다. 2017년 음식점을 인수하고 아들이 복령(茯苓)을 많이 캐 왔다. 15~18㎏ 덩어리 8개를 갈아서 넣으니 맛이 살아났다. 묵은 것에 2~3년짜리를 조금씩 섞어 쓴다. 이제는 막장을 팔라는 손님이 많은데 따로 팔지는 않는다.

이 집 음식은 가장의 까다로운 입맛의 산물이다. 고 여사 남편이 동물성 음식을 일절 입에 안 댄다. 월남전 참전 후 마음의 병이 생겨 알코올 의존증까지 있던 남편은 음식이 조금이라도 거슬리면 “밥상이 바로 뒤집어졌다”고 한다. 그렇게 연마된 음식이 그대로 식당 메뉴가 됐다. 고 여사는 그런 남편 건사하며 자식들 키우느라 허리 펼 날이 없었다. 농사일하면서 산에서 약초를 캐서 살림을 꾸렸다. 다섯 살 먹은 아들을 데리고 산에 다녀야 했던 사연이다. 그래서 아들은 일대 산속 사정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한다. 가장은 7개월 전 평생의 굴레이던 술을 끊었다 한다.

식량이 세계시장을 긴장시키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직접 원인이지만, 근본적으로는 기후변화의 영향이 더 큰 문제다. 인류 문명은 복합적 위기에 직면해 그 지속 가능성이 걱정되는 상황에 빠졌다. 생존을 위해 문명 대전환이 급하다는 경고음이 높다. 실생활에 닥친 위기는 온난화로 집약되는 급격한 기후변화다. 온난화는 지구 전체의 식생(vegetation)을 교란한다. 식용작물도 예외는 아니다. 기후위기가 식량 위기로 직결되는 이유다. 식생활 위기 극복 방안의 하나로 2014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한 아젠다가 ‘기후 미식’이다.

기후 미식은 ‘자연식물식’을 권한다. 유제품을 포함한 일체의 동물성을 배제하고 식물성 식품을 섭취하자는 것이다. 되도록 가공을 덜 한 상태로 먹기를 추천한다. 이 지침대로 하자면 전통 한식이 세계적 모범답안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산나물이 중심이 되는 산간지역 상차림은 정답에 가깝다.

이택희 음식문화 이야기꾼 hahnon2@naver.com 전 중앙일보 기자. 늘 열심히 먹고 마시고 여행한다. 한국 음식문화 동향 관찰이 관심사다. 2018년 신문사 퇴직 후 한동안 자유인으로 지내다가 현재는 경희대 특임교수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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