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아이 아빠도, 수업 중 학생도 마구잡이 징집.. 통곡의 러시아

장수현 2022. 9. 23.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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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에 투입할 러시아 예비군 징집이 22일(현지시간) 본격 시작됐다.

러시아 정부는 "예비군 2,600만 명 중 30만 명만 선발하겠다"고 했지만, 징집 대상이 아닌 남성들이 갑자기 징병 통지를 받은 사례가 속출했다.

실제 러시아의 동원 관련 법령을 보면 징집 대상 제한이 사실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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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륜그리·부랴트 등 전역서 입대 영상 퍼져
대상 아니라던 다자녀 남성, 대학생도 징집 
무비자 출국 항공편 매진..국경 탈출 러시
22일 러시아 동부 사하공화국 네륜그리에서 한 남성이 입대하기 전 가족들과 포옹하고 있다. 전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부분 동원령'을 내렸다. 트위터 계정 @poli_golobokova 영상 캡처

전쟁터에 투입할 러시아 예비군 징집이 22일(현지시간) 본격 시작됐다. 러시아 전역이 눈물과 울부짖음으로 얼룩졌다. 러시아 정부는 "예비군 2,600만 명 중 30만 명만 선발하겠다"고 했지만, 징집 대상이 아닌 남성들이 갑자기 징병 통지를 받은 사례가 속출했다. "100만 명을 동원하려는 것"이라는 의심이 퍼졌다.

러시아는 예비군을 버스로 종일 실어 날랐다. 버스 탑승장은 생이별의 현장이었다. 동부 사하공화국 네륜그리에서 촬영된 영상에서 한 중년 남성은 버스에 타기 전 부인과 어머니로 추정되는 사람을 차례로 껴안으며 울음을 참는다. BBC방송 기자 윌 버논이 트위터에 공유한 영상에는 벨고로드주 스타리 오스콜 지역에서 아빠를 떠나보내는 아이가 "아빠 안녕! 꼭 돌아오세요"라고 간절하게 외치는 목소리가 들린다.

동남부 부랴트 자치 공화국의 작은 마을 자카멘스키의 남성들은 한밤중에 징병 통지서를 받고 몇 시간 만에 입대했다. 날벼락을 맞은 사람들은 밤새 보드카를 마시며 공포와 슬픔을 달랬다. 날이 밝자마자 가족들과 인사한 뒤 전쟁터로 사라졌다. 이 마을에선 주민 450명 중 20여 명이나 징집됐다. "지역별로 징집 할당량이 내려온 것"이라는 얘기가 오르내렸다.

22일 러시아 동부 사하공화국 네륜그리에서 한 남성이 징집 버스에 탄 채 아이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있다. 전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부분 동원령을 내렸다. 트위터 계정 @poli_golobokova 영상 캡처

다섯 아이 아빠도, 수업 중인 대학생도 징집

22일 모스크바 남부 군사위원회 앞에 징집 대상자들로 추정되는 남성들이 줄을 서 있다. 모스크바=타스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21일 예비군 동원령을 내린 직후 군 당국은 "최근 군 복무를 마쳤거나 전투 경험이 있는 남성만 소집한다. 다자녀 부양 남성과 대학생은 제외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 남성들도 무작위로 징집 통보를 받고 있다고 영국 가디언이 보도했다. 군에 복무한 적 없는 데다 자녀가 다섯 명인 38세 남성이 징집 명령을 받았고, 일부 지역 공무원들은 수업 중인 대학 강의실에 들어가 징집 통지서를 배포했다.

러시아 정부가 국민을 속인 것이다. 실제 러시아의 동원 관련 법령을 보면 징집 대상 제한이 사실상 없다. 예카테리나 슐만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 연구원은 "법령에는 부분적 동원령의 기준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다"며 "국방 산업 종사자 외엔 누구나 징집될 수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독립언론 노바야가제타는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국방부가 최대 100만 명을 모집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반전 단체인 자유부랴트재단 대표 알렉산드라 가라마카포바는 "지역 공무원들이 푸틴이 준 숙제를 하듯 할당량을 채우려고 혈안이 돼 있다"며 "이건 부분 동원령이 아니라 100% 동원령"이라고 비판했다.

러시아는 이민자들도 노리고 있다. 키릴 카바노프 국회의원은 텔레그램에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에서 이민 온 지 10년이 되지 않은 사람을 1년간 의무 복무하게 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면서 "군 복무를 거절하면 당사자와 가족들의 러시아 국적을 빼앗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탈출 차량 행렬 5㎞… EU "공동 대응 준비 중"

22일 오전 3시쯤 러시아 어퍼 라스 국경검문소의 모습. 징집을 피해 조지아로 도망가려는 러시아인들의 차량 행렬이 늘어서 있다. 트위터 계정 @ekhokavkaza 캡처

러시아인들은 패닉에 빠졌다. 참전을 피해 외국으로 도피하려는 행렬이 더 길어졌다.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튀르키예(터키) 이스탄불, 아르메니아 예레반 등으로 향하는 항공 직항편은 이미 매진됐다. 아직 빠져나가지 못한 사람들은 육로 탈출을 위해 국경에 몰렸다.

BBC방송은 인접국 조지아와 가까운 어퍼 라스 국경검문소에는 차량 행렬이 5㎞ 넘게 늘어섰다고 보도했다. 핀란드 국경 지역에선 4차선 도로가 150m가 넘는 차량 행렬로 가득 찼다. 유럽연합(EU)은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며 회원국 차원에서 러시아 난민 수용 등 공동 대응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멈추지 않을 태세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탈출 행렬과 관련한 외신 보도는 과장됐다고 주장하면서 "가짜 정보로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장수현 기자 jangsue@hankookilbo.com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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