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한 몸 되어, 때로는 나란히 서서..내 안의 가장 작은 나를 느낀다[그림책]
마트료시카
유은실 글·김지현 그림
사계절출판사 | 48쪽 | 1만4500원
내 속에 또 다른 나를, 그 안에 더 작은 나를 겹겹이 품고 있다. 인형 속의 인형 속의 인형들. 품이 넓은 순으로 포개진 마트료시카 이야기다. 작가는 제일 너른 품과 가장 큰 꽃그늘, 깊은 주름과 큰 손을 가진 첫째부터 차례대로 둘째, 셋째, 넷째, 다섯째, 여섯째, 일곱째를 빚어 하나하나 눈을 맞추고 정성껏 숨을 불어넣는다.
차례로 손아래를 품고 태어난 이들은 멀고 낯선 곳의 한 소녀에게 전해진다. “우아, 하나이면서 일곱이네.” 빨간 두건을 두른 이들은 소녀의 말처럼 저마다 고유한 문양을 새겼지만 수줍은 듯 발그레한 볼, 앙다문 작은 입이 서로를 닮았다. 인형들은 소녀의 방에서 때로는 한 몸이 되어, 때로는 각자 나란히 서서 서로의 존재를 느낀다.
소녀가 잠들고 나면 인형들의 영혼은 깨어난다. 적막이 흐르는 밤이면 일곱 영혼은 달빛 아래서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한 사람씩 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러던 일곱째 밤, 가장 작은 일곱째가 사라지고 그를 찾기 위해 첫째는 품 안의 흰 나비를 숲속으로 날려 보낸다.
저자는 여러 겹으로 만들어진 인형을 통해 한 사람의 내면 자아인 ‘내 안의 아이’를 말한다. 이야기는 곱게 만발한 꽃, 이국적인 풍경, 아늑한 시골집을 비추며 생명이 깃든 인형이 가장 깊은 곳의 나를 찾아 떠나는 과정이다. 인형들은 때로 회한에 잠기고, 권태 속 평화를 누리기도 하고, 싱그러운 그늘에서 행복을 느낀다. 인형들이 품은 기억의 순간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그 끝엔 이제 막 꽃망울을 쥔 일곱째가 있다.
그림을 그린 김지현 작가는 인형의 몽환적인 여정을 얇은 선을 차곡히 쌓아 올린 뒤 투명하고 맑게 채색해 표현했다. 정성스레 칠한 엷은 물감 자국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전한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달빛도 들지 않는 칠흑 같은 밤 흰 나비는 숲에서 콩알만 한 아이와 마주한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언니들의 걱정 속에서 아직 입도 없는 일곱째는 무슨 생각을 품고 있을지. 내 안의 작은 아이의 목소리가 궁금해지는 책이다.
유수빈 기자 soop@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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