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우리 시대의 '좋은 죽음'

2022. 9. 24. 00: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가족 걱정이 컸던 한국인
최근엔 자신 중시하는 경향
임종 문화 변화에 발맞춰
공론화 통해 정책 마련을
누벨바그의 거장인 프랑스 장뤼크 고다르 감독이 스위스에서 의사조력 자살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화제가 됐다. 우리에겐 '좋은 죽음'이란 어떤 것인지, 우리 사회에 풀어가야 할 숙제를 남겼다. 아무리 의학 기술이 발전해 생명 연장이 가능해지더라도 죽음은 피할 수 없다. 인간은 좋은 죽음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던 의학도 좋은 죽음을 중요한 목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제 의료에서 임종 돌봄은 필수적이다. 삶의 마지막 과정에 있는 환자가 좋은 죽음을 경험할 수 있게 하려는 노력은 의사, 가족, 사회 전체에 가치 있는 활동이다.

좋은 죽음에 대한 개념은 의학만이 아니라 사회학과 심리학 등 다양한 학계에서 연구할 주제다. 미국 의학연구소가 정의했듯 좋은 죽음을 "환자 및 가족이 통증과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우며, 환자와 가족의 희망에 따르면서도 임상적·문화적·윤리적 기준에 합당하게 일치하는 것"이라 본다면 국가마다 문화마다 다를 수 있다. 그래서 미국, 영국, 일본은 이미 국가 차원에서 탐구해왔다.

필자는 2016년 암 환자와 그 가족 그리고 의료진 및 일반인을 대상으로 좋은 죽음을 조사한 적이 있다. 암 환자와 일반인은 '가족에게 부담주지 않는 것'을 가장 많이 선택했다. 암 환자 가족들은 '가족이나 의미 있는 사람이 함께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의사들은 '지금까지의 삶이 의미 있게 생각되는 것'을 가장 중요시했다. 입장에 따라 다르지만 '가족에게 부담주지 않는 것' '가족이나 의미 있는 사람이 함께 있는 것' '지금까지의 삶이 의미 있게 생각되는 것'이라는 세 가지 조건이 우리 사회에서 좋은 죽음의 가장 중요한 가치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 본다.

다른 국가들은 어떨까? 가까운 일본은 '의료진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신체적·정신적으로 편안하고, 희망하는 곳에서 맞이하는 죽음'을 중시했다. 미국은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우며 영적인 안녕 상태를 유지하면서 가족이 함께 있을 때 맞이하는 죽음'을 좋은 죽음으로 보았다. 영국은 '익숙한 환경에서 존엄과 존경을 유지한 채,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하면서 고통 없이' 맞이하는 죽음을 좋은 죽음으로 보고 있다. 특히 영국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삶의 마무리를 위한 6대 전략'을 제시하고 이를 모든 국민에게 제공하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는 대한민국이 좋은 죽음에서 가장 중시하는 '가족들에게 부담주지 않는 것'을 찾아볼 수 없다. 삶의 마지막 순간조차 개인과 가족이 여전히 사회 경제적 부담을 안고 있다는 현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많은 환자가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이를 때 심각한 고통을 겪는 만큼, '고통으로부터의 자유'는 매우 중요한 가치다. 미국 등 서구 사회에서는 좋은 죽음의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여기고 있다. 일본도 그랬다.

우리는 가족을 최우선시하다 보니 암 환자, 암 환자 가족, 일반인에서는 네 번째로 밀렸다. 그러나, 최근 우리 연구팀이 실시한 대국민 조사에서 '주변 정리를 잘 마무리하는 것' '고통으로부터의 자유' '지금까지의 삶이 의미 있게 생각되는 것' 등 개인을 중시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 사회도 죽음의 개인적 차원을 중요시하는 서구와 같아질 것이다.

우리 사회도 '좋은 죽음'에 대한 공론화를 통해 합의에 기초한 정책을 실현하고 임종 문화 패러다임을 전환할 준비를 서두르자. 정부, 관련 기관, 언론, 시민사회, 학계는 공동으로 우리 국민의 죽음 현황을 점검하고, 좋은 죽음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 구체적으로 실현해야 할 것이다. 10월 둘째 주 토요일은 법정 호스피스의 날이다. 어떤 대통령도 '좋은 죽음'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다. 그날만큼은 꼭 국민에게 '좋은 죽음'을 약속할 대통령의 메시지를 기대한다.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