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목격한 시인, 기록으로 증언[책과 삶]
불러줘 우리를, 우리 지닌 것으로
어맨다 고먼 지음·정은귀 옮김
은행나무 | 248쪽 | 1만5000원
어맨다 고먼은 책의 서두에 “이 책은 병 속에 담긴 메시지, 팬데믹에 대한 공공의 기억을 보존하려는 시도”라고 썼다. “이 순간의 상실과 교훈이 잊힐 수도 있다는 생각만큼 괴로운 것은 없다”는 그는 이 시집을 “우리의 경험을 종이에 적어 내려가기 위한 나의 투쟁”이라 명명한다.
<불러줘 우리를, 우리 지닌 것으로>는 미국 최초의 청년 계관시인인 고먼의 첫 시집이다. 역사, 언어, 정체성 등 다양한 주제의 시 70편을 묶었다.
고먼은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역대 최연소로 축시를 낭송해 화제가 됐던 스물넷의 젊은 시인이다. 시집에서 “나는 흑인 작가들의 딸이며, 사슬을 끊고 세상을 변화시킨 자유 투사들의 후손”이라고 밝힌 그는 환경과 인종, 젠더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사회운동가이기도 하다.
인간은 얼마나 만신창이인가. 시인은 <햄릿>의 독백을 빌려 이렇게 묻는다. 현재의 세계를 “필멸의 땅”으로 명명하고 “우리는 얼마나 경이로운 난파인가”라고 말한다. 시집에 자주 소환되는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 속 포경선처럼, 난파선이 된 재난의 시대를 살아가며 목격한 것들을 시로 기록하고 증언했다. 시인은 이 시집을 증언들을 실어올린 ‘언어의 방주’에 빗댄다. “우리의 악몽들 & 희망들을./그토록 끔찍한 빛 한 가닥을 간직하기 위하여.”
동시에 고먼은 “재난 너머를 믿는다”. 인간이 만든 “오류의 시대”에서 지워진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소환하며, “우리의 목표는 보복이 아니라 회복” “지배가 아니라 존엄”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절망과 슬픔에 침잠하지 않고 “다치면서 & 치유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려는 시인의 목소리가 단단하고 강렬하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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