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 우려해 검사 회피했나.. 4050 가장들 '숨은 감염' 최다
방역 당국이 2020년 초 코로나 팬데믹 이후 처음 실시한 대규모 ‘코로나 항체 양성률 조사’에서, 우리 국민 100명 중 97명이 코로나 항체를 지닌 것으로 나타났다. 거의 전 국민이 코로나에 감염됐거나 백신을 접종해 어느 정도 면역력을 갖게 됐다는 뜻이다. 방역 당국의 확진 판정을 피한 ‘숨은 감염자’ 비율은 5명 중 1명꼴로 확인돼, 실제 누적 확진자는 당국 발표보다 1000만명 많은 약 35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은 23일 이런 결과를 담은 ‘지역사회 기반 대표 표본 코로나 항체 양성률 1차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질병관리청·한국역학회·의료기관 등이 지난 8월 5일부터 9월 6일까지 전국 17개 시·도 만 5세 이상 표본 집단 9901명의 혈액을 분석한 결과다.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 97.4%는 코로나 감염이나 백신 접종을 통해 코로나 항체를 갖게 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별로는 60대의 항체 형성률이 99.4%로 가장 높았고, 가장 낮은 연령대는 백신 접종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5~9세(79.6%)였다. 전체의 57.7%는 코로나에 감염된 적이 있음을 의미하는 ‘N항체’를 보유 중이었다. 10명 중 6명은 코로나에 감염됐다가 나은 셈이다. 이는 조사 직전 시점(7월 30일)의 국내 누적 확진율(38.2%)보다 19.5%p 높은 수치다. 권준욱 국립보건연구원장은 “전 국민의 약 20%가 무증상 등으로 검사·진단을 통해 확진 판정을 받지 않고 지나간 ‘미진단 감염자’라는 뜻”이라고 했다. 약 1000만명이 코로나에 감염되고도 검사를 받지 않아 확진자로 분류되지 않은 이른바 ‘숨은 감염자’라는 것이다.
권 원장은 “항체 형성률이 높다는 게 곧 코로나 바이러스 방어력이 높다는 뜻은 아니다”라고도 했다. 이번 조사는 항체 보유 여부만 확인했을 뿐 항체 중에서도 실제 바이러스를 무력화하는 ‘중화항체’를 갖고 있는지 등은 조사하지 못했고, 조사 대상 상당수가 가진 항체는 코로나 초기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이기 때문이다. 방역 당국은 다만 높은 항체 양성률로 인해 향후 코로나 재유행 시 중증화율과 사망률은 상당히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40~50대, 4명 중 1명이 ‘숨은 감염자’
이번 조사에서 항체 양성률은 연령에 따라 큰 차이를 보였다. 항체 양성률은 고령층에서 높았다. 60대(99.4%)가 가장 높고, 70대(99.3%)와 50대(99.2%)가 뒤를 이었다. 20대는 99.0%, 40대 98.7%, 80대 이상 97.9%, 30대는 97.8%로 나타났다. 반면 백신 접종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5~9세(79.6%), 10~19세(90.6%)는 항체 양성률도 낮았다. 소아·청소년은 대부분 코로나 자연 감염을 통해 항체가 형성된 것으로 조사됐다. 코로나에 감염된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N항체’ 양성률이 5~9세, 10~19세에서 각각 79.8%, 70.6%로 가장 높았기 때문이다. 반면 70대는 43.1%, 80세 이상은 32.2%로 낮았다. 방역 당국은 “백신 접종이 중증화·사망 위험이 높은 고령층을 우선해 진행된 데다, 고령층의 사회 활동이 소아·청소년에 비해 많지 않아 감염원 접촉 기회가 적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방역 당국 확진자 집계에 잡히지 않은 미확진 감염자, 이른바 ‘숨은 감염자’는 전 국민의 19.5%(약 1000만명)로 추산됐다. 특히 사회 활동이 활발한 50대(27.7%)와 40대(24.8%)에서 숨은 확진자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적은 건 80대 이상(5.4%)이었다. 김동현 한림의대 예방의학과 교수(한국역학회장)는 “40~50대는 대부분 가정 경제를 책임지거나, 자영업에 종사하는 비율이 높은 경제활동 중심 인구”라며 “증상이 있거나 양성을 확인했어도 확진 판정 후 격리 등에 대한 우려 때문에 그냥 지나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반대로 80대 이상은 예방 백신 접종이 활발했던 데다, 요양기관 등의 검사가 철저하게 진행된 영향으로 ‘숨은 감염자’가 적었을 것으로 분석됐다.
숨은 감염자 비율이 가장 높았던 지역은 부산(28.8%)과 제주(27.1%)였다. 가장 낮은 지역은 울산으로 미확진 감염률은 11.5%였다. 방역 당국은 지역별로 연령 구조가 다르고 전파 양상 및 방역 대응에 차이가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하고 있다.
◇항체 양성률 높다고 안전한 것 아냐
방역 당국은 “높은 전체 항체 양성률(97.4%)이 ‘바이러스에 대한 방어력’이 그만큼 높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번 조사는 9901명 혈액 검사를 통해 코로나 바이러스 항원에 결합하는 항체를 갖고 있는지 없는지만 판정한 것이다. 항체가 얼마나 있는지, 항체 중에서도 실제로 바이러스를 무력화하는 ‘중화항체’를 갖고 있는지까지는 조사하지 못했다. 또 백신 접종자 등 이번 조사 대상자 상당수가 가진 항체는 코로나 초기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다. 항체를 갖고 있어도 개인에 따라 얼마든지 감염 또는 재감염될 수 있다는 얘기다.
권준욱 원장은 이날 “(이번 조사의) 항체를 형성시킨 백신은 코로나 초기 우한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으로, 항체가 있다고 해도 중화능, 즉 방어력이 충분하게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항체는 시간이 흐를수록 감소하는 데다 오미크론이나 BA.5 등 변이가 출현할 때마다 중화항체의 지속 기간도 짧아지고 있다”고 했다. 김동현 교수도 “97~98%가 항체를 보유했다는 것으로 우리 국민 거의 전부가 바이러스로부터 보호가 가능해졌다고 해석해선 안 된다”고 했다. 실제 코로나 재유행 기세는 한풀 꺾였지만, 최근 일주일(17~23일)만 봐도 하루 평균 3만5000여 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방역 당국은 “항체는 보통 6~8개월 정도 유지되지만 시간 경과에 따라 감소하고,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고위험군의 추가 접종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감염 후라도 4개월 이상 지나면 추가 백신 접종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S항체와 N항체
코로나 항체 검사에서는 S항체와 N항체 형성 여부를 확인한다. 코로나 자연 감염은 S항체와 N항체 형성 모두를 유도해, 코로나에 걸렸다가 나은 사람에게선 두 항체 모두가 확인된다. 반면 코로나 예방 백신 접종은 S항체 형성만 유도한다. 이 때문에 N항체를 보유한 것은 코로나에 걸렸다 나은 이력이 있다는 걸 의미하고, S항체를 보유한 건 코로나에 감염된 적이 있거나 백신을 접종한 것 모두를 뜻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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