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함'은 아이의 타고난 '특성'..부모는 '안전 기지' 역할해줘야[김효원의 마음건강 클리닉]
요즘 심리학에서는 예민함이 화두이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예민함에 대한 책들이 여러 권 포함되어 있고, 신문기사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예민함과 관련된 내용들이 종종 올라온다. 진료실에 ‘예민한 아이’를 데리고 오는 부모님도 많아졌다.
지안이도 예민한 아이였다. 아기 때부터 예민해서 특별한 이유 없이 잘 울고 한 번 울면 잘 달래지지 않아 오랫동안 안고 있어야 했다. 이유식을 할 때부터 음식 냄새가 조금만 낯설어도 먹지 않았다. 잠드는 것도 힘들어서 조금이라도 불빛이 있거나, 작은 소리가 들려도 잠들지 못하고 울었다. 울지 않을 때는 잘 웃고, 잘 놀았고, 발달도 매우 빠른 편이었다.
처음 유치원에 가면서부터 아침마다 가기 싫다고 한참 동안 울고, 화장실에 4~5분 간격으로 자주 가는 것이 두 달 정도 지속되었다. 공원 같은 곳에 가면 아주 작은 벌레만 있어도 “꺄~악” 소리를 질러서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뉴스에 홍수 이야기가 나오면 집이 떠내려갈까 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지안이 엄마는 지안이가 손이 많이 가는 아이여서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돌보기 시작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지안이가 달래지지 않거나 짜증을 심하게 내면 아이가 밉고 화가 나면서 모든 것이 자기 잘못이라는 죄책감이 들어서 힘들었다.
예민함은 태어날 때부터 타고나는 성향이다. 알렉산더 토마스와 스텔라 체스는 아기들 가운데 약 40%가 순한 기질, 10% 정도가 까다로운 기질, 15%가 늦되는 기질을 가진다고 했다. 지안이처럼 까다로운 기질의 아기들은 생활리듬이 불규칙적이고 외부 자극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또한 감정 기복이 크고, 부정적 감정을 많이 표현한다. 달래도 쉽게 울음을 그치지 않으며 고집이 세서 웬만해서는 뜻을 꺾기 어렵다. 2002년에 일레인 아론은 ‘주위의 더 많은 것들을 알아채고, 행동하기 전에 모든 것을 심사숙고하는 경향을 가지고 태어나는’ 아이들을 매우 예민한 아이들(highly sensitive child)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지안이 엄마처럼 예민한 아이를 둔 부모들은 아기를 키우는 것이 힘에 부친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우선 아이의 예민함이 타고나는 특성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의 예민한 특성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가장 힘든 사람은 아이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아이에게 큰 위로가 된다. 또 아이가 불안하고, 마음속 감정들에 압도될 때, 돌아갈 수 있는 안전 기지(secure base)가 되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 편이 되어주고, 어려울 때 돌아갈 수 있는 ‘부모’라는 안전 기지가 있다고 생각하면, 예민한 아이들은 조금 더 잘 견딜 수 있게 된다. 아이가 느끼는 감정을 읽어주고 말로 표현하도록 돕는 것이 좋다. 감정을 읽어주고 알아주면, 아이가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이 조금씩 가라앉는다. 그러고 나면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해결 방법을 스스로 찾을 수 있게 된다.
예민한 아이들은 남들이 발견하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고, 남들과 다른 것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예민함을 잘 다루고 잘 조절할 수 있도록 부모와 아이가 함께 노력하면, 세상을 조금 더 편하게 살아갈 수 있을 뿐 아니라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다.
김효원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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