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에 사과 없이 주장만..'화' 키우는 비속어 해명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유정인 기자 입력 2022. 9. 23. 20:57 수정 2022. 9. 23.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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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야당 향한 말" 해명 후
유감도 안 밝혀 반발·의심 증폭
'바이든 아닌 날리면' 싸고 논란
민주당, 윤 대통령 공식 사과 요구

윤석열 대통령의 순방 중 비속어 사용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비속어의 대상이 야당이라는 대통령실 해명이 야당의 반발을 더 키웠다. 야당에 대한 윤 대통령의 평소 인식이 드러나면서 사실상 협치를 포기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 비속어 발언은 미국 의회가 아니라 한국 야당, 특히 민주당을 향한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날리면’이라고 말했는데, 언론 자막 등을 통해 ‘바이든은’이라고 잘못 알려졌다는 것이다. 연설에서 1억달러 공여를 약속했는데, 민주당 반대로 무산되면 어떻게 하겠느냐를 표시했다는 것이다.

앞서 윤 대통령은 전날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에서 연설하며 ‘1억달러 공여’를 약속하고, 행사장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나 48초간 환담했다. 윤 대통령은 환담 후 행사장을 빠져나오면서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이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말하는 듯한 장면이 영상 카메라에 포착됐다.

김 수석의 이 같은 해명에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대통령실은 ‘날리면’이었다고 설명하지만, 아무리 들어도 ‘바이든은’으로 들린다는 것이다. 사실관계가 명확하다면 왜 발언 이후 15시간이 지난 이후에야 해명했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비속어 논란이 불거진 직후만 해도 대통령실 입장은 “사적 발언을 외교적 성과로 연결시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김 수석의 해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야당을 ‘이 XX들’로 지칭한 것이 사실이라고 대통령실 스스로 인정한 셈이기 때문이다. 그간 윤 대통령은 ‘초당적 협력’을 강조해왔지만, 이번 발언으로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야당을 협치의 대상이 아니라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XX들’로 인식하고, 의회주의를 경시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최악의 국면으로 향하고 있는 야당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당장 여당 안에서도 우려가 나온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3일 기자들과 만나 “(이 XX) 용어가 우리 국회, 우리 야당을 의미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야당을 겨눠 비속어를 사용했다고 대통령실 스스로 인정하고도 사과나 유감 표시는 없었다. 윤 대통령은 김 수석 브리핑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1억달러 공여’ 약속을 언급하며 “대한민국 국회의 적극적 협력을 기대한다”고 적었다. 비속어 사용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비속어 사용이 야당을 향한 것이라도 문제가 아니냐’는 질문에 “(대통령의) 거친 표현에 대해 국민 우려를 잘 듣고, 알고 있다”고만 답했다.

윤 대통령의 이번 비속어 논란이 지난 7월 ‘내부 총질’ 문자 파동과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의 거친 표현이 사태의 발단이 됐고, 사과에 인색한 윤 대통령의 태도가 화를 키운다는 점에서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를 향한 윤 대통령의 ‘내부 총질’ 문자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여당 내홍의 단초가 됐다. 비속어 논란이 장기화한다면 윤 대통령 국정운영에 고스란히 부담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영빈관 신축 논란에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조문 불발, 한·미 정상 48초 환담, 한·일 정상회담 진통 등 순방 기간 악재가 줄을 잇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은 망신살이고, 아마 엄청난 굴욕감과 자존감의 훼손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국민의 대표기관인 민주당 169명의 국회의원들이 정녕 XX들이냐”며 윤 대통령의 사과와 김 수석과 박진 외교부 장관 경질을 요구했다.

심진용·조문희·뉴욕 | 유정인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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