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소통] 미디어의 퀸 엘리자베스 2세

2022. 9. 24.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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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이 유럽 휩쓸 무렵
93세 여왕의 차분한 연설
국민 소통의 선례 보여줘
굿바이, 퀸! 마치 21세기 동화를 보는 듯한 역대급 추모 기간이 끝났다. 엘리자베스 2세는 평생 두 가지 의미의 '말'에 열정을 바친 여왕이었다. 첫 번째는 승마와 경주용 말, 유럽의 왕족들이나 귀족들이 그러하듯 어릴 때부터 말이라는 동물을 통해 교감 능력을 익혔다. 마주(馬主) 겸 말 생산자인 오너-브리더의 자격으로 경마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영국 챔피언스 시리즈 명예의 전당에 올랐을 정도로 말을 좋아했다. '에스티메이트'라는 이름의 말이 왕실 주최 경마대회인 '로열 애스콧' 골드컵에서 우승하며 207년 만에 재위 중에 골드컵 우승마를 소유한 군주라는 이색 기록을 세웠고, 또 다른 말들에게는 '헌법(Constitution)' '의무(Duty Bound)' 같은 독특한 이름을 붙여줬다.

두 번째 열정을 바친 것은 소통 수단으로서의 말이었다. 여왕은 미디어의 퀸이었다. '스크린 퀸'이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로 미디어를 통한 이미지 관리에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엘리자베스 2세가 특히 잘 활용한 매체는 텔레비전, 그녀의 즉위식은 영국 역사상 처음으로 텔레비전으로 중계가 되었다. 이는 미디어에 노출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윈스턴 처칠 수상의 건의와 정반대되는 결정으로, 그는 "군주제는 대낮의 햇빛에 비추면 마법이 사라진다"는 군주 신비주의의 신봉자였다. 여왕이 처칠의 강력한 건의를 물리치고 TV를 택한 이면에는 남편 필립공의 영향이 컸다. 필립공은 신기술 문명에 호기심이 많고 남들보다 앞서서 사용해보는 것을 좋아하던 사람으로 마침 여왕 즉위식 준비위원회를 이끌면서 당대의 뉴미디어인 텔레비전에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여왕의 즉위식은 영국에서 TV세트 구입 붐으로 이어졌고, 매스미디어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는 것이 미디어학계의 평가다.

1957년 여왕이 최초로 TV에서 크리스마스 연설을 한 것 역시 영국 미디어사에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당시 31세의 여왕은 텔레비전 카메라 렌즈와 마이크를 통해 10분 동안 본인의 얼굴과 목소리를 국민에게 직접 전달했다. 이후 약 70회의 TV 연설을 통해 군주로서 생각이 어떤지 구체적으로 말하고 보여주었다. 국가적위기가 닥쳤을 때는 과감히 TV 앞에 등장해 입장과 의견을 분명하게 밝혔다. 그중 2020년 4월 5일의 TV 연설은 역사적 연설 중 하나로 꼽힌다. 팬데믹이 유럽을 휩쓸기 시작할 무렵으로 영국 정부가 1차 록다운이라는 비상조치를 취할 때였다.

당시 93세의 여왕은 차분하면서도 신뢰할 만한 목소리로 심리적으로 위축된 영국인들에게 1940년의 라디오 연설을 상기시켰다. 나치 독일의 공습으로 런던에 살고 있던 아이들이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져 타 지역으로 이동했던 조치로, 당시 14세의 나이였던 본인의 소감과 극한 상황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경험을 들려주었다. 그로부터 80년이 흘러 영국 정부가 록다운 조치를 취하는 것 역시 고통스럽지만 '옳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힘주어 강조했다. 흥분하지 말고 차분하게 정부조치를 믿고 따라줄 것을 국민에게 당부하면서 2차 대전 때 캐치프레이즈인 '우리는 극복할 것'이며, '우리는 곧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는 말로 연설을 끝냈다. 약 2400만명이 시청한 이 연설은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국민의 단합과 협조를 당부하고 희망을 전달해야 하는지 미디어 소통의 좋은 사례로 꼽힌다. 1991년 걸프전 1차 참전 때에도 영국 군대의 최종 지휘권자의 자격으로 참전 당위성을 텔레비전 연설을 통해 분명히 했다.

반면 왕세자비였던 다이애나가 아들 찰스와 이혼한 뒤 1997년 8월 31일 파리에서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 사건은 개인적으로 가장 견디기 힘든 순간 중 하나였으며 왕실의 최대 위기이기도 했다. 왕실을 폐지하자는 악화된 국민감정을 누그러뜨리고 왕실을 지지하는 쪽으로 여론을 다시 돌려놓은 것은 그녀의 다이애나 애도 연설이었다. 여왕의 최고 무기는 말과 미디어 활용 능력이었다.

[손관승 '리더를 위한 하멜 오디세이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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